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판매 끝났는데 돌연 넷플릭스 공개 논란…“어쩔 수 없는 선택” vs “상도덕 문제”
코로나19로 개봉이 밀린 국내 영화 가운데 최초로 넷플릭스 행을 택한 ‘사냥의 시간’이 배급사 간 법적 분쟁 위기에 놓였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문제는 이 같은 결정에 해외 세일즈 담당 업체와의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냥의 시간’의 해외 판매를 맡고 있는 콘텐츠판다 측은 이미 해외 30개국에 영화 판권 계약을 진행했기 때문에 넷플릭스 공개를 강행할 경우 그에 따른 손해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23일 ‘사냥의 시간’ 배급사인 리틀빅픽처스는 “WHO의 팬데믹 선언 소식을 접한 후 관객에게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사냥의 시간’은 지난 2월 개봉이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 2차 집단 감염 사태로 인해 일정을 연기했다. 이후 한 달 가량 이어진 스케줄 공백과 이로 인한 손해, 마케팅 비용을 더 이상 지출할 수 없는 재정적 상태 등을 종합해 결국 극장 개봉과 VOD 서비스를 포기하고 넷플릭스 단독 공개를 결정했다. 국내 영화 역사상 극장 개봉이 예정돼 있던 영화가 넷플릭스로 선회한 것은 이번 ‘사냥의 시간’이 처음이다.
‘사냥의 시간’은 2011년 영화 ‘파수꾼’으로 호평받은 윤성현 감독과 이제훈, 박정민이 다시 한 번 합을 맞춘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와 이를 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야기를 그린 추격 스릴러로, 지난 2월 22일 개막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돼 첫선을 보였다.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컷.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사냥의 시간’의 순제작비는 90억 원이며, 여기에 P&A(마케팅) 비용 27억 원이 추가돼 총 제작비가 117억 원 상당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홍보비를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만일 개봉일을 더 연기할 경우 추가 집행해야 할 비용이 10억 원 이상으로 올라간다. 이 같은 비용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국내 배급사의 사정도 사정이지만, 해외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는 콘텐츠판다 측은 날벼락이라는 입장이다. 콘텐츠판다 측은 “리틀빅픽처스가 넷플릭스와 계약을 추진하며 일방적으로 해외 세일즈 대행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며 “아직 판권을 구입한 해외 배급사들과 계약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리틀빅픽처스 측이 이중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예고하기도 했다.
반면 리틀빅픽처스 측은 “콘텐츠판다 측에 해외 판매분과 관련한 위약금 등 계약 취소에 따른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밝혔지만 콘텐츠판다 측이 협조하지 않은 것”이라며 “판권을 구입한 해외 배급사에게는 이미 메일을 보내 현 상황을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한편, 2020년 상반기 개봉을 예정한 국내외 작품들의 일정이 모두 연기되면서 영화계는 “그대로 개봉을 밀고 나가느냐”와 “다른 방도를 찾느냐”의 기로에 놓였다. 전자의 경우는 외화나 독립영화로 약 일주일부터 열흘 정도 일정을 연기했을 뿐 3~4월 안에 대부분 개봉을 그대로 진행했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눈치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사냥의 시간’이 택한 넷플릭스 행을 두고 영화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국내 영화 플랫폼으로써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