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 재건을 위해 구조조정에 먼저 착수하는 최태원 SK(주) 회장. | ||
하지만 최근 SK 비자금 파문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으로 옮겨 붙으면서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사임하는 등 SK 주변의 움직임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외부 상황 변화에도 최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최 회장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 회장은 석방 이후 근 한 달간은 공식적으로는 병원에 머물렀다. 지난 9월22일 출소 첫 날은 경기도 선영에 참배를 갔고, 이튿날 회사에 출근하고, 지난 9월24일 오전까지 회사에 출근해 재판에 대비한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2시에 있었던 재판에 참석한 뒤로는 공식적인 출근을 않고 있다.
그는 지난 9월26일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지난 10월24일 퇴원했다. 뚜렷한 병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좁은 감방에서 장기간 머물다보니 생긴 근육 계통의 이상과 스트레스성 질환에 대한 정밀진단을 받았다는 게 SK측의 설명. SK 관계자는 “정밀진단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최 회장은 퇴원 후에도 통원치료를 받으며 몸을 추슬르고 있다.
최 회장이 최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0월27일 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경영구조개선 약정식에서. SK그룹은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1개월 이내에 SK그룹에 구조조정팀을 신설하고 구조조정 및 금융자회사 매각을 본격화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을 합의했다. SK그룹의 계열주(主), 즉 오너로서 이 약정식에 최 회장이 참석한 것.
최 회장의 경영자로서의 공식 행사는 이 약정식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10월18일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주)의 이사진 간담회에도 참석했던 것. 그가 SK(주) 이사로서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행사였다. 이 자리에선 SK(주)가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에 출자전환하는 문제가 논의됐다.
사외이사들이 직업이 따로 있기에 토요일에 열린 이 행사에 최 회장은 이사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식사만 같이 했을 뿐 토의에는 참가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그가 구속된 뒤 경영 공백을 맞은 상태에서도 회사를 잘 이끌어준 이사진에 감사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는 설명이다. 최 회장이 오너이기에 그가 출자전환을 논하는 자리에 있으면 이사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어서 토의를 할 때는 자리를 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0월26일 열린 SK(주) 이사회에서 SK(주)의 SK네크웍스에 대한 출자전환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최태원 SK(주) 회장은 그룹 내부정리를 위해 사촌형인최신원 SKC 회장(사진)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고 한다. | ||
문제는 내부정리 문제. 급작스런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의 돌출과 이에 따른 최 회장의 구속으로 사실상 SK그룹은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지도력의 공백 상태를 겪어 왔다. 이제 최 회장의 복귀가 가시화됨에 따라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이에 따른 책임론을 놓고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이란 게 SK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특히 손길승 회장의 진퇴 여부가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손 회장은 최 회장 구속 이후 계속 SK그룹 회장과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그룹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SK해운의 비자금 문제가 새롭게 불거지면서 SK해운 대표이사직을 사퇴했고, 이어 최근엔 전경련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SK글로벌 분식 회계가 정치 비자금 제공, SK해운 분식회계 파문으로 퍼지면서 손 회장의 입지가 급속도로 약화된 것.
손 회장쪽에선 SK해운의 2천억원대 분식회계의 경우 ‘SK글로벌을 살리기 위해 그랬다’는 식의 해명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손 회장 측근쪽에선 최종현 회장의 부탁대로 최태원 회장의 바람막이가 돼주기 위해 부실화된 SK해운과 SK글로벌의 부실을 다 털어버리고 최 회장에게 넘겨주는 것을 마지막 소임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SK글로벌과 SK해운의 대표이사직을 맡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분식회계 파문이 터지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손 회장은 차례로 두 회사의 대표직을 사임했다. 그룹 내에서도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
국세청은 손길승 SK그룹 회장 주도로 SK해운의 법인자금 2천3백여억원이 외부로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SK해운의 대주주인 SK(주)가 손 회장의 불법유출한 금액에 대해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손 회장이 SK해운의 법인자금 2천3백92억원을 외부로 유출시킨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까지 하고 나서 손 회장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 손길승 SK그룹 회장 | ||
최 회장은 출소 이후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SK의 부실화 부분’과 ‘전에 듣지 못했던 여러 가지 내부 문제점’에 대해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SK 파문이 쟁점화된 이후 자신의 취약점이 장악력 부족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SK의 감춰진 부실이나 하청업체와 협력업체 선정에 얽히고설킨 내부문제점을 파악하고는 거의 경악하는 수준이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은 자기 사람이 없다는 점에 대해 ‘뼈아프게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최 회장은 내부문제 정리를 위해 심사숙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의 내부 문제를 고치고, 부실화된 부분을 정리하기 위해선 내부 구조조정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퍼져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룹 원로 경영진이나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 여기에는 최신원 회장 등 사촌 형제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SK 사태가 터졌을 때 일각에선 사촌간인 최신원-최태원 회장의 알력이 밖으로 표출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일부 있었지만 최태원-최신원 회장 등 SK그룹 공동창업자의 2세 사촌형제들은 최 회장 출소 이후 수차례 회동하면서 그룹의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즉 사촌간 알력설이 외부에 과장되게 알려져 왔을 뿐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사촌간에 공감했다는 얘기다.
어쨌든 최 회장의 경영복귀는 시간이 문제일 뿐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최 회장은 이번 사태로 절감한 자신의 그룹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 기존 조직의 문제점을 이번 기회에 도려내야 한다는 것, 과거 부실 경영의 책임을 누군가에게는 물어야 한다는 점을 놓고 심사숙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어떤 카드를 꺼내들지 관심을 모으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