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사실무근” 결론에 법무부 재조사 지시…검찰 내부 “가능성 낮지만 확인 필요”
특히 이 사건을 놓고 검찰과 법무부 간 갈등 구조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대검찰청의 자체 진상 조사 결과에 대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재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법무부가 임명한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윤석열 총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나서는 일도 벌어졌다. 한동수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일방적으로 ‘감찰 개시’를 통보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 윤 총장 측은 이를 ‘항명’으로 보고 있지만 검찰 내에서는 “정확한 사실 관계 파악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총선 결과에 따라, 윤 총장이 더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 신년회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검간부들. 사진=임준선 기자
#MBC 보도로 불거진 의혹
MBC는 3월 31일 채널A 이 아무개 기자가 신라젠 전 대주주인 이철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전 대표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제보하라”며 강압적으로 취재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최측근인 A 검사장과의 친분을 거론하며 녹취록도 제시했는데, MBC는 이를 ‘검·언 유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 검사장과 채널A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채널A는 “사건 무마 등 부적절한 요구를 해서 취재를 중단했다”며 “A 검사장과의 녹취록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것”이라고 해명했다. A 검사장 역시 “사건과 관계없는 자리에 있다. 이 기자 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며 “사실이 아니며 계속 의혹을 제기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이를 MBC에 제보한 인물이 친여권 인사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검찰은 채널A와 MBC에 자료를 요청하고 채널A 기자와 연루된 의혹을 받는 검사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등 곧바로 진상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채널A와 A 검사장의 입장을 토대로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 결과에 대해 재조사를 지시했다.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추미애 장관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법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며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해 법과 원칙대로 재조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분서주한 대검 감찰과
진상조사를 담당하고 있던 대검찰청 감찰1과가 동분서주한 것은 당연한 결과. 거의 매일 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한동수 감찰본부장과 윤 총장 사이의 갈등까지 발생했다. 한동수 본부장이 윤 총장의 감찰 중단 지시를 거부하고 나선 것. 한 본부장은 4월 7일 휴가 중이던 윤 총장에게 “감찰을 개시하겠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 여부를 지시받기 위한 문자가 아니라 개시를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한 셈이다. 윤 총장은 이에 한 본부장에게 감찰 중단을 지시했지만 응답을 않고 있다.
이에 감찰과 소속 검사들도 본부장과 총장의 다른 결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처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9일 이번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대검 감찰부가 아닌 인권부 소속 인권감독과에서 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검 인권부는 검찰청에 인권감독관을 배치하면서 관련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신설된 부서다. 수사 과정 등의 인권침해 여부를 확인하는 등 검찰 수사의 적정성을 수시로 점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법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며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해 법과 원칙대로 재조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법무부는 여전히 변수다. 법무부가 직접 감찰에 나설 수 있기 때문. 윤석열 총장이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는 진단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검의 재조사에서도 1차 진상조사처럼 ‘채널A 취재 상대방은 A 검사장이 아니’라는 결론을 낼 경우 법무부는 감찰에 나서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법무부 감찰규정 제5조2에는 △검찰에서 자체 감찰을 수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경우 △감찰 대상자가 대검 감찰부 업무를 지휘·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경우 △검찰의 자체 감찰로는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일 때 법무부가 직접 감찰에 나서도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대검 감찰 결과에 대해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법무부가 나설 수 있는데 이럴 경우 감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소 서너 달은 걸릴 수 있다.
검찰 내부 여론 역시 부담스럽다. A 검사장을 잘 아는 법조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절대 기자와 그런 식으로 수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A 검사장 역시 주변에 “그렇게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A 검사장이 현재 맡고 있는 직책 역시 신라젠 수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더욱 ‘가능성이 낮다’는 게 대다수 검사들의 여론이다.
하지만 ‘확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간부급 검사는 “A 검사장이라면 정말 최측근이자 특수통 검사이지 않느냐”며 “처음 의혹이 제기됐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라인에 없다지만 윤 총장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론은 나만 들은 게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평검사 역시 “정말 유착을 하지 않은 게 맞냐”며 “다들 아닐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 하는 검사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총선 결과 영향 미칠 것”
그런 가운데 이제 정확한 사실관계는 수사로 판가름 날 예정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채널A 기자와 검사장을 상대로 고발장을 낸 것. 민언련은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기자와 검사가 결탁해 형사상 불이익을 준다는 방식으로 협박을 했다”고 설명했다.
의혹을 제기한 MBC도 수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측이 MBC 기자와 관련 보도의 제보자 지 아무개 씨를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MBC가 최 전 부총리가 신라젠의 전환사채에 투자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는데 허위 사실 유포에 해당한다는 게 최 전 부총리 측 주장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유착이 1차 진상조사 결과처럼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윤 총장의 수사 리더십이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총선에서 만일 민주당이 승리를 거둔다면 청와대를 겨눈 수사를 진행해 눈 밖에 난 윤석열 총장을 몰아내기 위한 움직임이 더 강화되지 않겠나. 윤 총장이 총선 이후 청와대 선거 개입 사건과 라임 자산운용 사건을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려고 했는데 이번 검언 유착 의혹 사건과 감찰은 윤 총장 운신의 폭을 제한하기 딱 좋은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