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진영 대세론 위협할 다크호스로 부상중…둘 다 ‘박연차 게이트 멍에’ 공통점
대세론을 위협하는 다크호스. 대권 판의 게임 체인저다. 대세론과 다크호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다. 포스트 총선 정국에서 부상한 여야 다크호스의 핵심 키워드는 50대다. 진보진영 다크호스는 ‘노무현·강원’ 등을, 보수진영 다크호스는 ‘이명박(MB)과 부산·울산·경남(PK)’ 등을 각각 관통한다. 이들에게 ‘박연차 게이트’는 멍에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김태호 무소속 당선자 얘기다. 당 입장에서 다크호스는 ‘전략 옵션’이다. 하지만 내부 갈등을 촉발할 땐 ‘전략적 딜레마’의 원흉으로 전락한다.
이광재 국회의원 당선자가 2월 24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진짜가 다시 나타났다.” 정치권 한 관계자가 원조 친노(친노무현)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당선자(55)의 21대 국회 원내 진입 확정 후 던진 말이다. 강원 원주갑에 출마한 이 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48.6%의 득표율을 기록, 17∼18대에 이어 3선 고지에 올랐다. 민주당의 강원 지역 성적표는 총 8석 중 3석에 그쳤지만, 진짜 친노의 등장은 여권으로선 천군만마다.
이 당선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함께 ‘좌희정·우광재’를 형성, 노 전 대통령 책사 역할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처음 정치권에 들어온 1988년 비서관을 시작으로, 2002년 대선 직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국정상황실 팀장과 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 땐 강원도지사를 지냈다. 이 당선자는 강원도 평창 출신이다. 노 전 대통령 왼편에서 브레인 역할을 했던 안 전 지사가 ‘미투 파동’으로 사실상 정치적 식물 상태로 전락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대권 주자 중 ‘원조 친노계’는 이 당선자뿐이다.
당내 인사들이 꼽은 이 당선자의 강점은 ‘선거 불패’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에 출마한 그는 46.7% 득표율로, 첫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4년 뒤 18대 총선 땐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같은 지역에 출마, 54.6%로 재선 고지에 올랐다. 당시 민주당은 강원 8곳 중 2곳에서만 이겼다.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의혹에 연루된 상황에서 치른 강원도지사 선거에서도 무난히 과반 득표율(54.4%)을 기록했다. 21대 총선까지 포함하면, 4전 4승인 셈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판만 만들어지면 대중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 당선자가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고난도 있었다. 불법 자금 수수 의혹으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됐다. 2심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이 당선자는 2010년 7월 1일 취임과 동시에 직무정지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확정판결 전 직무정지’를 규정한 지방자치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적지 않은 강원도민들은 당시 ‘이광재 구명 운동’을 펼쳤다. 헌재는 결국 이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그는 2개월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이광재 대망론이 꿈틀댄 것도 이때부터다. 대망론도 잠시, 이 당선자는 이듬해 1월 27일 대법원 확정판결로 도지사직을 잃었다.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특별 사면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9년 12월 30일이다.
오랜 기간 정치적 잠행 끝에 이 당선자는 강원도에서 부활했다. 공백 기간 중국 칭화대 공공관리대학원 객원교수와 학술·정책 연구단체인 여시재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적 중량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원로와 관료, 학자 등과 스킨십도 넓혔다. 여시재 출범 당시부터 ‘이광재 대권을 위한 외곽 조직’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당내 조직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경우 만만치 않은 세력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은 이광재 대망론의 분기점이다. 여당 주류인 친문계는 현재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문재인 대선 캠프와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 △이해찬 민주당 대표 체제의 당직자 △현 정부 청와대 출신 그룹 등으로 세분화됐다. 이 중 이 당선인과 접점을 갖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으로는 친문(친문재인) 직계인 전해철 의원을 비롯해 황희 홍영표 의원과 정태호 당선자 등 20명을 넘어선다. 차기 대권 경쟁 과정에서 이 당선자를 중심으로 친문계 분화가 본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문계는 지난해 민주당 원내대표 과정에서도 한 차례 강하게 분화했다. 전해철 의원 등 친문 직계들이 만든 부엉이 모임은 이해찬 대표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년 의원 대신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이인영 의원을 밀었다. 이해찬에 대한 반감이 비주류의 반란을 일으키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다. 이해찬 체제 당직자 그룹으로는 김태년 의원을 비롯해 윤호중 홍익표 의원 등이 꼽힌다.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 친문계는 김진표 박광온 의원 등이, 현 정부 청와대 출신인 윤건영 한병도 윤영찬 당선자 등이 각각 포함돼 있다.
