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 몰린 외신, 비대면 라이브 응원, 사회적 거리두기 시구까지 ‘진풍경’
각 구단 프런트는 선수들의 기운을 끌어 올리고 오래 기다린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집에서 야구를 보고 있는 전국 각지의 팬들과 현장의 응원단을 연결한 ‘전광판 응원 이벤트’가 대표적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국민들의 협조와 밤낮을 가리지 않은 의료진의 헌신 덕에 2020시즌 프로야구가 힘찬 첫 걸음을 내디뎠다.
5월 5일 어린이날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당분간 무관중으로 경기가 열린다. 사진=박정훈 기자
#인천과 잠실에 몰린 외신 기자들, 세계를 달군 KBO
역사적인 경기였다. 세계 대다수 프로스포츠가 코로나19로 중단된 가운데, 한국이 프로야구로는 대만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리그 개막에 성공했다. 수도권 구장마다 KBO 리그 개막전을 취재하기 위해 국내 취재진만큼 많은 외신 기자들이 모여 들었다. 잠실구장에 모인 취재진만 해도 국내외를 합쳐 150명으로 추산될 정도다.
매체 면면도 화려하다. 공식 개막전이 진행된 인천 SK 와이번스-한화 이글스전엔 AP통신, APTV, 블룸버그통신, 게티이미지(이상 미국), 펜타프레스(글로벌), AFP통신(프랑스), 로이터통신, 로이터TV(이상 영국) 알자지라(중동) CNA(싱가포르), 니혼TV(일본) 등이 취재를 요청했다. 또 전통의 라이벌전이 열린 잠실 LG 트윈스-두산 베어스전엔 니혼TV와 후지TV, NHK, 주니치신문(이상 일본) LA 타임스(미국) 중국중앙방송(CCTV)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홍콩), CNA가 취재를 위해 찾았다. CCTV는 KT 위즈-롯데 자이언츠전이 열린 수원 케이티위즈파크까지 방문했다.
AP통신은 ‘빈 경기장에서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통해 개막전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은 코로나19 확산 문제를 잘 대처했고, 그 덕분에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KBO 리그 각 팀은 관중 입장이 통제된 5개 구장에서 경기를 치렀다”고 전했다.
이어 “심판과 경기 진행요원, 1·3루 코치 등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방역에 동참했다”며 “홈 팀 응원단은 응원전을 펼쳐 경기 분위기를 띄웠다”고 현장 분위기를 묘사하기도 했다. 미국 유력 지역지 보스턴헤럴드 역시 ‘스포츠에 굶주렸다면 KBO 리그를 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AP통신을 인용한 KBO 리그 개막전 소식을 알렸다.
KBO 리그 소개에 나선 외신도 많았다. 미국 유력 매체 뉴욕타임스는 ‘KBO 리그 시청, 우리가 도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 조쉬 린드블럼(밀워키)을 비롯해 KBO 리그에서 뛰었던 전·현직 선수들과 인터뷰를 실어 KBO 리그와 메이저리그의 차이점을 비교했다. 포브스와 USA투데이 등 미국 유명 언론도 KBO 리그의 개막 소식과 눈여겨볼 만한 선수 정보를 전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프로야구 리그가 멈춘 가운데 KBO 리그 개막에 외신도 주목했다. 사진=연합뉴스
#ESPN으로 KBO 리그 매일 생중계, 파워 랭킹도 선정
이뿐만 아니다. 개막일을 잡지 못한 메이저리그(MLB)와 일본 프로야구(NPB) 대신 한국 프로야구 경기가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을 통해 미국에 생중계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올해 3월 KBO 리그 해외 중계 판매권을 따낸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가 세계 각국 방송사, OTT(Over The Top) 플랫폼 등과 중계 협상을 진행한 끝에 KBO 리그 중계에 관심을 보인 미국 ESPN과 개막전부터 매일 한 경기씩 생중계 서비스를 하기로 합의했다.
개막 하루 전 KBO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ESPN 역시 보도자료를 내고 “ESPN2 채널과 ESPN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KBO 리그 생중계를 볼 수 있다”고 알리면서 “미국 내 독점 중계권사로서 KBO 리그 생중계와 2020시즌 하이라이트도 방송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ESPN은 5월 5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시즌 개막전부터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 소속 채널 스포티비(SPOTV)가 제작한 KBO 리그 한 경기를 미국 전역에 TV로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매주 KBO 리그 일정을 보고 경기의 화제성이나 중요도에 따라 중계 편성 경기를 결정할 예정. 또 올해 포스트시즌 중계까지 이미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ESPN은 KBO 리그에 대한 흥미를 높이기 위해 각 구단 전력을 분석한 뒤 자체적으로 순위를 매긴 ‘KBO 리그 파워 랭킹’을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아직 한국 야구가 낯선 미국 팬들을 위해 한국 프로야구단을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과 비교해 소개하기도 했다.
ESPN이 꼽은 ‘개막 직전 KBO 리그 최고팀’은 키움 히어로즈였다. ESPN은 “키움은 흥미롭고 공격적인 야구를 한다. 박병호, 강정호 등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팀”이라며 “(메이저리그 스몰 마켓 구단인) 탬파베이 레이스와 비슷한 팀”이라고 소개했다. 또 2019시즌 타점 1위 제리 샌즈의 대체자를 찾아야 한다“는 숙제도 지적했다.
