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장녀의 한’ 계비 조씨 연기 “조선시대 상황이 현재도 공감받는다는 것 속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중전 계비 조씨 역을 맡은 김혜준은 마지막 퇴장까지 시청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시즌1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 작가님과 함께 얘기했는데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중전은 발톱을 숨긴 아이다. 호락호락한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래서 그 정도의 설정까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잔인하고 행동력과 추진력이 빠른지는 몰랐죠(웃음). 사실 놀랐어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캐릭터기 때문에 연기를 하면서도 계속 설레고, 또 재밌었던 것 같아요.”
#더위 그리고 ‘연기 논란’
중전의 옷을 벗어던진 김혜준은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극 중 어린 나이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무게감 있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그에게는, 아마 이 같은 발랄함을 숨기고 연기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계비 조씨가 매번 등장하는 게 아니니까 저는 수많은 회차 속에서도 일부만 찍게 됐거든요. 그런데 그냥 가기만 해도 너무너무 재밌었어요(웃음). 저는 출연진 가운데서도 가장 나이 어린 후배고, 신인인데도 선배님들이 저를 동료 배우로 대해주시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올 수 있도록 끌어주시고, 도와주시고 또 응원해주셨어요. 제가 막내다 보니까 정말 다들 되게 예뻐해 주셨던 것 같아요(웃음).”
시즌1에서 연기 논란이 일었던 김혜준은 절치부심해 시즌2에서 비판 여론을 잠재울 만한 열연을 보여줬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시즌2는 여름에 촬영이 있다 보니까 정말 덥더라고요(웃음). 제가 대례복을 입는 정전 신을 마지막 촬영 때 찍었는데 그때가 굉장히 더웠거든요. 거기다 옷이 엄청 무거운 데다 겹겹이 입어서 그 옷 안으로 모기가 들어오면 나가지 못하는 구조였어요. 모자도 굉장히 무거워서 계속 쓰고 있으면 목이 부러질 정도로(웃음). 그래도 의상팀과 미술팀 스태프 분들이 저를 많이 배려해 주셔서 안에 얼음 조끼를 입게 해주시고, 촬영이 끝나면 얼른 모자를 벗겨 주시고 옷도 접어주시고 그랬어요.”
“시즌1, 2를 하면서 좋은 소리도, 좋지 못한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작품이 인기가 많은 만큼 평가도 굉장히 많았죠. 하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 제 중심을 잡고 좀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연기에 대해 많은 반응을 받은 게 처음이라 당황도 하면서, 한편으론 제 스스로에게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제가 부족한 것 같아서 주눅도 들고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감독님이나 작가님, 선배님과 제 주변 지인 분들, 가족들이 응원과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주변에 더욱 감사하고, 금방 또 털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슴 울린 ‘K 장녀의 한’
비판과 격려를 양분 삼은 김혜준이 시즌2에서 보여준 연기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여자라는 이유로 핍박받고 무시당해온 계비 조씨가 중전의 자리에 오른 뒤 광기에 찬 야망을 폭발시키는 모습에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특히 여성 팬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이른바 ‘K(코리아) 장녀’ 신드롬은 계비 조씨의 캐릭터와 김혜준의 연기가 맞물려 ‘킹덤2’의 화제 중 하나로 남았다.
“저도 그 이야기 들었어요. ‘K 장녀의 한이다’ 그러시더라고요(웃음). 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중전이 당해온 일들이 너무 당연한 것들이었는데, 그런 사상에 부딪치고 또 이에 반하는 욕망을 분출하는 캐릭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신 게 아닐까요?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까지 없앤 나의 나라다’ 차별받고 억압받으면서도 그런 야망을 가지고 폭발시키는 캐릭터기 때문에 시원하고 통쾌하다는 대리만족을 느껴주신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을 조선시대가 아닌 지금에도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게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어요.”
김혜준이 연기한 ‘계비 조씨’는 시청자들에게 ‘K 장녀’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팬들이 보여준 애정만큼이나 김혜준이 계비 조씨에게 가진 애정은 남다르다. 강렬한 최후를 맞이한 그를 시즌3부터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김혜준 역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완전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시즌3을 기다릴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다.
“굉장히 오랜 시간 중전으로 살면서 캐릭터를 표현했고, 함께한 분들이 다들 좋았기 때문에 마지막이 너무 아쉬웠어요. 연기 인생에서도 그렇지만 김혜준이란 사람의 삶에 있어서도 ‘킹덤’은 정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거든요. 이렇게 재미있고, 스케일도 크고, 그런데도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더 있을까 생각하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싶을 정도로 아쉽죠(웃음). 그러면서도 이제는 저도 시청자 입장이 되니까 시즌3이 어떻게 될지 몹시 기대되고 또 궁금해요! 새로운 인물들이 시즌3에서는 어떻게 나올지, 배경은 어떻게 변할지, 생사초 비밀이 뭔지 그냥 다 궁금해요, 궁금해서 막 간질간질할 정도예요(웃음).”
오랜 시간을 함께 한 ‘킹덤’을 떠나 김혜준은 오는 6월 편성을 앞둔 MBC 새 월화드라마 ‘십시일반’의 여주인공으로 변신을 준비 중이다. 사극에서의 강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현대극 속 강단 있고 멋진 여성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김혜준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믿고 볼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고 싶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되고 싶은 배우의 모습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는 감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따뜻함을 전달하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해요. 늘 기대가 되고, 그 기대에 충족할 수 있는 배우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더 잘해내고 싶다는 긍정적인 욕심을 가지고 연기에 임하려고 합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