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대일 소통창구…일본 정부에서도 이 당선자 행보에 관심
이낙연 당선자가 5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숭인동 일대에서 시민들에게 당선인사를 하고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특히 이 당선자는 민주정부 1∼2기인 김대중(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도 직간접적으로 대일 소통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권을 비롯한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 당선자가 한·일 소통 역할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은 2002년 대선 직후다.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일본 아사히신문의 인터뷰를 이어준 것도 다름 아닌 이 당선자였다고 한다. 이 당선자는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 대변인에 이어 노무현 당선자 대변인, 제16대 대통령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 등을 각각 맡았다. 1989년부터 동아일보의 도쿄 특파원을 지냈던 이 당선자는 원내 입성 후 한·일 의원연맹 수석부회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일본 내부에선 한·일 관계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았다고 한다. 일각에선 87년 체제 이후 한국 대통령과 인터뷰를 꼬박꼬박 한 아사히신문의 전통도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한 관계자는 “그때 나서준 것이 이 당선자”라고 치켜세웠다.
실제 14∼19대 대통령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혹은 취임 직후 아사히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노 전 대통령도 이 당선자의 역할로 2003년 서울 정권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당시 아사히신문사 하코시마 신이치 사장, 아키야마 코타로 편집국장 등과 인터뷰했다. 노 당선자는 이 자리에서 “북핵 문제는 대화로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DJ도 당선자 때인 1998년 1월 23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1997년 10월∼1999년 2월)으로 재직할 당시였던 이 당선자는 이때도 한·일 간 물밑 조율 작업에 어느 정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선자는 1987년 대선 때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DJ의 마크맨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이낙연 역할론이 더 커졌다.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가 본격화하자, 당시 총리였던 이 당선자가 외교 전면에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적절히 역할을 분담해 정상급 외교 분야에서 함께 뛸 필요가 있다”며 ‘문재인·이낙연’ 투톱 외교 체제를 공식화했다.
이 당선자는 총리 임기 막판 신북방·신남방 외교전을 펼치면서 포스트 아세안을 위한 다자 외교에 주력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에서도 이 당선자의 향후 행보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한·일 관계 교착 상태인 만큼, 이낙연 역할론이 다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