이광재 대망론의 첫 시험대는 오는 8월 민주당 당권 경쟁이 될 전망이다. 이낙연 당선자를 비롯해 송영길 우원식 홍영표 의원 등이 뛰어들 것으로 보이는 민주당 차기 당권은 ‘포스트 문재인’ 향방을 가를 리트머스 시험대다. 이 당선자의 길은 △‘당권→대권’ 순차 도전 △대권 직행 열차 탑승 △당권 도전·대권 포기 등 크게 세 가지다.
다만 이 당선자가 어떤 길을 가든 친문계 분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광재를 중심으로 친문계가 대거 모이면 모일수록 대세론을 탄 이낙연 당선자와 당 주류의 시너지효과는 반감된다. 이광재 대망론과 이낙연 대세론은 ‘시소 관계’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당 한 관계자는 “대선 때까지는 민주당은 원팀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일축했다.
김태호 국회의원 당선자. 사진=박은숙 기자
문제는 그 이후다. 김 당선자와 같은 처지인 홍준표(대구 수성을) 무소속 당선자를 비롯한 권성동(강원 강릉) 윤상현(인천 남구을) 의원 중 일부는 복당 후 당권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권 의원은 차기 원내대표 경선 의사를 밝힌 상태다. 윤 의원은 통합당 몫 국회 부의장 후보군이다. 김태호 당선자는 홍준표 당선인과 함께 차기 대권 도전으로 기울었다.
관전 포인트는 김 당선자의 ‘대권 파괴력’이다. 김 당선자도 이광재 당선자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보좌진(1992년 이강두 전 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98년 경남도의원과 2002년 거창군수를 거쳐 32∼33대 경남도지사, 18∼19대 국회의원(경남 김해을) 등을 역임했다. 김 당선자가 보수 잠룡으로 떠오른 것은 2010년 8월 8일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을 때다. 당시 그의 나이는 49세로, 1971년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이후 처음으로 40대 국무총리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발목은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이었다. MB 정부 때인 2011년 8월 24일 김 당선자는 국무총리 후보자 신분으로 참석한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을 받았다. 김 당선자는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얼굴도 모른다던 그는 골프를 같이 친 사진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결국 낙마했다. 앞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의혹에 연루된 김 당선자를 조사했지만, 무혐의 내사 종결 처리했다.
여권도 김 당선자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 탈박(탈박근혜) 이미지, 경남도지사 등 행정경험 등의 강점 때문이다. 특히 보수진영 총선 패배의 원인인 외연 확장 실패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후보라는 점도 여권으로선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2년 전 지방선거 때도 이는 증명됐다. 김 당선자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에 출마해 43.0%를 기록, 김경수 경남도지사(52.8%)보다 9.2%포인트 낮았다.
하지만 여권 관계자들은 막판 김 당선자의 추격세가 만만치 않았다고 회고했다.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 막바지에 당 인사들이 경남에 상주하다시피 했다”며 “예상보다 김 당선자의 득표율이 높아 내부에선 당황한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친문계 일각에선 김경수 지사가 당의 총력 지원에도 불구하고 격차를 벌이지 못하자, “포스트 문재인으로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었다고 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