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응급기업’까지 자금 수혈 요청…재무 건전성 악화 우려 목소리 높아
국책은행 산업은행이 코로나19 경제위기 대책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사진=임준선 기자
#코로나19 기업 위기 해결사 산은
산업은행은 최근 구조조정본부 조직과 인력을 확충했다. 구조조정본부 산하에는 기업경쟁력제고지원단을 새롭게 구성하고 추가로 3개의 팀을 배치했다. 과거 굵직한 구조조정을 맡았던 인력들이 파견됐다. 구조조정본부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줄면서 이동걸 회장 취임 이후인 2018년부터 ‘부문’에서 기업금융부문 산하의 ‘본부’로 축소했던 조직이다. 여전히 산하 조직이지만 일부 업무에서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구조조정본부 기업경쟁력제고지원단은 생사의 기로에 놓인 기업들을 담당하고 있다. 재무위기 해소를 위한 처방을 내리고 자금을 수혈하는 등의 역할을 맡았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두산그룹 ‘전담팀’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최근 매각 절차에 난항을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과 대주주의 갑작스러운 신규 투자 철회로 돌발 변수가 된 쌍용차, 그 밖에 코로나19로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예약환자’ 등을 대비해 구성했다는 해석에 힘이 더 실린다.
구조조정과 별도로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의 핵심 역할도 맡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개최한 비상경제회의는 총 5차례. 대량 실직과 연쇄 도산 사태를 막기 위해 253조 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는 산업 지원책을 마련했다. 산은은 전체 지원금 가운데 약 60조 원의 조달 및 집행을 총괄한다.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산은이 담당하는 지원 규모가 가장 크다.
40조 원 이상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설치는 가장 최근에 결정됐다. 오는 5월 산은 산하에 기금이 설치된다. 이를 통해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전력·통신, 7개 업종에 자금을 수혈한다. 대출과 지급보증부터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매입, 펀드 출자 등 지원 방식도 다양하다. 앞선 정부의 1·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결정된 100조 원 규모의 민생, 금융안정 프로그램에서 16조 6000억 원을 맡게 된 것과 별도의 조치다. 이 외에 저신용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단기사채 등을 매입할 최대 20조 원 규모의 특수목적기구(SPV) 설립에도 산은이 참여한다.
#“환자 밀려들어도 병상 충분하다”
정부 지원책과 별개로 산은의 자금 수혈은 이미 진행 중이다. 두산중공업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저비용항공사(LCC) 등에 투입한 수조 원대 자금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로 얼어붙었던 회사채 시장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도 산은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4월 초부터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들의 채권을 사들이는 중이다. 이 시기 회사채 발행에 도전한 롯데지주와 주요 계열사,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산은과 채권안정펀드 운용사 등판에 힘입어 힘겹게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전방위로 대규모 자금 수혈을 진행 중이지만 산은은 향후 이어질 정부 지원 대책도 정상적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4월 24일 기업을 ‘응급환자’로 비유해 “병상을 많이 비워놨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더라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산은의 한 관계자 역시 일요신문에 “현재 지원이 필요한 기업의 절반 이상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은은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비상경제회의에서 결정된 지원책의 재원도 국가보증채권을 발행해 마련한다. 산은 이사회도 별도로 지난 4월 10일 후순위 산업금융채권 한도를 연말까지 4조 원으로 확대했다.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든 셈이다. 현재 산은이 발행한 후순위 산금채 규모는 5조 4000억 원으로, 이번에 확대한 규모를 더하면 법정한도 최대치까지 늘렸다. 산은에 손 벌리는 기업이 많아지자 이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2019년 1월 산업은행 본점에서 대우조선해양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동걸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자본 확충해 산은 부담 줄여줘야
그러나 문제는 산은의 부담이 지금 단계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와 산은이 지원 규모와 폭을 크게 늘렸지만 현재로서는 정확한 지원 규모와 숫자는 가늠하기 어렵다. 도움을 바라는 기업들은 대기업, 중견·중소 기업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미 중증환자로 분류돼 수혈을 받았던 앞서의 기업들이나 이미 매각됐지만 경영 정상화에 실패한 기업들도 추가 지원을 간청하고 있다.
재무 건전성 지표도 위태롭다.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4.05%다. 2년 전부터 줄곧 떨어지고 있다. 국내 은행 평균은 15.25%다. 산은의 부실채권 비율은 2.67%로 국내 은행(평균 0.77%) 중 가장 높다. 산은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한국전력 등의 실적도 예전 같지 않다. 이들 기업들이 적자를 내면 산은의 BIS 비율도 떨어진다.
BIS 비율을 높이려면 기업 대출을 줄이거나 주주들이 자본금을 늘려줘야 한다. 기업 대출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자본확충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산은 안팎에서 꾸준히 나왔다. 지원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면서 산은도 한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는 이르면 6월 초 나올 3차 추경안에 산은에 대한 자본확충 규모 등을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산은에 대한 출자를 두고 그동안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었다. 금융위는 충분한 수준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기재부는 자금 지출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출자를 할 순 없다며 반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의견차이 여부는 확인해주기 어렵다. 자본확충 방안 여부는 검토 중이고, 규모는 2~4조 원이 거론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과 기업 지원이 늘면서 이동걸 회장이 추진해온 산은 ‘병원 개선’ 작업도 미뤄지게 됐다. 산은은 그동안 병실에 누워있던 기업들을 퇴원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KDB생명보험과 같이 투자금 대비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빠른 처리를 추진해왔다. 앞서의 구조조정 조직을 축소한 이유다. 구조조정에서 신성장 기업 육성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구조조정 조직이 다시 확대된 상황에서 산은의 체질 개선 작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동걸 회장의 임기는 올해 9월 마무리된다. 기금 집행 및 구조조정 업무가 한창 진행될 시기다. 이 회장이 직접 추진했던 체질 개선 작업도 그 사이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산은은 지금까지 회장이 연임한 전례가 없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