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투자배급사, 극장 상영 포기 넷플릭스에 팔아…해외 세일즈사 “이중 계약” 분쟁 속으로
그리고 또 한 가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영화 제작사와 투자배급사들도 넷플릭스를 노크할 가능성이 커졌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질수록 추는 넷플릭스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사냥의 시간’은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데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을 받은 작품이라 기대치가 높았다. 이제훈, 최우식, 안재홍 등 주연 배우들이 참석해 성대하게 제작보고회도 가졌다. 당초 2월 말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결국 개봉을 미뤘다. 사진=영화 ‘사냥의 시간’ 홍보 스틸 컷
#이제는 ‘분쟁의 시간’, 누구 손이 올라갈까
‘사냥의 시간’은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데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을 받은 작품이라 기대치가 높았다. 당초 2월 말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극장에 관객의 발길이 뚝 끊겼고, 감염 확산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개봉을 미뤘다. 그럼에도 극장 일일 관객이 3만 명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고, 극장 상영이 재개되더라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영화들과 상영관 확보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리틀빅픽쳐스가 먼저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계약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에 투입된 순수 제작비 90억 원, 홍보·마케팅 비용 약 25억 원을 고려해 이와 비슷한 규모로 계약이 진행됐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 정도 제작비는 극장 관객 약 300만 명을 모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인데, 넷플릭스에 권리를 넘기면서 향후 넷플릭스가 공급되는 해외 시장에 팔 수 없게 된 것을 고려할 때, 리틀빅픽쳐스 측도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한 결정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그동안 해외 판매를 진행해 온 콘텐츠판다가 문제를 제기했다. 콘텐츠판다 측은 “리틀빅픽쳐스와 해외세일즈 계약을 체결하고 1년 이상 업무를 이행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30여 개국에 선판매 했으며, 추가로 70개국과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며 “그러나 리틀빅픽쳐스는 당사와 충분한 논의 없이 3월 초 구두통보를 통해 넷플릭스 전체 판매를 위해 계약 해지를 요청해왔고, 3월 중순 공문발송으로 해외 세일즈 계약해지 의사를 전했다. 그리고 3월 23일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전세계 스트리밍 공개라는 보도 자료를 통해서 이중계약 소식을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일방적인 행위로 인해 당사는 금전적 손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해외 영화시장에서 쌓아올린 명성과 신뢰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리틀빅픽쳐스의 입장은 다르다. 이 업체는 “일반적으로 해외 판권 판매의 경우, 개봉 전에는 계약금 반환 등의 절차를 통해 해결하곤 한다”며 “또한 천재지변 등의 경우 쌍방에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본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반박했다. 코로나19 사태를 ‘천재지변’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어 “이중계약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넷플릭스와의 계약은 천재지변 등에 의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법률검토를 거쳐 적법하게 해지한 이후에 체결된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3월 9일부터 콘텐츠판다에 해지 요청 공문을 발송하고 직접 찾아가 대표 및 임직원과 수차례 면담을 가졌고 부탁을 했다. 투자사들과 제작사의 동의를 얻은 이후에도 콘텐츠판다에 손해를 배상할 것을 약속하며 부탁하였지만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리틀빅픽처스는 넷플릭스와 손잡게 된 배경에 대해 “전세계 극장이 문을 닫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많은 국내외 관객들을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사진=영화 ‘사냥의 시간’ 홍보 스틸 컷
#한국 엔터 업계, 돌파구는 넷플릭스?
리틀빅픽처스는 넷플릭스와 손잡게 된 배경에 대해 “전세계 극장이 문을 닫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많은 국내외 관객들을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넷플릭스는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전세계 190개국, 1억 6700만 명에 이르는 유료 회원 수를 가진 이 ‘공룡’은 외부에서 수급한 영화와 드라마 외에도 자체 제작 오리지널 콘텐츠를 늘리며 사세를 확장해가고 있다. 넷플릭스가 각국별 유료 회원 수를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이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넷플릭스 이용자 수가 크게 늘었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사냥의 시간’을 기점으로 다른 영화들도 넷플릭스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영화 제작사와 투자배급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는 제때 개봉하지 못하면 선도(鮮度)가 떨어져 ‘창고 영화’가 되고 만다. 개봉 시기에 주연 배우들이 다른 작품에 투입돼 홍보 활동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 앞 다투어 신작을 내놓으며 영화관에 걸리기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적정 금액을 보상해주는 넷플릭스는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의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최근 공개된 ‘킹덤2’의 성공으로 넷플릭스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달라졌다. 한국 배우와 제작진을 앞세운 사극판 좀비물을 통해 한국 이용자들이 느끼는 넷플릭스에 대한 이질감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 역시 한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도 각광받는 한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한류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커지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 속에 결국 넷플릭스가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지금 아쉬운 쪽은 충무로다.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하루 빨리 넷플릭스에 팔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넷플릭스의 선택권이 많아지면 제작사들이 스스로 가격을 낮추는 출혈 경쟁이 일어나고, 헐값에 넷플릭스에 넘기는 상황과 마주할 수도 있다”며 “이미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공룡으로 자리매김한 넷플릭스에 종속되는 현상이 심화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