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감찰 이어 감사원 감사까지…‘라임 사태’ 관련 청와대-검찰 파워게임 확장판 분석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금감원을 감찰한 배경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공직기강 확립차원에서 수시로 정부기관 감찰에 나선다. 과거에도 금감원뿐 아니라 금융위원회에도 업무 자료를 요구하거나 방문 조사에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감찰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과 선거 등 어수선한 시기인데다 민정수석실 직원들이 금감원에 직접 찾아갔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읽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확인할 사안이 있을 경우 통상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자료가 필요할 경우 서류 등을 확인하는 작업도 벌인다. 민정수석실이 직접 현장에 나가는 것은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금감원 감찰에서 민정수석실은 특별감찰반원을 금감원에 보내 현장 확인 작업을 벌였다. 결국 기초자료 검토와 관계자 면담에서 ‘뭔가 나왔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금감원 감찰 배경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면서 각종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민정수석실 감찰은 대개 개인감찰과 정책감찰 두 갈래로 나뉜다. 개인감찰은 말 그대로 특정인이 타깃이며, 정책감찰은 해당 기관이 대상이다. 이번 감찰이 어느 쪽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민정수석실이 일반은행 검사국을 대상으로 감찰을 벌였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다.
만약 정책감찰이라 해도 감찰 대상은 윤석헌 금감원장과 몇 안 되는 금감원 임원들에 한정된다. 청와대 규정상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감찰수행 대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 및 임원’으로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번 감찰이 시작되기 직전 있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가 주목받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2월 말 금융위원회 소속 유영준 은행과장을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불러들였다. 공교롭게도 금융위 출신이 행정관으로 부임한 직후 민정수석실의 금감원 감찰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민정수석실 금융담당 행정관은 전통적으로 금감원 몫이었다. 금융회사를 감시하는 기능은 금감원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주로 금융정책을 담당한다.
이 와중에 시작된 감사원 감사는 금감원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 분야 감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세운 감사원은 금융업계에 “여과 없는 제보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보내는 이례적 방법을 택했다. 특히 감사원은 은행연합회나 금융투자협회 등 각 업권별 협회를 ‘패싱’하고 각 금융사에 직접 제보 창구를 여는 파격 행보에 나섰다. 감사원이 금융업권 감사에 나서면서 협회를 거치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감사원이 개별 금융사에 보낸 공문에는 제보접수를 위한 휴대폰 번호까지 적혀 있다. 감사원 산업금융3과 명의의 이 공문에는 “제도개선 의견 등 감사원에 개진할 의견이 있을 경우 휴대폰 번호로 직접 문자를 보내면 감사원에서 직접 연락하겠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협회를 통하지 말고 감사원에 직접 연락해달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금융권은 청와대와 감사원이 동시에 금감원 옥죄기에 나선 배경에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 사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등 금융권 최고경영자에 대한 중징계 논란도 거론되고 있지만, 금융위 제재까지 확정된 사안을 청와대나 감사원이 다시 들여다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더 많다.
이 때문에 1조 6000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일으킨 이른바 라임 사태가 키워드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라임 사태는 금융위와 금감원은 물론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까지 얽힌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라임 사태는 신라젠과 더불어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있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다. 특히 검찰은 라임에 대한 금융당국 검사를 청와대 관계자가 막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확보해 진위를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라임 펀드 투자자인 A 씨는 지난해 12월 19일 라임 펀드 판매사인 대신증권의 반포WM센터장 장 아무개 씨를 만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등을 물었다. 장 씨는 A 씨에게 청와대 경제수석실 소속 B 행정관의 명함을 꺼내 보여줬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 씨는 “이쪽이 키다. 여기가 금융감독원에서 이쪽으로 간 거다. 사실 라임 거는 이 분이 다 막았었다”고 했다. B 행정관은 당시 금감원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실로 파견돼 근무를 하다가 최근에 금감원으로 복귀해 한직인 인재교육원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부터 라임 이종필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라임은 앞서 같은 해 10월 ‘고객 돈을 돌려줄 수 없다’며 대규모 펀드 환매 연기를 발표했다. 금감원도 같은 해 8월부터 4개월째 라임 펀드 사기 의혹을 검사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청와대 감찰이 시작되던 시기와 비슷한 지난 2월 중순 금감원 압수수색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녹취록과 함께 당시 금감원의 관리·감독에 문제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B 행정관이 라임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에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후폭풍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렇듯 금감원을 둘러싸고 검찰과 감사원, 청와대가 얽히고설킨 조사에 나선 것에 금융권에서는 “결국 검찰과 문재인 정부 간 파워게임의 확장판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권력형 비리를 의심하는 검찰과 문제의 소지를 먼저 찾아내려는 청와대의 일종의 속도경쟁이라는 의미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굴뚝에 연기가 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면서도 “개인비리가 될지, 권력형 게이트가 될지는 시간이 지나야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