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회장 최측근 이대훈 농협은행장 돌연 사퇴…이사회 ‘접수’ 자회사 농협금융까지 장악 관측도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 사진=연합뉴스
농협금융의 물갈이는 지난 3월 2일 이대훈 농협은행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하면서 표면화됐다. 이대훈 행장은 이날 농협중앙회에 사임의사를 밝혔고 곧바로 사표가 수리됐다. 농협금융 내부는 이 행장의 전격적인 퇴임에 다소 놀라는 분위기다. 2연임조차 드물다는 농협금융 내에서 최초로 3연임에 성공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2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일찌감치 이대훈 행장의 퇴진을 점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한 고위 관계자는 “3연임이 결정될 당시에 이미 농협중앙회 내부에서는 2년을 다 채운 만큼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농협금융 측은 이대훈 행장의 퇴진에 대해 “자진사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이성희 회장이 이 행장뿐 아니라 농협생명 등 다른 주요 계열사 대표들에게도 일괄 사표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인적쇄신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재 농협금융을 이끌고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의 측근들이라는 점에서 물갈이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다. 김병원 전 회장은 앞서 2016년 있었던 선거에서 이성희 현 회장을 꺾고 중앙회장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 역시 당선된 뒤 주요 계열사 대표들에게 사표를 제출받았다. 이성희 회장 입장에서는 김 전 회장의 사람들이 반가울 리 없다. 특히 이대훈 행장은 김 전 중앙회장의 측근 중에서도 핵심 인사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행장의 전격 퇴진은 다른 계열사 CEO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성희 회장의 ‘일괄사표’ 요구가 선택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 모든 계열사의 CEO들에게 사표를 제출받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권 관계자는 “중앙회 측이 농협금융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특정 계열사 CEO들에게 개별연락을 넣어 사직서를 내라고 한 것으로 안다”면서 “재신임을 물을 인물들이 미리 정해져있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현재까지 사표가 처리된 농협금융 내 CEO급 인사는 이 행장 외에는 소성모 농협상호금융대표 정도다. 반면 홍재은 농협생명 대표와 최창수 농협손해보험 대표 등도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 수리됐다는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시선이 모이는 곳은 농협금융그룹의 수장인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이다. 그는 이번에 사의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임기가 4월 말 만료된다. 김광수 회장이 퇴진할지, 아니면 유임될지는 아직 오리무중인 상태다.
농협금융 회장은 대부분 관료 출신이 맡으며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정무적 판단이 영향을 미쳐왔는데, 김광수 회장은 재경부 출신인 데다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 4월 선임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전남 보성 출신에다 광주일고를 졸업했음에도 한때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을 지냈다는 배경도 진퇴 여부를 쉽사리 점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 회장이 임기가 불과 한 달여 남은 김광수 회장에 대해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임기만료에 맞춰 스스로 진퇴를 결정토록 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성희 회장이 농협금융을 장악하기 위해 이사회에 손을 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농협금융 이사회는 회장과 은행장을 결정하는 임원추천위원회 멤버들이다. 농협금융 임추위는 외부추천으로 선임된 사외이사(4인)와 비상임이사(1인), 사내이사(1인)로 이뤄진다. 이 중 비상임이사는 지주 회장에게 추천권이 있지만 사실상 중앙회장이 지목한 인물로 채워지곤 했다. 이미 이 회장은 지난 2월 정재영 성남 낙생농협 조합장을 비상임이사로 선정해 농협금융에 보내둔 상태다.
정재영 이사 외에 농협금융 임추위는 박해식, 이기연, 이준행, 이진순 사외이사와 사내이사인 손병환 농협금융 부사장으로 이뤄져있다. 박해식, 이기연, 이준행 사외이사는 김광수 회장이 선임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산업은행 출신 이진순 사외이사도 김 회장이 선임한 인물이며, 손 부사장은 김광수 회장이 지난 연말 사업전략부문장(상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케이스다.
올해 1월 이성희 농업중앙회 회장이 취임한 가운데 최근 인사 문제로 농협 안팎이 소란스럽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 소재 농협중앙회 건물. 사진=박은숙 기자
이렇듯 이성희 회장이 새로 내려보낸 정재영 이사를 제외하면 현재 농협금융 이사회와 임추위는 대부분 김광수 회장에게 우호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임추위는 지난 4일 첫 회의를 열고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했다. 농협금융 내규에 따르면 임추위는 40일 이내에 최종 후보자를 선정해야 한다. 4월 중순 안에 회장과 행장 후보를 내야 한다는 의미인데, 문제는 중간에 사외이사들의 임기가 끝난다는 점이다. 김 회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박해식, 이기연, 이준행 사외이사는 모두 3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결국 농협금융그룹의 물갈이 규모는 사외이사 교체가 여부가 판가름 짓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요즘 세상에 중앙회 회장이 바뀌었다고 직접 농협금융 CEO들을 대거 쳐내는 방법을 썼다가는 시끄러워질 것이 뻔하지 않느냐”면서 “임기만료라는 명분도 있고 하니 사외이사들을 교체하면 정상적인 절차를 모두 밟으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도록 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농협 노동조합이 이성희 회장의 인사 방향성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노조는 회장 선거에서 이 회장을 도운 인물 중 부적격자가 농협으로 돌아오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인사 대상자로 거론되는 인물 중에는 노조 탄압에 앞장섰거나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의 이 같은 반발은 근본적으로 보은인사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에서 벗어나 2012년 농협의 ‘신경분리(신용·경제사업 분리)’ 당시부터 누적된 불신 때문이다. 낙하산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에 대해 노조 관계자가 ‘적폐’라는 표현을 꺼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2012년 당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경분리를 단행했다. 최원병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동지상고 동문이다. 과도한 차입금 등 현재 농협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의 발단이 계획보다 빠르게 단행된 신경분리 때문이라고 노조는 보고 있다.
이번 회장 선거에서 최원병 전 회장 측 인사들이 이성희 회장을 도왔고 그들 중 일부가 다시 농협으로 복귀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인사가 당선 공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꽃가마’를 타고 농협으로 돌아오려 한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농협 노조 관계자는 “신경분리 당시 조직에 대한 비전도 없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충견 노릇을 한 사람이 퇴직한 뒤 선거 캠프에서 일을 했다고 공신이 돼 복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조의 주장에 대해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이 안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