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경기수 단축 고려, MLB 독립기념일 개막설 등장, 느긋하던 NPB도 5월로 개막 연기
코로나19로 전 세계 스포츠 시계가 멈췄다. 세계 3대 프로야구 리그인 미국 메이저리그(MLB), 일본 프로야구(NPB), 한국 KBO 리그도 모두 개막일을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오직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잠잠해진 대만 프로야구리그만 4월 11일 정규시즌 개막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팬들의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관중석을 비워 놓고 무관중 개막전을 치른다. 또 경기장 출입 인원을 철저히 통제하고, 향후 선수나 구단 직원 중 감염 확진자가 나오면 즉각 리그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선수단과 관중의 집단 감염을 막고 지역 사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개막 연기는 당연한 조처. 그러나 겨우내 야구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3개국 야구팬들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가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다. 온 힘을 다해 새 시즌을 준비하고 몸을 만들어 온 선수들도 연습경기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유례없는 장벽과 예측할 수 없는 변수 앞에서 한국, 일본, 미국 리그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각 나라 구단들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리그별로 살펴봤다.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KBO 리그에서는 구단 자체 연습경기 중에도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5월 초까지 밀린 KBO 리그, 팀당 144경기 어려울 듯
KBO 리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팀당 144경기 체제는 어떻게든 유지하려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일정 단축’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KBO는 3월 31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10개 구단 단장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실행위원회를 열고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향후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당초 4월 20일 이후로 예정했던 정규시즌 개막일을 4월 말 혹은 5월 초로 더 미루고, 4월 7일 시작하기로 했던 팀 간 연습경기 또한 21일로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긴장감이 떨어지는 자체 청백전으로만 실전 훈련을 소화하다 이제야 다른 팀과 본격적으로 맞붙어 볼 준비를 시작한 각 구단에게는 가장 김이 빠지는 소식. 실제로 많은 팀이 이 방침을 전해들은 직후 부랴부랴 선발 투수들의 등판 일정부터 다시 조율하기 시작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잦아들지 않고 각급 학교 개학일까지 조정되는 등 전반적으로 여전히 야구 경기를 할 수 있을 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가장 우선순위는 팬들과 선수들이 코로나19에 전염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이고, 경기력은 그 다음 문제다. 감염자 수가 줄지 않아 여전히 경기를 하기는 빠르다는 판단이 섰고, 개학이 늦춰진 부분이 (이 같은 결정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실행위원회는 또 개막이 5월 이후로 미뤄질 경우 기존의 팀당 144경기를 많게는 135경기, 적게는 108경기까지 줄이는 일정 변경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류 총장은 “도쿄올림픽이 내년으로 미뤄진 까닭에 (리그를 중단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11월말까지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팀당 144경기를 다 하려면 5월 초 개막이 사실상 마지노선”이라며 “만약 일정이 더 늦어지면 불가피하게 경기 수 단축도 고려해야 한다. 리그 축소에 관련해서는 실행위원회와 이사회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리그가 팀당 135경기 체제로 운영된다면 5월 5일 개막해 팀간 15차전을 치른 뒤 11월 10일까지 포스트시즌을 마무리하게 되고, 108경기 체제로 변경된다면 5월 29일 개막한 뒤 팀간 12번씩 맞대결을 하고 포스트시즌을 11월 안에 마치는 식이다. 이 외에도 개막일에 따른 팀당 124경기와 117경기 안까지 총 네 가지 가정을 세워 놓은 뒤 그 안에 포함된 세부 규정에 관해서도 긴 토론을 거듭할 계획이다. 우천 취소 경기가 나올 경우 더블헤더와 월요일 경기를 편성하는 안건도 논의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최종 경기 수와 관계없이, 올해 올스타전 개최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최초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을 일정에 포함시킬 여유가 없어서다. 