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암 선발에 중계진 놀라…KBO 유니폼 구입하려 해도 홈페이지엔 온통 한글뿐”
야구 해설위원 대니얼 김은 ESPN의 KBO 중계에 게스트로 나섰다. 사진=대니얼 김 제공
ESPN은 KBO 리그에 대한 정보가 없는 미국 팬들을 위해 KBO 리그에서 활약했던 에릭 테임즈(워싱턴 내셔널스), 조쉬 린드블럼(밀워키 브루어스)은 물론 LG 트윈스 타일러 윌슨의 아내 첼시 윌슨을 화상으로 초대, ‘빠던’으로 불리는 배트 플립 등 한국의 야구 문화를 소개했다.
지난 5일 삼성 라이온즈과 NC 다이노스의 대구 개막전에는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뉴욕 메츠 프런트 출신의 방송인 대니얼 김이 게스트로 출연, 한국 야구를 자세히 소개했다. KBSN스포츠 해설위원 출신으로 유튜브 ‘DKTV’를 운영 중인 대니얼 김과 인터뷰를 통해 ESPN과의 중계 협력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처음에 ESPN과 어떻게 연결된 건가.
“친한 친구가 ESPN에서 일하는데 보름 전부터 중계 이야기를 하더라.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ESPN의 제프 파산 기자한테도 방송 준비를 미리 해두라고 귀띔했다고 들었다. 한국 야구를 모르는 중계진한테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했고, ESPN 관계자를 통해 게스트로 출연해달라고 연락을 받았다.”
대니얼 김은 ESPN의 간판 프로그램인 ‘베이스볼 투나잇’ 등을 진행하고 있는 베테랑 캐스터 칼 래비치, 에두아르도 페레스와 함께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개막전 화상 중계에 나섰다. 칼 래비치는 중계권 협상이 타결됐을 때 SNS를 통해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야구를 ESPN과 KBO가 손을 잡고 생중계하게 됐다”는 소식을 알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로 KBO 리그 개막을 진심으로 반겼던 인물. ESPN 화상 중계는 모두 각자의 집에서 진행됐다. 에두아르도 페레스는 마이애미 자택 차고에 영상 수신 장치와 방송 장비 등을 설치하고 중계방송에 참여했다.
―화상 중계하면서 에피소드도 있었을 텐데.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은 삼성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펼쳐졌는데 ESPN 캐스터는 어느 팀이 홈 팀인 줄 모르고 있었다. KBO 리그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KBO 리그 선수의 플레이, 경기 분석보다 KBO 리그에서만 볼 수 있는 배트 플립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화상 중계의 한계도 존재했다. 오디오가 자꾸 끊기는 바람에 나중에는 휴대폰으로 중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KBO 리그에 대한 미국 야구팬들의 반응을 취재한 걸로 알고 있다.
“KBO 리그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평가가 많았다. 개막전 중계를 온라인으로 접속한 수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KBO 리그를 시청했겠지만 한국의 낮 경기가 미국에서는 새벽에 방송된 걸 고려한다면 나름 의미 있는 수치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모든 스포츠가 중단된 미국에서 KBO 리그는 큰 화제를 모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각 방송사들, 언론사에서 모두 KBO 리그 개막을 다뤘고, 이후에도 계속 이슈를 만들어냈다. 내가 트위터를 통해 접촉한 한 미국 팬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한국 야구를 통해 심적 위로를 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ESPN 중계진들이 KBO 리그의 배트 플립 외에도 한국 선수들을 비롯해 관심을 나타내는 분야가 있었나.
“SK 와이번스 박종훈 등 사이드암 투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걸 신기해하더라. 미국의 사이드암 투수는 불펜 스페셜리스트로 활용되는데 한국에선 선발투수로 나오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는 반응이었다. 미국 팬들한테는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강백호(KT 위즈), 박석민(NC) 등 KBO 리그 선수들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기도 했다. 미국은 야구 종주국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시작된 야구가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매우 재미있게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간에는 ESPN이 미국 팬들에게 익숙한 브랜드인 삼성과 LG 트윈스 경기를 주로 중계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전혀 아니다. 중계 영상을 (해외 중계권 사업 입찰을 진행했던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의) 스포티비를 통해 받기 때문에 스포티비의 중계 스케줄에 맞추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니얼 김은 ‘미국 현지에서 익숙한 브랜드인 삼성과 LG 구단 중계가 주로 편성된다’는 풍문에 대해 부인했다. 사진=대니얼 김 제공
―KBO 리그가 미국 전역에 중계된 후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눈에 띄고 있다. 그중 어떤 부분이 아쉬움을 주고 있나.
“미국 팬들이 KBO 리그 팀의 모자, 유니폼을 구입하려고 해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구단 홈페이지가 모두 한글로 제작돼 있고, 외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결제 시스템으로 돼 있어 응원하고 싶은 팀의 모자, 유니폼을 구입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많이 접했다. 앞으로 KBO 리그 구단은 해외 팬들을 염두에 둔 마케팅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올 시즌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야구가 개막된 곳은 대만이다. 대만은 지난 4월 12일부터 무관중으로 야구를 개막했지만 ESPN은 대만이 아닌 KBO 리그 중계권을 사들였다. 야구의 수준 차이도 있겠지만 에릭 테임즈, 메릴 켈리, 조쉬 린드블럼 등 KBO 리그를 거쳐 간 외국인 선수들의 MLB 재입성이 미국 팬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고, MLB 선수들을 역수출하는 KBO 리그의 수준에 대한 높은 평가가 ESPN 중계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ESPN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라디오 토크쇼 프로그램인 ‘마이클 케이 쇼’에서 1시간가량 한국의 배트 플립 문화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열리고 있는 KBO 리그는 어쩌면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만약 한화 이글스 경기에 류현진이 ESPN 게스트로 나온다면, 롯데 자이언츠전에 부산 출신의 추신수가 등장한다면 얼마나 큰 관심을 모을까. SK전에 김광현이 출연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스튜디오 출연이 아닌 화상 중계이고, 화상 출연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KBO 리그 경기에 KBO 리그 출신의 외국인 선수만 게스트로 참여하는 건 아쉬움이 크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선수가 등장한다면 KBO 리그의 가치와 관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