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계열사인 삼성벤처투자(왼쪽)와 크레듀(오른쪽)는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에 각각 2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특히 삼성, LG, SK,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들은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 대선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들이 정치자금 제공루트로 활용한 계열사 중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대선자금 내역 보도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계열사였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왜 대기업들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계열사 명의로 대선자금을 제공했던 걸까.
일단 노출을 피하기 위해 계열사를 동원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단순히 노출을 피한다는 점 외에도, 대기업들이 외부에 비교적 노출되지 않은 이들 계열사들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 관리해오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선자금 전면 수사라는 고강도 칼을 빼든 검찰이 대기업들의 숨겨진 돈줄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이 회사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삼성계열]
삼성은 지난해 대선 당시 삼성벤처투자 블루텍 크레듀 등의 계열사를 통해 각 2억원씩을 제공하고, 또다른 계열사 토로스물류를 통해 1억원을 노무현 캠프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캠프에 비자금을 제공한 삼성 계열사 가운데, ‘삼성’이라는 이름이 적시되어 있는 회사는 ‘삼성벤처투자’가 유일하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보도 듣도 못한 회사들이다.
그렇다면 삼성이 대선자금 제공을 위해 동원한 계열사들은 어떤 회사들일까.
지난해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측에 2억원의 대선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벤처투자는 벤처열풍이 한창이던 지난 99년 10월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등 삼성의 주력 계열사들이 3백억원을 공동 출자해 설립한 회사.
이 회사는 신기술 사업자에 대한 투·융자와 경영 및 기술지도, 신기술투자 조합의 설립 및 자금운용관리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고 있다. 회사의 대주주는 삼성중공업(17%) 삼성전기(17%) 삼성SDI(16.33%) 삼성전자(16.33%) 삼성증권(16.67%) 삼성테크윈(16.67%) 등.
회사 설립 이후 올해 초까지는 줄곧 삼성구조본 출신인 이재환씨가 대표이사를 맡아왔으나, 올 1월 김상기씨로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문제는 이 회사가 대선자금으로 낸 2억원을 회계상 어떻게 처리했느냐는 부분이다. 금감원에 보고된 이 회사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보면 기부금 항목으로 2억3백여만원이 나간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전 회계기간(2001년 1월~12월)에도 비슷한 액수인 2억1백여만원이 기부금으로 나간 것으로 기록돼 있어 2002년 회계에서 나타난 기부금 2억원이 대선자금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
때문에 이 회사가 어떻게 대선자금 2억원을 회계처리했는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2002년 회계에서 특별손실도 전혀 없어 장부상 2억원의 처리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회계전문가들은 이 회사가 어떤 방법을 통해 2억원을 조달했는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사가 다른 경로를 통해 2억원을 조달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대선자금 제공 당시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았던 이재환씨가 삼성구조본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룹의 ‘밀명’과 연관이 있지 않느냐는 추론을 낳고 있는 것.
또다른 대선자금 제공기업인 블루텍은 지난 2000년 12월 삼성전자가 투자유가증권 3백억원을 현물출자하여 설립한 회사로, 현재 본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다. 삼성전자가 이 회사의 지분 90%를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10%는 개인 명의로 돼 있다.
이 회사는 음향기기 개발, 제조·판매 및 애프터서비스사업, 소프트웨어개발 및 판매, 수출입업 및 판매알선업 등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박상호 강신상 문강호씨 등이 이사로 등재돼 있으며, 대표이사는 회사설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안태호씨로 등재돼 있다.
블루텍의 회계장부는 더욱 눈길을 끈다. 이 회사의 지난 2001년 및 2002년도 감사보고서를 보면 광고선전비가 2001년에 4천6백90만원에서 지난해에는 1백20배에 가까운 56억원으로 급증했다.
회계관행상 특정항목의 비용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증감할 경우 감사인, 또는 회계인에 의해 주석이 달려야 함에도 이 회사의 전년도 광고선전비 항목에는 이와 관련된 설명이 없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사업구조 변경에 따라 노출빈도를 높여야 하는 제품(옙:MP3 플레이어)에 대한 광고를 많이 집행했기 때문에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고 해명했다.
옙 부문 사업을 자사에 편입하기 전까지는 삼성전자에서 광고를 직접 집행했지만, 사업부문을 편입한 이후에는 자사에서 직접 광고를 집행하게 됐다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옙의 경우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보다는 대부분 삼성전자 브랜드로 납품하는 것이어서 자체 브랜드마케팅비용이 수십억원에 이르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또다른 대선자금 제공기업으로 지목된 크레듀는 교육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목적으로 지난 2000년 설립된 회사로, 전신은 삼성인력개발연구원이다.
서울 중구 순화동 순화빌딩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e삼성이 48.32%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밖에 삼성경제연구소 14.5% 삼성SDS 9.66% 삼성네트웍스 9.66%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김영순씨가 회사 설립 이후 현재까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조일현 이정환씨가 등재이사로 돼 있다.
이 회사의 경우 지난해 1백31억원의 매출을 올려 27억원의 순익을 남겼다. 2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회사는 순익의 7%가량을 낸 셈이다.
토로스물류(현 삼성전자로지텍)는 지난 98년 4월 설립된 회사로 기업물류관리 종합 대행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02년 12월31일 현재 삼성전자가 발행 주식의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올 8월 ‘삼성전자로지텍’으로 상호를 바꿨다. 이 회사 역시 본점은 수원시 팔달구 신동에 위치해 있다.
정형웅 이사가 올 2월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대선자금이 건네진 시점에는 이용우씨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 LG엔시스가 입주해 있는 LG마포빌딩. | ||
LG그룹은 LG마이크론 LG엔시스 LGMRO LG니꼬동제련 해양도시가스 등 5개 계열사를 통해 각각 2억원씩 10억원을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LG전자 LGCNS LG투자신탁운용 LG선물 등 10여 개 기업에서는 각각 1억원씩 모두 10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이한 점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기업들은 1억원씩을 제공한 반면 ‘무명’의 계열사들은 2억원씩을 제공한 부분이다.
2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LG엔시스는 2001년 12월, 컴퓨터 서버, 네트워크장비, 금융시스템 등의 전자제품 및 관련 소프트웨어의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현재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 회사는 2002년 12월31일 기준으로 자본금 50억원이 전액 (주)LGEI에 의해 출자되었으며 대표이사는 박계현씨가 맡고 있다.
또 LGMRO는 부동산 임대 매매를 주업종으로 하는 회사로 2002년 1월 설립됐다. 지난 2003년 3월1일 (주)LGEI와 (주)엘지씨아이가 합병함에 따라 (주)LG가 이 회사의 주식 80만 주 전량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견 사장(LG생활건강 부사장 출신)을 비롯해 상무이사로 배정현 김명득씨가 등기부등본에 올라 있다.
지난 2000년 4월, LG정밀주식회사에서 상호를 변경한 LG이노텍은 LG전자(주)가 69.8%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자본금은 4백31억여원.
현재 상장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진 LG이노텍은 최근 내부문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
기초 유기화합물 제조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LG MMA도 1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 현대·기아자동차 사옥 | ||
모두 10억원의 대선자금을 노무현 후보 캠프에 건넨 것으로 알려진 현대자동차는 계열사를 동원해 대선자금을 제공하기보다는, 계열사 임직원 명의로 대선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가 각각 6천만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고, INI스틸이 7천만원, 현대하이스코가 5천만원을 제공한 것으로 보도됐다.
경남 창원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철도차량 제조업체 로템(주)도 5천만원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의 경우 계열사보다는 계열사 임직원 명의로 2천만원에서 6천만원까지 개별적으로 대선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