자본시장법 개정 맞춰 선제적 대응…대형 상장자 수요도 몰려 여성 전문가 찾기 경쟁 치열
현재 국내금융사 중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적용받는 자본총계 2조 원 이상인 상장 금융회사는 22개사. 그런데 이 가운데 여성 사외이사가 있는 회사는 5곳뿐이다. 나머지 17개사는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 경쟁에 나선 상태다.
금융 지주사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신한금융지주 이사회는 2011년 이후 약 9년 만에 여성 사외이사를 맞았다. 신한금융은 지난 5일 정기 이사회를 열고 윤재원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윤재원 사외이사는 회계·세무 분야의 전문 석학으로 각종 학회와 기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일 주총에서 선임이 확정됨에 따라 윤 이사는 신한금융 이사회 구성원 중 유일한 여성 사외이사가 됐다.
KB금융은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을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하면서 여성 사외이사를 한 명 더 늘렸다. 사진=KB금융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여성인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등 사외이사 전원을 연임시켰다. 우리금융지주는 예금보험공사가 매년 파견하는 비상임이사를 제외하고 기존 사외이사의 변동은 없지만, 사외이사의 수를 늘려서라도 여성 이사를 재선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지주사뿐만이 아니다. 미래에셋생명은 기존 3명이었던 사외이사 인원을 4명으로 늘리고 전원을 신규로 선임하는 한편 최초의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다.
미래에셋생명은 오는 3월 25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신규 사외이사 선임 건을 의결한다. 사외이사 후보는 이경섭 전 NH농협은행장·국민대 석좌교수, 위경우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김학자 법무법인 에이원 변호사, 최승재 최신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등 총 4명이다.
김학자 후보자는 현재 한국여성변호사회 수석부회장 및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 각종 금융기관의 위원을 역임하며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전문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삼성카드도 여성인 임혜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임 교수는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당시 삼성사장단을 상대로 한·중 관계에 대해 강의하는 등 삼성그룹과 인연을 이어온 인물이다. 특히 ‘한국에서의 금융개혁의 정치경제학’이란 논문을 발표하는 등 금융과 정치의 관계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금융감독원에서도 사상 처음 여성 부원장이 탄생했다. 금감원은 지난 4일 막강한 검사 권한을 갖고 있어 ‘슈퍼맨’으로 불리는 금융소비자보호처장(금소처장)에 김은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금소처장 자리는 ‘핫이슈’였다. 금소처는 윤석헌 금감원장이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등 금감원 내 핵심 조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윤 원장은 기존 6개 부서와 26개 팀을 13개 부서와 40개 팀으로 조정하고 인력도 기존의 278명에서 356명으로 늘렸다. 또 금융상품의 약관 심사와 모집·판매, 광고·공시, 불공정거래 등에 대한 감독 기능과 함께 민원·분쟁·검사까지 맡는다.
금융권이 이처럼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금융사 이사회 멤버로 포함시킬 만한 중량급 여성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똑같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적용받는 제조업과 유통업 등 다른 업종의 대형 상장사들까지 한꺼번에 수요가 몰리면서 기근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CEO스코어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국내 200대 상장사의 등기임원 1444명 가운데 여성은 39명에 불과하다. 특히 200대 상장사 중 여성 등기임원이 1명도 없는 기업이 168개사로 전체의 84%에 달한다. 이들 168개사가 동시에 여성 사외이사 영입경쟁에 뛰어든 상황인 셈이다.
게다가 사외이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규제의 산업’이라 불릴 만큼 까다로운 금융업과 관련해서는 여성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금융사들의 호소다. 특히 자본규모 2조 원에 턱걸이하고 있는 중견급 금융사들은 구인난이 더욱 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 중위권 보험사 관계자는 “금융권은 여성 인력풀이 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고 우리 회사 같은 경우 소위 ‘이름값’도 대형사에 비해 떨어지다 보니 어려움이 크다”면서 “거물급은 삼성전자 같은 제조업 초우량 기업이 선점하고, 그나마 모셔올 만한 분들도 같은 값이면 대형 금융사를 선호한다. 사실 그게 인지상정 아니겠느냐”고 어려움을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