그러나 순위를 결정하는 데 꼭 필요한 포스트시즌은 가급적 일정 축소 없이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KBO는 3월 24일 긴급 이사회에서 정규시즌 개막을 4월 20일 이후로 늦추기로 결의했다. 3월 28일 개막일을 4월 중순으로 미룬 데 이은 두 번째 개막 연기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코로나19 사태는 잠잠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결국 4월 6일로 예정돼 있던 전국 초·중·고교 개학을 다시 미루고 온라인 수업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감염병 경보 단계 역시 최고 수준인 ‘4단계(심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팬들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KBO 리그 역시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외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돼 개막이 5월까지 미뤄진다면, 팀당 144경기와 포스트시즌 일정을 11월 안에 모두 소화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KBO 실행위원회가 끝이 보이지 않는 ‘묘안 찾기’에 돌입했다. 그 두 번째 결과물은 4월 7일 다시 열리는 실행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느긋하게 대처하다 빈축 산 일본 프로야구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던 일본 프로야구는 한참 눈치를 보다 결국 물러섰다.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6개 구단 사장단은 3월 31일 화상 회의를 열어 4월 24일로 예정했던 개막일을 5월로 연기하는 데 뜻을 모았다. 퍼시픽리그에는 세이부 라이언스, 소프트뱅크 호스크, 라쿠텐 골든이글스, 지바 롯데 마린스, 닛폰햄 파이터스, 오릭스 버팔로스가 속해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일본 프로야구는 3월 20일에 첫 경기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020 도쿄올림픽 일정을 고려해 예년보다 이른 시기에 개막일을 잡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4월 10일로 한 차례 일정이 미뤄졌고, 끝내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는 참사까지 벌어지자 다시 24일로 날짜를 바꿨다.
이후 일본 프로야구는 더 이상 개막일을 늦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5월까지 리그 개막을 넘기는 데는 회의적이었다. 일본야구기구(NPB)는 코로나19 매뉴얼에 ‘확진자가 나오면 접촉자를 일주일 이상 격리한다’고만 명시했고, 구단들 역시 이 방침을 최소한으로만 적용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실제로 3월 27일 센트럴리그 구단 한신 타이거즈 소속 선수인 후지나미 신타로, 이토 하야타, 나가사카 겐야가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이자 한신은 사과 기자회견에서 “일주일 동안만 훈련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는 데 그쳤다. 또 이튿날 열린 센트럴리그 6개 구단 임시 이사회에서는 “정규시즌 개막 후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굳이 경기를 중단해야 하는가”라는 발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빈축을 샀다.
관중의 안전과 관련해서도 ‘불감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국내 10개 구단에 배포한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에 ‘확진자 발생시 정부 역학 조사관의 판단에 따라 자가 격리 접촉자를 분류하고, 접촉자는 14일 동안 자가격리한다’고 명시했다. 최근 KBO 구단의 훈련 취소 사례를 보면 접촉자를 ‘함께 훈련한 선수 전체’로 판단하고 있고, 격리 기간도 일본 규정의 두 배다. 전염성이 높고 잠복기간이 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징을 고려해서다. 또 ‘선수단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무조건 2주 동안 리그 운영을 중단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반면 센트럴리그 이사회는 “개막 후 관중간 거리를 2m 이상 유지하기 위해 수용 가능 관객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만 입장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엔 동의하면서도 “NPB 기본 권고에는 확진자가 나와도 훈련을 중단하라는 말이 없으니, 시즌이 시작되면 NPB 권고대로 직접 접촉자들만 일주일간 격리하고 나머지 경기는 그대로 진행하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호치’ ‘스포츠닛폰’ ‘주니치스포츠’ 등 여러 언론이 입을 모아 일본 구단들의 느슨한 대처에 “이런 자세로 프로야구를 개막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을 쏟아낸 이유다.
센트럴리그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지켜 본 퍼시픽리그 대표들은 결국 다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개막 연기와 경기 축소라는 또 다른 선택지를 마련해야 했고, 결국 4월 3일 열린 양대 리그 12개 구단 전체 대표자 회의에서 센트럴리그 대표들과 머리를 맞대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돔구장이 많아 12월까지 일본시리즈가 이어지더라도 추위로 인한 경기 진행상의 문제가 거의 없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됐다.
