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성형외과 고발 후 명예훼손 피소…“근거없이 저격” vs “합의로 입막음” 공방
3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만난 김선웅 천안메인성형외과 원장 지지자들의 목소리였다. 김 원장은 약 7년 전부터 한국의 성형외과가 살인공장이라고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법제이사이자 ‘닥터 벤데타’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2016년 KBS ‘소비자리포트’에 출연한 김선웅 원장의 모습. 사진=소비자리포트 캡처
김 원장이 한국의 성형외과를 살인공장으로까지 묘사하는 이유는 소위 유령수술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령수술이란 환자가 성형외과를 방문해 상담을 받고 수술해주기로 한 의사 대신 마취가 시작되면 다른 의사가 들어와 수술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한 명의 스타 의사가 모두를 수술해줄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방식이다. 특히 김 원장은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정 성형외과에서 벌어진 것으로 밝혀진 ‘창고형, 하도급 유령수술’은 그야말로, 유령수술 중에서도 악질적인 범죄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고형’은 커다란 방 1개에 10여 개의 작업대를 설치하고 환자들을 눕힌 다음, 마취용 마약을 주사해 환자가 의식을 잃은 틈을 타서 ‘집도의사 무단 바꿔치기’를 실행하는 이른바 ‘컨베이어벨트 공장식 유령수술’을 의미한다.”
김 원장이 유령수술 문제를 지적한 건 꽤 오래된 일이지만 그 사이 변한 건 크게 없다. 김 원장은 2014년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증언대에 섰고, 5년 뒤인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원장은 출석할 때마다 “유령수술은 자신을 진찰하고 수술 동의를 받은 의사가 아닌 생면부지의 사람이 (수술 방에) 들어가 수술하는, 매우 반 인권적인 범죄다. 그것이 범죄임을 인식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린 건 그가 대형 규모의 A 성형외과를 상해죄로 고발하면서다. 환자가 수술에 동의한 의사가 수술하지 않고 유령의사가 수술하는 건 불법이라는 이유였다. 검찰은 사기죄로 죄목을 변경해 기소했다. 현재 이 사건은 1심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A 성형외과는 김 원장이 포털사이트에 유령수술 관련 댓글을 쓴 행위와 A 성형외과를 상대로 한 고발장을 의사 커뮤니티에 올린 행위에 대해 각각 명예훼손으로 처벌해달라고 형사 고소했다. 김 원장은 “A 성형외과에서 유령수술이 있었고 5~10명이 죽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댓글 사건 1심에서는 김 원장이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현재 A 성형외과 관계자들이 사기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며 다른 민사소송 1심에서는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기도 했다”며 “다만 (전체 성형외과에서) 200~300명이 사망했다는 얘기의 근거가 없어서 허위사실로 봐야 하지만 비방이 아닌 공익적 목적으로 봐야 한다. 특히 오래 전부터 성형외과 유령수술 문제를 지적해 왔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판결했다. 이 재판은 4월 1일 2심 재판이 진행됐다.
3월 31일에는 김 원장이 고발장을 의사 커뮤니티에 올린 것에 대해 A 성형외과가 명예훼손으로 김 원장을 고소한 건의 1심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에서는 A 성형외과 전 원장의 부인이자 내과 의사인 최 아무개 씨, 현재 병원을 인수했다는 이 아무개 원장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증인 신문에서 최 씨는 “그동안 두 명이 사망한 건 맞다. 그 외에 사망했다는 사람의 이름이라도 대 달라”며 “최소한의 근거도 없이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퍼트려 병원 영업에 심각한 지장을 줬다”고 항변했다.
이에 김 원장은 “수술하다 사망하면 합의금이 3억 5000만 원이다. 이 금액은 보험회사에서 나온다. 합의 때 그 사실을 발설시 10배 배상 조항을 넣는다. 그래서 이미 합의한 피해자는 나타날 수가 없다”면서 “환자가 사망하기 전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마취 부작용인 ‘악성 고열증’으로 기재하고 질병사로 적으면 아무도 파악할 수가 없다. 명확한 근거를 대기 어렵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떄 한국에서 악성 고열증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건 분명하다. 근거를 대는 건 수사기관이 할 일”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검찰청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최 씨는 합의서에 3억 5000만 원 합의금과 10배 배상 조항은 인정했다. 최 씨와 이 원장은 다만 이외에 사망 사건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 원장은 “성형외과 영업이 어려워 폐업 위기다. 검색만 하면 사고가 연관 검색어에 떠서 다른 성형외과 사망사고도 우리 병원으로 오해한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구체적인 숫자를 적시한 만큼 그에 대한 근거를 댔으면 한다”고 말했다.
3월 31일 1심 재판에는 김 원장 지지자들로 자리가 꽉 찼다. 지지자들 가운데에는 유령수술 피해자도 있었고 지인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입석으로 재판을 방청하면서 재판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지지자 일부는 김 원장을 상징하는 피켓을 들고 있거나 프린트 물로 지지 의사를 표현했다.
이날 재판은 검사 측과 변호인 측 증인 신문이 이어지면서 당초 예정된 45분의 재판 시간을 훨씬 넘긴 약 1시간 30분이 지난 뒤에야 끝났다.
김 원장은 법원을 나와 응원하는 지지자들에게 “그동안 수십 번의 명예훼손 소송으로 고통 받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A 성형외과 전 원장 부인 최 씨는 김 원장을 향해 “이런 사람은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A 성형외과는 2015년 환자에게 성형외과 전문의가 집도할 것처럼 안내해 놓고 마취 이후 치과나 이비인후과 전문의 등을 들여보내 ‘대리수술’하도록 한 것이 환자에게 밝혀져 피소된 바 있다.
이 소송 고소인은 턱 양측의 비대칭 등 부작용으로 인해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대리수술은 사기일 뿐만 아니라 성명불상자에 의해 자행된 신체훼손 행위로서 고소인의 신체에 대한 침해행위에 해당한다”며 “수술비·치료비 2300여 만 원과 위자료 5000만 원 등 모두 7300여 만 원을 지급하라”며 최근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바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