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공존 불가’ 파출소 대신 소공원 유지 선택…주민들 “존치 약속 해놓고 기만”
5월 1일 폐쇄하는 이촌파출소. 인근 주민 3만여 명의 치안 공백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박현광 기자
#논란의 ‘고승덕 변호사 땅’
이촌1동에 ‘고승덕 땅’이라고 불리는 부지는 두 필지다. 이촌1동 301-86 꿈나무소공원(1412m²), 이촌1동 301-60 이촌소공원(1736m²)이다. 각각 약 427평과 525평이다. 이촌파출소는 두 필지 가운데 꿈나무소공원에 1975년 준공됐다.
고승덕 변호사의 아내가 대표로 있는 유한회사 마켓데이가 2007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게 42억여 원을 주고 위의 두 필지를 샀다. ‘고승덕 땅’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다. 당시 공단은 재정 건전성을 위해 놀고 있는 땅을 마켓데이에 매각했다.
고승덕 변호사를 선임한 마켓데이가 용산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촌파출소 존치를 두고 설왕설래가 시작했다. 마켓데이는 부지 사용료 지급 청구·파출소 철거·공원 결정 무효 확인·부당이득금 반환 등 4개 소송을 벌였다. 마켓데이는 모든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마켓데이는 용산경찰서로부터 이촌파출소 건물을 2589만 원에 넘겨받았다. 법원은 또 ‘고승덕 땅’ 두 필지의 공원 용도 설정을 2020년 7월 1일부터 해제하게 했다. 구청의 허가만 있으면 7월 1일부터 부지 개발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고승덕 변호사 땅’으로 알려진 꿈나무소공원과 이촌소공원. 폐쇄 예정인 이촌파출소는 꿈나무소공원에 위치해 있다. 사진=다음지도 캡처
#마켓데이, 이촌파출소 나가라고 했나
판결에 따라 파출소 존치가 불투명해지자 용산경찰서는 지난 2월 3일 마켓데이에 4월 30일부로 파출소를 폐쇄하겠다고 통보했다. 세간에는 마켓데이가 부동산을 매입하려는 용산구청의 제안을 가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하면서 파출소 폐쇄를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는 상당 부분 사실과 달랐다.
마켓데이는 용산경찰서와 이촌파출소 건물 사용을 두고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마켓데이는 용산경찰서에 지난해 4월 29일부터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되 10년 임대를 보장했다. 월 임대료는 1500만 원이었다. 계약서에 따르면 용산경찰서는 2029년 4월 30일까지 파출소 건물을 쓸 수 있었지만 나가겠다고 한 셈이다. 파출소를 폐쇄한다고 하자 마켓데이는 3월 23일 용산경찰서에 임대료를 받지 않겠으니 남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알려진 바와 달리 용산구는 부동산 매입을 두고 마켓데이와 가격 협상을 시도하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장현 구청장은 2020년 4월 23일 이촌파출소 관련 구의회 답변에서 “고 변호사 측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파출소 부지 사용료 지급 청구 소송, 파출소 건물 철거 및 인도 소송, 강제 집행 명령 등 부당한 행위를 지속해왔다. 공원을 지켜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선 공원을 포기하고 개발하려는 조건으로는 협상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오히려 이촌파출소 존치를 두고 각종 제안을 한 쪽은 마켓데이였다. 마켓데이는 2017년 7월을 기점으로 용산구에 꿈나무소공원 개발을 조건으로 크게 네 가지 제안을 했다. △꿈나무소공원과 이촌소공원 가운데 이촌소공원 기부채납 △파출소를 이촌소공원에 새로 지어 기부채납 △파출소를 현재 위치인 꿈나무소공원에 새로 지어 기부채납 △아예 꿈나무소공원을 용산구가 매입해달라는 제안까지 했다. 애초 꿈나무소공원 부지 개발로 이익을 챙기길 원하는 마켓데이 입장에선 개발 허가권을 가진 용산구와 협상을 시도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용산구는 마켓데이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2020년 4월 23일 이촌파출소 관련 구의회 답변에서 “이촌동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원을 해체하고 상업 용지로 개발을 하는 기부채납 제안을 당연히 거부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개발 허가 없인 애초 불가능했던 이촌파출소 존치
용산구가 이촌파출소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해 예산 240억 원을 확보했다. 240억 원으로 ‘고승덕 땅’ 두 필지를 매입해 파출소와 공원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240억 원이 두 필지를 매입하기에 충분한 보상이냐는 논란이 있지만 이를 제쳐두더라도 용산구 계획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현행 공원녹지법에 따르면 소공원 안에 파출소가 위치할 수 없다. 용산구가 공원 용도로 ‘고승덕 땅’을 수용보상한다고 해도 현행법을 적용해 파출소를 폐쇄해야 한다. 결국 파출소와 소공원이 현재 위치에 존치할 방법은 단 하나인 셈이다. 마켓데이가 해당 부지를 소유하면서 스스로 부지 개발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켓데이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리 없다.
