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줄 수비’ 시메오네 vs ‘헤비메탈’ 클롭…‘스타 감독된 스타 선수’ 지단 vs 과르디올라
한 살 차이인 과르디올라(왼쪽)와 지단은 선수 시절에 이어 감독으로도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사진=NBC Sports 트위터 캡처
#최고 스타 감독 맞대결, 지단 vs 과르디올라
대회 16강 대진 중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시티의 매치업은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세르히오 라모스, 루카 모드리치, 케빈 데 브라위너, 라힘 스털링 등 스타들이 즐비한 양팀 선수단에 더해 이 시대 최고 감독으로 평가받는 지네딘 지단과 펩 과르디올라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선수와 감독 신분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험이 있다.
이들은 ‘스타 선수는 스타 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스포츠계 오랜 징크스를 깨부순 대표적 인물이다. 선수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였던 레알 마드리드(지단)와 바르셀로나(과르디올라)의 스타였던 이들은 친정팀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 초보 감독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먼저 감독으로 성공시대를 연 인물은 선수 커리어가 지단에 비해 부족한 과르디올라다. 그는 2008년 바르셀로나 1군 감독 부임 직후부터 바르셀로나의 6관왕을 이끌었다.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성공시대를 이어갔다. 단순 트로피만 따내는 감독이 아닌 실험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전술로 명성을 떨쳤다.
지단은 과르디올라와 한 살 차이지만 다소 늦은 2015년 1군 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단도 데뷔와 동시에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2개의 트로피를 추가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감독으로도 선수 시절 못지않은 성공을 이어간 둘은 자연스레 라이벌 관계로 발전했다. 과르디올라와 지단 모두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친정팀에서 감독직을 시작해 성공을 거뒀다. 팬들 사이에선 ‘누가 더 큰 성공을 거둔 감독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작 둘의 개인적 관계는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단이 레알 지휘봉을 잡기 시작할 무렵, 전술 관련 조언을 과르디올라에게 구했다. 지단은 이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둘이 만났다. 1차전만 치르고 2차전은 연기돼 현재까지는 과르디올라의 판정승이다. 그는 마드리드 원정에서 수비 시 4-4-2 포메이션으로 전환하는 깜짝 전술로 2-1 승리를 거뒀다. 수년간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원정 경기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던 것과 달리 승부사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홈에서 패배한 레알이 8강 진출에 크게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2차전을 앞두고 긴장감은 더해가고 있다. 유독 챔피언스리그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 왔던 지단의 레알이 어떤 반전을 이뤄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 세대교체 축소판, 무리뉴 vs 나겔스만
16강 대진에서 토트넘 홋스퍼와 RB 라이프치히의 맞대결로 결정되자 조세 무리뉴와 율리안 나겔스만, 두 감독의 만남에도 눈길이 쏠렸다. 1군 감독 경력 5년 차인 나겔스만은 20년 차를 채운 무리뉴에 비해 아직 커리어는 부족하지만 많은 면에서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감독 모두 선수 경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20대 초반에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다. 자연스레 감독직에 앉은 시점도 남들보다 빨랐다. 무리뉴는 36세의 나이에 벤피카(포르투갈)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나겔스만은 이보다 빨랐다. TSG 1899 호펜하임(독일) U-19(19세 이하)팀을 지휘하다 1군 감독이 건강상 문제로 사퇴하며 갑작스레 1군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다.
이들은 데뷔 직후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2001년 FC 포르투 감독직에 오른 무리뉴는 이듬해 팀을 UEFA컵 정상에 올려놓더니 2004년에는 유럽의 슈퍼 클럽들을 제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셜 원’이라는 특별한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첼시,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 등을 거치며 최고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나겔스만은 소속팀 전력상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호펜하임 부임 직후부터 강등권에서 사투를 벌이던 팀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렸다. 2번째 시즌부터는 호펜하임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팀으로 만들어 놨다. 이번 시즌 RB 라이프치히에 부임해서도 성공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나겔스만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기에 더 큰 눈길을 끌고 있다.
무리뉴와 나겔스만, 두 무명 선수 출신 감독의 성공은 ‘혁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무리뉴는 모든 상황에서 공과 함께하는 ‘전술 주기화’ 훈련을 유행시키며 세계 축구 트렌드를 이끌었다. 경기장에서도 날카로운 분석과 화려한 전술 변화로 성공을 일궈냈다. 나겔스만도 훈련장에 드론을 띄우는 등 과학적인 훈련으로 화제를 모았다.
혁신과 혁신의 맞대결에서는 나겔스만이 1, 2차전 합계 4-0 완승을 거뒀다.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토너먼트 단계를 통과한 최연소 감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유럽 명장 세대교체의 현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시메오네 감독(왼쪽)과 클롭 감독은 불 같은 성격,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활동량의 충돌’, 시메오네 vs 클롭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리버풀, 디에고 시메오네와 위르겐 클롭의 맞대결도 축구팬들을 흥분시킨 빅매치였다. 양 감독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축구 트렌드를 이끌어온 주인공들이다.
시메오네는 현대축구에 ‘두 줄 수비’를 뿌리내린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사라지는 듯했던 4-4-2 포메이션이 다시 각광받았다. 이 전술은 전력이 떨어지는 팀도 강팀을 잡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도 이를 바탕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을 잡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클롭은 전방에서 공격수부터 상대에 압박을 거는 ‘게겐 프레싱’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한 압박으로 높은 지점에서 볼을 빼앗으며 성과를 냈다.
두 전술 모두 왕성한 활동량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클롭은 자신의 축구를 스스로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가 아닌 헤비메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선수들이 많은 거리를 뛰어야 하기에 비시즌 혹독한 체력 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두 감독이 닮은 점이었다.
양 감독의 맞대결은 이 같은 점을 잘 보여준 한 판이었다. 리버풀 홈에서 열린 16강 2차전에서 이들은 연장전까지 치렀음을 감안하더라도 각각 147.5km(리버풀), 151.1km(아틀레티코)라는 놀라운 뛴거리를 기록했다. 선수 개인으로는 아틀레티코의 사울 니게즈(15.96km), 코케(15.69km)가 15km를 넘겼으며 토마스 파티, 리버풀의 로버트슨, 피르미누, 알렉산더-아놀드, 사디오 마네 등이 14km를 넘겼다.
#별들의 전쟁은 재개될 수 있을까
팬들을 흥분시키던 ‘별들의 전쟁’ 챔피언스리그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전면 중단됐다. 무리뉴와 나겔스만, 시메오네와 클롭은 승부를 냈지만 잔여 일정 무기한 연기로 과르디올라와 지단은 2차전을 치르지 못했다. 유벤투스와 리옹, 바이에른 뮌헨과 첼시, 바르셀로나와 나폴리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지속하고 있다.
UEFA는 지난 17일 긴급회의 이후로도 남은 챔피언스리그 일정에 대한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남은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 대회를 조기에 종료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각국 리그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기 종료 사태만큼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오는 6월 중순 유럽 24개국이 맞붙는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유로 2020) 개막이 예정돼 있었지만 UEFA는 이를 1년 연기했다. 유로 2020의 존재로 대회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재개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유로 2021’이 되며 걸림돌이 사라졌다. 시즌을 치르는 데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에 유럽 현지에서는 8강 토너먼트부터 홈앤드어웨이가 아닌 단판으로 대회 방식을 바꾸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