고토 요시미쓰 소프트뱅크 사장은 “선수 중에 확진자가 나와 모든 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또 일부 구단의 훈련 중단으로 모든 팀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어 형평성 문제도 나올 수 없다. 개막을 추가 연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개막 일정 연기로 텅 빈 시애틀 홈구장. 미국은 독립기념일(7월 4일) 개막에 대한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메이저리그는 독립기념일 개막설?
가장 늦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메이저리그는 미국 정부의 바이러스 확산 차단 방침에 따라 3개국 리그 중 가장 먼저 5월 중순 이후로 시즌 개막 연기를 결정했다. 한국보다 더 많은 팀당 162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리그라 변화에 대비해야 할 요소들이 더 많다. 따라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 노조는 늦어도 4월 11일(한국시간)까지 올 시즌 경기 수와 로스터 확대 초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속출했다. 로스 앳킨스 토론토 단장은 투수의 피로도를 줄이고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마이너리그에서 시행하고 있는 ‘7이닝 더블헤더’를 제안했다. 애런 분 뉴욕 양키스 감독은 “현행 빅리그 로스터 26명 안에서는 투수 수가 13명으로 제한돼 있으니, 로스터 수를 한 명 늘려 투수 14명 이상을 기용할 수 있어야 더블헤더를 치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162경기를 모두 치른 뒤 돔구장이 있거나 기온이 따뜻한 지역의 중립구장에서 ‘크리스마스 월드시리즈’를 치르면 각 구단 수입에 손해를 보지 않고 폭발적인 흥행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일단 양 리그 30개 구단 구단주들은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합의 하에 결정한 연봉 보조, 등록 일수 등 여러 임시 조항을 만장일치로 승인해놓은 상황이다. 먼저 정규리그 개막이 5월 중순 이후로 연기된 탓에 구단들은 두 달에 걸쳐 총 1억 7000만 달러를 선불금 형식으로 선수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개막 예정일이던 3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선수들에게 줘야 하는 급여 개념이다. 정규시즌이 시작하면 선수들은 자신의 연봉을 경기 수에 맞춰 일할 계산한 액수를 월별로 나눠 받게 된다.
또 만약 올해 정규시즌이 취소되더라도 선수들은 지난해와 같은 서비스 타임을 보장 받는다. 연봉 협상과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에 중요한 기준이라 선수들에게는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혜택으로 여겨진다. 대신 구단은 해마다 40라운드로 진행되던 아마추어 신인드래프트를 올해 5라운드, 내년 20라운드로 축소해 시행하기로 했다. 경기수 축소에 따른 각 구단의 재정 부담을 덜겠다는 의도다.
이제 관건은 시즌을 과연 언제 시작하느냐에 달렸다. AP통신에 따르면, 사무국과 선수 노조 양측은 “다중 집회와 관련한 정부의 제한 조처가 풀리고 미국과 캐나다 간 여행 제한 조처도 해제돼야 시즌을 시작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사무국은 노조, 의료 전문가와 상의를 거쳐 선수, 구단 관계자, 관중의 건강과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 개막 시기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 중심도시이자 류현진의 소속팀 연고지인 토론토가 6월 30일까지 시(市) 주도 행사와 이미 승인된 행사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4월 1일 전해졌다. 토론토시 당국은 “거리 행진, 축제와 같은 행사를 금지하는 것일 뿐,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프로 스포츠 경기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현지에선 “온타리오 주가 5명 이상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금지한 상황이라 4대 프로스포츠 경기가 정상적으로 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동시에 CBS 스포츠와 야후 스포츠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현지 시간으로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정규리그를 개막하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선수와 구단들이 개막 전 최소 4주간의 ‘두 번째’ 스프링캠프가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있고, 토론토에는 강력한 행사 금지 명령이 발동됐다”며 “미국에서 축제의 날인 독립기념일에 메이저리그를 개막한다면, 가장 의미 있는 ‘정상적 삶으로의 복귀’가 될 것”이라고 썼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