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원장 ‘총선 휴가’ 담당 국장 이동 ‘깜짝 인사’…친정부 성향 감사위원회 돌파 의지 관측
2017년 12월 21일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최재형 감사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이준재 국장이 직전까지 몸담고 있던 곳은 공공기업감사국이었다. 감사원 조직도와 직제표 등에 따르면 공공기업감사국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공공기관 감사를 담당한다. 최근 초유의 사태로 번지고 있는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 관련 감사를 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감사를 진행했던 국장이 갑자기 다른 국으로 이동한 셈이었다. 직위상 수평 이동에 공석을 채우기 위한 것이지만 감사원 내부에선 뒷말이 무성하다. 초유의 사태 중심에 선 실무자가 자리를 옮기는 건 사실상 ‘이유 있는 인사’로 봐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이준재 국장이 정기 인사를 통해 공공기관감사국장이 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부추겼다. 이 국장은 2019년 12월 29일에 공공기관감사국장이 됐다. 이번에 신임 공공기관감사국장이 된 건 유병호 국장이다.
이번 인사에 대해 탈원전 반대 운동을 지속해 온 시민단체 반응은 4월 초와 사뭇 달라졌다. 이제껏 시민단체는 감사원장이 정권 눈치를 보며 ‘불편한 진실’을 감춰왔다고 판단해 왔다. 원자력정책연대, 원자력국민연대, 행동하는 자유시민, 환경운동실천협의회 등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는 4월 6일 오후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재형 감사원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조금씩 이런 기조가 변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제껏 최재형 원장이 정권의 요구에 따라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감사 결과를 미뤄왔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이번 휴가 사태와 인사를 보니 되레 최 원장이 친정부 인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향해 반격을 시작하는 모양새라는 걸 깨달았다”며 “별 문제가 없었다면 중요한 시기에 칩거하다 나와 굳이 월성1호기 담당 국장을 바꿨을 리 없다. 애초 나온 결론을 가지고 감사위원회가 반대하니 새로운 국장을 배치해 다시 사실에 입각한 감사 보고서를 만들어 감사위원회를 상대하겠다는 함의가 옅보인다”고 했다.
최재형 원장 최근 행보를 보면 이러한 시민단체의 해석은 설득력을 얻는다. 최 원장은 실제 4월 14일부터 4월 17일까지 휴가를 냈다. 감사원 쪽에서는 “4월 16일 감사위원회가 열리지 않게 돼 최 원장이 휴가를 간 것이다. 건강 등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월성1호기 관련 감사 심의가 며칠간 밤늦게까지 이뤄지면서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공직기강을 담당하는 감사원장이 특별한 사유 없이 휴가를 낸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사실상 항명에 가깝다는 평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 뒤 즉시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 담당 국장을 교체했다.
감사위원회까지 열린 걸로 미뤄 보면 실무진 선에서는 이미 감사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 감사는 보통 숫자와 실무자의 문답을 토대로 결론이 나오면 감사위원회 심의 때 감사 결과 발표의 ‘톤’과 징계 수위에 대한 논의를 한다. 감사의 결론 자체는 달라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속된 감사위원회 개최에도 결론이 안 나왔다는 건 감사위원회가 감사를 다시 하라는 압박을 보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감사원 감사위원회 대부분은 친정부 인사로 분류된다. 감사위원 7명 가운데 1명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 1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신이며 1명은 국무조정실 출신이다. 국무조정실 출신 임찬우 감사위원 인사는 아예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관련 감사 결과를 두고 한창 씨름 중이던 2월 19일 났다. 하루 전날 정세균 국무총리가 최재형 원장을 만나러 온 뒤 나온 인사였다.
일각에선 친정부 성향 감사위원회 입맛에 맞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면 감사 결과 보고서 발표가 이와 같이 지지부진했을 리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번 인사가 새로운 인물로 같은 결과를 내 감사위원회 압박을 이겨내겠다는 최재형 원장 묘수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감사원 관계자는 “자리가 생겨서 난 인사일 뿐이다. 이번 인사와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 관련 감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일의 시발점은 2년 전쯤으로 돌아간다. 현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2018년 4월 취임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대표는 두 달 뒤인 2018년 6월 이사회를 열고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의결을 이끌어냈다. 월성 1호기가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문재인 정부 이전 자체 분석에서 월성1호기 가치가 4조 원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월성1호기 정지를 요구하자 2018년부터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를 여러 차례 번복했다. 4조 원의 가치는 2018년 3월 3707억 원으로, 5월 10일 1778억 원으로 평가됐다. 경제성 검토회의에는 산업부 관계자가 동석하기도 했다. 이런 뒤 나온 최종보고서의 월성1호기 경제성은 224억 원이었다.
그 뒤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과정은 속전속결로 이뤄져 왔다. 2019년 2월 한국수력원자력은 상위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2019년 10월과 11월 두 차례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일부 위원은 감사원 감사 뒤에 영구정지 안건을 심의하는 게 옳다며 일방적인 조기 폐쇄를 반대했다. 2019년 9월 국회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감사원 감사 요구안을 의결했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2019년 10월 초 감사에 착수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감사원은 감사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감사 결과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2019년 12월 26일 감사원은 국회에 감사 기간 2020년 2월 말까지 연장 요청해 달라고 했다. 특별한 사유로 감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2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이 받아 든 감사 결과 납기는 올 2월 말이었다. 납기를 두 달 넘긴 지금껏 결론은 내려지지 않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