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DLF 사태 관련 “금감원 분조위 손볼 것”…금감원 부원장 인사 두고도 대립 전망
2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금융위는 4개 경제관련 부처 중 마지막 순서로 발표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국정을 알린다는 취지의 ‘국민 보고’ 형식을 취한 이날 업무보고는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금융위는 이 자리에서 “금감원 분쟁조정 결과에 대한 조정당사자의 신뢰성과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보고했다. “분쟁조정위원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고 조정당사자가 출석해 항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겠다”고도 했다. DLF 사태 등으로 금융권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추락한 것에 대한 대책이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금감원 분쟁조정 결과에 대한 조정 당사자의 신뢰성과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사실 크게 특별할 것도 없고, 충분히 합리적인 내용이지만 금융권은 “무심코 넘기기에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융위가 금감원 관할인 분쟁조정위원회에 문제가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셈이기 때문이다. 분쟁조정위원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지적한 것은 결국 “금감원장의 인선에 문제가 있었다”는 일종의 고발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분석이다. “분쟁조정결과에 대한 신뢰성과 수용성을 높이겠다”는 것 또한 분쟁조정위원회의 업무처리를 믿지 못하겠다는 일종의 폭로인 셈이다.
분쟁조정위원은 금감원장이 위촉한다. 위원장도 금감원장이 금감원 소속 부원장 중에서 지명한다. 분쟁심의는 위원들 중 위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이 맡는 구조다. 결국 금융위의 보고를 요약하면 ‘금감원장이 선임한 분쟁조정위원들은 전문성이 떨어지고 중립성도 없으며, 이런 사람들이 분쟁조정을 하다보니 그 결과를 당사자들이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있다’는 뜻이 된다는 것이 금융권의 해석이다.
금융위가 이처럼 대통령 앞에서 과감히 ‘윤석헌 저격’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DLF 사태의 피해자들과 금융회사 모두 분조쟁위원회 결과에 불만을 터트리며 승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꼽힌다. 분쟁조정위원회는 DLF 사태와 관련해 은행에 최고 80%의 배상비율을 결정했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은 “DLF 사태는 사기극”이라며 100% 배상을 요구했고, 은행들은 “판매사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긴다”며 반발했다.
이 같은 불만은 ‘금감원은 책임이 없나’라는 감독당국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이런 여론을 모를 리 없는 금융위는 금감원에 ‘불완전판매가 사건의 본질인지, 그리고 배상비율이 적정한지 심사숙고해달라’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금감원은 오히려 DLF 사태에 관해 징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단독으로 주요 징계안을 결정하면서 금융위를 자극했다. 특히 은행권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예상을 벗어난 중징계를 결정하면서 ‘금융위 패싱’ 논란을 불렀다.
체면을 구긴 금융위는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통해 금감원에 조용히 경고장을 보냈다. 2월 12일 열린 증선위는 DLF 사태에 관한 기관제재안을 심의하면서 금감원의 결정을 뒤집고 과태료를 대폭 낮추기로 했다. 증선위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각각 190억 원, 160억 원가량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월 30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우리은행에 230억 원, 하나은행에 260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해둔 터였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과태료가 크게 낮아지면서 ‘봐주기’ 논란도 일었지만 금융권은 그보다는 “금융위가 금감원에 보낸 메시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은 DLF 사태를 통해 은행은 물론 금융위를 상대로도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면서 “하지만 금융위 입장에서는 ‘아무리 그래봤자 최종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겠느냐. 솔직히 이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볼 수 있듯 금융감독기구인 금감원과 금융당국인 금융위는 소위 ‘클래스’가 다른 곳”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파워게임이 은행장 징계수위와 금감원 부원장 인사를 통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감원은 각 은행에 과태료와 함께 CEO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 금감원 징계는 금융위 의결 절차를 거쳐 해당 금융사에 통보된 뒤 최종 확정되는데, 당초 초미의 관심사는 금융위의 의결 시점이었다. 3월 말로 예정된 금융사들의 주주총회 전에 중징계가 확정되면 CEO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월 19일 열린 금융위 정례회의에 시선이 집중됐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날 회의에는 제재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기관 영업정지 6개월 등의 안건에 대한 사전통지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사전통지 절차에 걸리는 기간인 10일이 지난 뒤 관련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제재안 확정이 주총 이후로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금융위는 3월 초 회의에는 제재안을 상정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관심은 금융위가 기관 제재처럼 CEO 제재 수위도 낮출지 여부로 모아진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증선위와 대통령 업무보고 등을 통해 금감원에 자신들의 의중을 충분히 전달한 만큼 물밑에서 일종의 협상이 오가고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적정한 수준의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금융위가 칼을 뽑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금감원 부원장 인사를 두고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매년 1월 초 발표되던 부원장 인사는 3월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는 상태다. 윤석헌 금감원장의 인사안에 금융위가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윤 원장이 측근은 남기고 금융위에 우호적인 인물들을 교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금융위는 “바꾸려면 전부 바꾸라”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부원장은 금융위원장에게 인사권이 주어져 있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어수선한 데다 총선도 앞둔 시점이어서 당장 두 호랑이가 물어뜯으며 싸우는 일은 없겠지만 결국은 일이 터질 것”이라면서 “누가 이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둘 다 크게 다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