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양 “어릴 때 정체성 혼란”…“인연 끊을 수밖에 없었던 친부모 심정 이해”
야구선수의 길을 택한 후에는 2012년 드래프트를 통해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는데 빅리그에서 4년간 166경기에 출전, 타율 0.218 출루율 0.308 장타율 0.302의 성적을 기록했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는 추신수 외에 또 다른 한국 출생 선수가 있다.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에 입양된 레프스나이더다. 사진=이영미 기자
뉴욕 양키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탬파베이 레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신시내티 레즈를 거쳐 올 시즌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로 추신수와 함께 훈련 중이었던 롭 레프스나이더를 미국 출장 중에 만나봤다. 레프스나이더와의 인터뷰는 코로나19로 인해 메이저리그 캠프가 중단되기 직전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서 진행됐다.
롭 레프스나이더가 평소 좋아하는 선수로 꼽은 이는 두 명이었다. 바로 뉴욕 양키스의 레전드 데릭 지터와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였다. 그는 자신이 추신수와 한 팀에서 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저니맨’처럼 해마다 팀을 옮겨 다니는 상황이 반복된 가운데 텍사스 레인저스까지 오게 되면서 추신수를 만나게 됐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물론 신분은 추신수와 큰 차이가 있지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으로 추신수와 같은 클럽하우스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 신기하다고 말한다.
“추신수는 타격, 수비, 주루 등 모든 부분에서 다재다능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인 선수가 어린 나이에 미국에 와서 그 험난한 마이너리그를 거친 후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게 정말 대단해 보인다. 특히 클럽하우스에서 보이는 추신수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다. 모든 선수가 그를 존중한다. 그가 왜 클럽하우스 리더로 자리매김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레프스나이더는 추신수와 몇 차례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빅리그 주전 선수들의 훈련 스케줄과 그의 스케줄이 서로 겹치지 않기 때문에 클럽하우스 외에는 두 사람이 마주칠 만한 기회가 거의 없는 편이다.
레프스나이더는 뉴욕 양키스 시절인 2013, 2014, 2015시즌에 마이너리그 올스타에 뽑혔을 만큼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빅리그 데뷔 후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만큼의 기회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물론 빅리그에서 보인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건 사실이지만 그런 평가를 받을 만큼 내게 많은 기회가 주어진 건 아니었다. 한 팀에 오래 머물며 단계를 밟아 올라가길 바랐는데 양키스에서 나온 후 여러 팀을 옮겨 다니는 상황이 되다 보니 노력한 것만큼의 기회도, 성적도 올리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아쉬움이 크다.”
레프스나이더는 2018시즌 마치고 마이너리그 FA 자격을 얻었다. 2019시즌 앞두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을 맺었다가 그 해 4월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다. 레프스나이더는 FA 자격을 얻었을 때 잠시 한국행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당시 여러 팀으로부터 영입 제안이 있었는데 그중 KBO리그에서 내게 관심을 나타내는 팀이 있다고 들었다. 나는 물론 내 아내도 한국에서 뛸 기회가 주어지길 바랐다. 그러나 그 일은 진행 과정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계약에까지 이르렀다면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야구하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겠지만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 조금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레프스나이더는 탬파베이 레이스 시절 만난 최지만과 한국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말한다.
“최지만도 KBO리그에서 활약하지 않았지만 아마추어 시절 경험한 한국 야구 경험이 굉장히 풍부한 선수였다. 그의 설명을 통해 한국 야구 문화와 특징들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궁금해지더라.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
롭 레프스나이더가 유독 KBO리그에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자신의 출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는 1991년에 태어나 곧장 미국으로 입양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은 적이 없었다. 때로는 한국을 잊고 산 적도 많았지만 남과 다른 외모로 차별을 받을 때마다 한국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어렸을 때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방황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차별이 담긴 걸 느낀 후로는 모든 게 두려웠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나를 키워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갚는 건 야구선수로 성공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후로는 더는 내 출생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도 애써 마음에 담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솔직히 궁금한 적은 있었다. 그렇다고 그분을 찾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친어머니를 찾는 것보다 좋은 사람으로, 훌륭한 야구선수로 성장하고 싶었다. 한국을 알고 싶고, 가보고 싶고, 배우고 싶지만, 그런 점들이 생모를 찾으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내가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자연스런 궁금증들이 있다. 나는 성장하면서 지금의 부모님으로부터 입양 사실을 전해 들었고, 나를 낳아준 부모를 원망하는 대신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는 그분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고 배웠다.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에 단 한 번도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다.”
레프스나이더는 대학 시절 만나 결혼에 이른 수영 선수 출신의 모니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아직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없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건강한 사고를 가진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의 성장 환경이 특별했기 때문에 2세가 태어난다면 그 감정이 굉장히 복잡 미묘할 것 같다. 당연히 기쁘겠지만 말이다. 첫 아이가 딸이길 바라지만 쌍둥이라면 더 행복할 것 같다. 아이에게 사랑을 많이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