현실적으론 마켓데이에 부지 개발을 허가해주고 이촌파출소를 존치하든가, 허가권을 내주지 않는 대신 이촌파출소를 폐쇄한 뒤 부지를 매입해 공원을 지키든가 하는 선택권이 남는다. 용산구는 후자를 택한 꼴이다.
#용산구는 현행 공원녹지법 정말 몰랐나
이촌1동 일부 주민들은 공원을 지키겠다는 용산구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지만 성장현 구청장이 그동안 주민들을 속여 온 것 아니냐고 분개한다. 이촌1동 주민 홍정희 씨는 “파출소 대신 공원을 지키겠다고 판단했다면 애초에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데, 구청장은 최근까지 이촌파출소 현 위지 존치를 주민들에게 약속해왔다는 것이 황당하다”고 전했다.
성장현 구청장은 2018년 10월 22일 구의회에서 “이촌파출소 또한 그 자리에 계속 존치토록 해서 치안 공백으로 인해 우리 구민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2월 26일에도 성장현 구청장은 이촌1동 주민센터에서 마켓데이로부터 해당 부지를 매입해 파출소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까지도 이촌파출소 존치를 약속해왔다고 전해진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문서들에 따르면 용산구는 성장현 구청장이 구의회에서 발언한 2018년 10월 22일 이전부터 공원과 파출소가 공존하지 못한다는 현행 공원녹지법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까닭에 이촌파출소 이전 부지를 찾는 등 대책을 만들고 있었던 정황도 드러났다.
2018년 10월 1일 용산경찰서는 용산구청장에게 보낸 ‘이촌파출소 부지 관련 문의’ 공문에서 법적 문제로 이촌-한강파출소를 통합해 지구대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때 소공원에 지구대·파출소가 존재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공원녹지법 24조와 같은 법 시행령 23조를 첨부했다.
용산구는 지난해 10월 4일 용산경찰서에 문제의 부지를 공원으로 수용할 테니 공원녹지법에 따라 이촌파출소를 폐쇄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용산구가 용산경찰서에 보낸 ‘이촌파출소 시설 이전 계획에 대한 의견 조회’ 공문을 보면 “공원조성계획 변경을 거쳐 토지·건물 보상 완료 시 이촌파출소로 임차·사용되었던 건물은 관련 법률에 따라 공원시설로 활용되어야 함에 따라 이촌파출소 시설 이전이 불가피함을 안내드린다”고 전했다.
용산구는 2018년 초 인근 아파트 재개발 부지에 이촌파출소 부지를 확보하려고도 했다. 용산구는 2018년 5월 2일 서울시에 ‘서빙고 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 변경 입안 제안’이라는 공문을 보내 인근 아파트 재개발 구역에 파출소를 위한 공공청사 부지를 만들어 달라는 요지의 요청을 보냈다. 2018년 2월 주민설명회를 열어 주민들과 협의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고진숙 미래통합당 용산구의원은 “구청장이 공원 안에 파출소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고도 이촌파출소 존치를 약속해왔다면 문제다. 그 사실을 몰랐다면 능력이 의심된다”며 “이촌1동 주민들의 안전을 두고 기만하는 처사에 유감”이라고 전했다.
#사상 첫 ‘거점형 치안센터’로 축소 이전
결국 용산경찰서는 5월 1일부터 이촌1동주민센터 1층에 이촌치안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치안센터는 본래 주간에만 민원상담을 처리하는 곳이다. 하지만 용산경찰서는 파출소 폐쇄에 따른 치안 공백을 막기 위해 이촌치안센터를 사상 첫 ‘거점형 치안센터’로 운영하기로 했다. 주간 7명, 야간 4명 인원이 24시간 교대하며 근무한다. 또 이촌파출소에서 1.7km 떨어진 한강로파출소를 지구대로 승격할 계획이다.
이촌1동주민센터 1층에 지어지고 있는 거점형 이촌치안센터. 공간을 넓히는 작업 중이다. 사진=홍정희 씨 제공
주민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이촌치안센터는 이촌파출소와 비교해 규모가 축소됐다. 경찰이 이촌파출소 운영에 필요하다고 제시한 면적은 435m²인데, 이촌치안센터 면적은 30m²에 불과하다. 인원도 총원 31명에서 11명으로 줄었다. 인근 한강로파출소를 지구대로 승격해도 출동 시간이 9분 이상 걸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촌1동 한 주민은 “이촌파출소가 이전된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아무래도 치안센터로 축소되면 불안할 것 같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