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솔루스 등 자회사 매각·지배구조 개편 거론…노조·채권단, 오너일가 사재출연 요구
사진은 서울 중구 두산타워. 사진=연합뉴스
#거론되는 매각 대상 자회사는?
가장 먼저 매각이 언급된 두산그룹 계열사는 전자‧바이오 소재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두산솔루스다. 두산그룹은 채권단에 자구안을 내놓기 전, 두산솔루스 보유 지분 전량 매각을 추진했다. 두산솔루스 매각 자금을 유상증자 형태로 두산중공업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두산솔루스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44%, (주)두산이 1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를 합하면 61%에 달한다. 두산솔루스 매각의 경우 지분 대부분을 오너일가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주주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 채권단의 입맛에는 맞지만,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와의 협상이 중단된 상황이라 매각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채권단과 두산그룹 간 협의 과정에서 두산그룹이 내놓은 자구안에 담긴 것 이외에 자회사 매각이 추가로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KDB산업은행 구조조정 과정에 정통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산은은 채권 회수를 위한 기본적 장치를 요구하는데, 유동성 문제가 심각한 두산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회사 매각밖에는 없다”며 “산은은 과거 대우조선의 경우처럼 정책자금 지원 실패를 겪었던 만큼 지원 시 경영정상화가 가능하도록 자산이나 자회사를 매각토록 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두산 측 자구안을 전달받은 채권단 또한 매각 대상 확대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채권단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두산중공업 차입금만 4조 원 규모인 상황에서 두산그룹 계열사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매각 대상으로 언급되는 자회사는 연료전지 자회사 두산퓨어셀과 발전용 보일러 제조기업 두산메카텍, 신분당선 운영사 네오플럭스 등이다. 두산중공업 담수화플랜트 사업부 ‘WATER’ 또한 유력한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다.
#또 다른 뇌관, 지배구조 개편
채권단은 계열사 매각 이외에도 지배구조 개편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밥캣’으로 이어지는 수직 구조를 끊어내라는 것.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두산중공업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해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은 투자회사 아래 두고, 투자회사를 (주)두산과 합병해 두산중공업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을 (주)두산에 종속시키는 방안이다. 이 시나리오로 진행된다면, 두산중공업의 부실이 두 자회사에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박정원 회장과 박지원 부회장 등 오너일가 및 특수관계인이 지분 44.64%를 보유하고 있는 (주)두산과 알짜 자회사 두 곳이 생존하는 대신 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두산중공업은 크게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이후 두산중공업을 버리는 수까지 계산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그간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에 두산중공업의 지원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의 반발도 예상된다.
두산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그간 그룹을 위해 여러 계열사를 지원했다”며 “캐시카우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을 (주)두산으로 옮기면 두산중공업은 빈껍데기만 남게 된다. 깡통이 된 두산중공업을 두산건설과 묶어 매각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두산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에서는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이미 7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두산그룹 오너일가가 내놓을 추가 대책은?
오너일가의 추가적인 사재 출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역시 이에 대해 확고한 입장이다. 산은은 지난 3월 27일 자금지원을 결정하며 “두산중공업에 대해 계열주, 대주주 (주)두산 등의 철저한 고통 분담과 책임이행, 자구노력을 전제로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산은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시하는 것은 단 하나다. 기업을 살릴테니 오너는 희생하라는 것”이라며 “두산은 과거 외부의 힘을 빌려 M&A(인수합병)하는 업종재편 과정에서 본인들 역량에 비해 과도한 영토확장이 문제가 됐고, 이후 여러 방법을 동원해 시간을 벌어왔다. 지금 상황에서는 정책자금을 지원한 채권단에서도 오너일가에 대해 경영권에 연연하지 말라는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더욱이 현재 두산중공업의 위기에 오너일가와 경영진의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은 지난 4월 9일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등 경영진을 배임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두산중공업이 부실에 빠진 두산건설을 부당지원하면서 현재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고발장의 골자다. 참여연대는 “두산중공업이 경영상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핵심적 이유 중 하나는 합리적 경영판단이나 실현 가능한 회수 계획 없이 부실이 장기화된 두산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플랜트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 두산메카텍을 두산건설에 합병시켜 현물출자 방식으로 약 7000억 원을 지원하고, 2013년 ‘배열회수보일러’ 사업부문을 두산건설에 현물출자 하는 방식으로 5716억 원을 지원했다. 또 2011년 6월과 2013년 4월, 2019년 5월 세 차례에 걸쳐 약 8161억 원에 달하는 두산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자금을 지원했다.
두산중공업 노조 역시 이와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앞서의 노조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의 경영위기는 오너의 방만 경영과 경영진의 무능 때문”이라며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에만 약 2조 원 가까이 지원을 했고, 두산중공업이 계속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도 (주)두산과 오너일가는 막대한 성과급을 챙겨갔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산중공업 어려움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오너일가가 적극적으로 사재출연을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룹이 채권단에 전달한 자구안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없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며 “두산건설 부당지원 관련 검찰 고발에 대해서도 그룹 차원에서의 대응은 따로 없다”고 전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 또한 “검찰 고발에 대해 따로 대응할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