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장 추천위원 1명 등 제3당 몫…두 위성정당에 의원 꿔주기 등 편법 동원 가능성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과 더불어시민당 이종걸, 우희종, 최배근 상임선대위원장 등이 17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합동 해단식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은 유세 기간 검찰개혁을 전면에 내세웠고, 총선 압승으로 이를 위한 동력 확보에 성공했다. 정치권에선 7월로 예정된 공수처 출범을 더욱 앞당길 가능성도 흘러나온다. 이는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검찰 스탠스와 무관하지 않다. 여권이 총선이 끝나고 난 뒤 대대적으로 이뤄질 검찰 수사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여권 실세들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하는 여러 사건들에 대해 동시 다발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제1 야당인 통합당은 ‘윤석열 구하기’를 선거 주요 구호로 부르짖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윤석열 총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통합당이 국회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통합당은 참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다. 통합당 내부에선 여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흐지부지될 것이란 우려가 역력하다. 통합당이 보호막을 쳤던 윤 총장의 경우 임기를 지키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것이란 말까지 뒤를 잇는다. 범여권 인사들은 공공연히 공수처 1호 수사대상으로 윤 총장을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을 둘러싼 민주당과 통합당의 이러한 힘겨루기는 공수처장 임명을 놓고 표면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2명), 야당 추천(2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이 추천한 후보 2명 중 1명을 공수처장으로 최종 임명한다. 공수처장 후보는 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동의해야 한다. 지난해 패스트트랙으로 공수처법이 통과될 당시 공수처장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여권은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면 후보를 추천할 수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원내 3당이자 2야당이 범여권 성향을 띠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2명에 2야당 1명을 합친 6명이 사실상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1명은 1야당인 미래통합당 몫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권력을 견제하려 만든 공수처가 오히려 정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면서 “최근 여권에서 나오는 말들을 종합하면 정적이나 눈엣가시들이 공수처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향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될 소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지난 15일 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패배하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이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당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총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당과 통합당이 원내 3당 교섭단체를 둘러싼 물밑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우선 통합당 입장은 확고하다. 선거에서 크게 지긴 했지만 미래한국당이 원내 3당을 차지한 만큼 최소한의 견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총선 후 추진하려던 미래한국당과의 통합을 일단 미루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통합당 중진 의원은 “공수처장을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로 임명하는 것은 절대 좌시할 수 없다. 미래한국당이 원내 3당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통합당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19석의 당선자를 냈다. 원내교섭단체(20석)을 채우기 위해선 1석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공천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권성동 김태호 윤상현 홍준표 의원들의 영입 가능성이 점쳐진다. 통합당 한 초선 의원은 “통합당이 무소속 출마자들에 대해 ‘복당 불허’ 방침을 밝혔는데, 바로 받기가 좀 애매할 수 있다. 무소속 당선자들만 결심한다면 미래한국당으로 들어가는 그림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미래한국당 관계자도 “바로 통합은 하지 않는다. 적절한 시기에 할 것이고, 우선은 교섭단체 달성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통합당 내에선 민주당이 원내 3당을 차지하려는 시도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추가로 의원을 늘릴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다. 범민주당 계열로 분류되는 열린민주당 3석과 더불어시민당(17석)을 합하면 미래한국당보다 1석 많은 원내 3당으로 올라선다. 앞서의 통합당 중진 의원은 “교섭단체를 이룬 원내 3당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뿐 아니라 헌법재판관 후보 등 여러 현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미래한국당이 3당이 되면 야당인 원내 2, 3당이 민주당을 견제하는 것이고 반대로 더불어시민당이 3당을 차지하면 통합당은 여권의 원내 1, 3당에 포위되는 형국”이라고 했다.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기류다. 180석(민주당 163, 더불어시민당 17)을 확보하긴 했지만 원내 3당인 미래한국당이 ‘비토’를 할 경우 국회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미래한국당의 원내교섭단체 요건 충족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 부분에 대해 묻자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관계자들 모두 “향후 상황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는 여권이 현 구도에 만족하지 않고 3당 확보를 위한 움직임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의원은 “미래한국당이 의원을 1명 더 늘려 교섭단체를 만든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열린민주당과 합치는 등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불어시민당 덩치를 불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민주당과 통합당은 원내 3당을 놓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의 싸움인 셈이다. 미래한국당이 1석을 추가로 늘려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할 경우 민주당은 반격에 나서겠다는 속내다. ‘미래한국당이 편법을 썼으니 우리도 쓸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통합당 역시 인위적으로 미래한국당의 1석을 더 늘리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상태다. 양당 모두 필요하다면 ‘의원 꿔주기’까지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총선은 끝났지만 원내 3당을 놓고 ‘2라운드’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도 여기서 비롯된다.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통과 이후 민주당과 통합당이 ‘꼼수’로 비례전용 위성정당을 만들 때도 이랬다. 통합당은 법 통과 전부터 위성정당 창당을 거론했고, 실제로 만들었다. 그러자 민주당은 ‘정당방위’를 앞세워 똑같은 방법으로 맞섰다. 원내 3당 전쟁 역시 지금까진 거의 흡사한 흐름이다. 비례전용 위성정당에 이어 교섭단체전용 위성정당 탄생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는 “민주당은 ‘슈퍼 여당’이다. (원내 3당 때문에) 못하는 게 한두 개쯤은 있어도 되는 것 아니냐”면서 “인위적으로 3당을 차지하려 든다면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통합당에 대해서도 신 교수는 “3당 싸움은 잘 모르겠고, 앞으로 해체되는 게 옳다고 본다”고 일갈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