2위는 LG 트윈스였다. ESPN은 “미국인 원투펀치 케이시 켈리와 타일러 윌슨이 투수진을 이끈다. LG는 두산과 잠실구장을 함께 쓴다”고 전하면서 “성적은 두산이 좋고, 인기는 LG가 많다. 두 팀 사이에는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와 같은 긴장감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 홈페이지에는 KBO 리그 소식을 전하는 별도 메뉴(좌측 상단 붉은 원)가 신설되기도 했다. 사진=ESPN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통합우승을 차지한 두산은 3위로 평가했다. 지난해 최우수선수(MVP) 조쉬 린드블럼이 밀워키로 떠난 점을 악재로 봤지만, 팀에 대해선 여전히 좋은 평가를 했다. “KBO 리그에서 가장 유기적으로 운영되는 팀이고, 새 얼굴을 끊임없이 배출한다”고 ‘화수분 야구’의 특징을 소개하면서 “LA 다저스나 (사인 훔치기 논란을 부르기 전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닮았다”고 썼다.
SK는 4위로 꼽혔다. 김광현(세인트루이스)과 앙헬 산체스(요미우리)가 각각 미국과 일본으로 떠난 데 대해 “게릿 콜과 저스틴 벌랜더를 동시에 잃은 수준”이라고 묘사하면서 에이스의 공백을 걱정했다. 10번째 구단 KT과 9번째 구단 NC는 각각 5위와 6위로 평가받았다. KT의 젊은 투수진과 NC 타선의 파워가 장점으로 꼽혔다.
그 뒤를 삼성과 롯데, KIA 타이거즈와 한화가 차례로 이었다. ESPN은 삼성의 경우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다린 러프의 이적이 전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지난해 최하위 팀 롯데는 댄 스트레일리와 애드리안 샘슨이 합류해 약간의 전력 상승 요인을 얻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KIA에 대해선 “2017년 통합 우승팀이 최하위로 내려가는 중”이라며 9위로 평가했고, 한화에는 “워윅 서폴드만으로 버티기엔 투수진이 약하다”는 이유로 가장 낮은 점수를 줬다.
ESPN의 중계와 함께 뜻밖의 화제가 된 장면도 있다. KBO 리그 중계를 본 미국 야구팬들은 한국 타자들의 ‘배트 플립(방망이 던지기, 일명 빠던)’에 유독 큰 관심을 보였다. 과거 일부 한국 타자들이 홈런을 예감하면서 배트를 던지고 베이스를 돌다 타구가 외야수에게 잡힌 뒤 머쓱해 하는 장면이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돼 인기를 끈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망이 던지기’를 한국 야구 문화의 일부로 해석하고 있는 미국 중계진은 장타를 친 타자가 배트를 던지지 않고 베이스를 향해 달리자 도리어 실망하는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또 때마침 ESPN으로 중계된 삼성-NC전에서 모창민이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홈런을 치면서 시원하게 방망이를 내던지자 CBS 스포츠는 ‘야구가 돌아왔다, 배트 플립도 돌아왔다’는 미국 ESPN 스포츠센터의 트위터 글과 함께 이 장면을 소개했다. 이어 “KBO 리그 타자들은 방망이를 가볍게 던지거나 아예 내동댕이치거나 빙글빙글 돌리기도 한다. 배트 플립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많은 타자가 방망이로 공을 치자마자 즉각적으로 이런 행동을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시대의 응원전 풍경과 이색 시구
무관중 경기로 치러진 개막전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단연 ‘비대면 라이브 응원전’이다. 가장 성공적으로 이벤트를 마친 구단은 KT. 수원 개막전에서 약 300명의 팬이 화상으로 참여한 라이브 응원전을 진행했다. 1루 쪽 응원석에 설치된 400인치 크기의 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선수들이 응원 열기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스크린 왼쪽에는 김주일 단장을 비롯한 응원단이 나서 노래와 율동을 했고, 오른쪽에는 따라 하는 팬들의 모습이 수시로 교체됐다. 때로는 화면이 70~80개로 분할돼 여러 팬의 모습이 한 화면에 담기기도 했다. 율동을 따라 하다 수줍어하는 어린 팬의 모습이 미소를 자아냈고, 각기 다른 장소에 있는 팬들이 ‘따로 또 같이’ 응원에 동참하며 화합했다.
다른 구장 역시 마찬가지. 화상회의 시스템과 전광판을 통해 ‘방구석 1열’에서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그라운드에 그대로 전달했고, 선수들은 경기 전 마스크를 쓰고 개막 식전 행사에 참여했다. 전국 야구장 곳곳은 국민과 의료진에게 보내는 메시지 문구로 꾸며졌고, 인천 SK행복드림구장 타석 후면 전광판에는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다’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SK는 ‘무관중’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해 외야석에 팬들의 사진과 야채 ‘무’ 캐릭터가 그려진 현수막을 걸었다. 외신에서도 주목한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시구도 이색적으로 준비됐다. KT 시구자로 선정된 이라온 군(8)은 야구공을 포수에게 던지는 대신 투명한 워킹볼 안에 들어간 뒤 직접 공을 굴려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 움직였다.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빛났고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은 ‘사회적 거리두기’ 시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천에서도 특별한 시구자가 나섰다. SK는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마스크를 산 뒤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한 노준표 어린이를 개막전 시구자로 초청해 개막전 시구라는 뜻깊은 기회를 줬다. 대구에서는 이성구 대구시 의사협회장이 시구를 맡았다. 이 회장은 대구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할 때 호소문을 통해 전국 각지의 의료지원을 끌어낸 인물이다.
한 지붕 라이벌끼리 맞붙은 잠실 개막 시리즈에서 홈팀 LG가 3루 더그아웃, 원정팀 두산이 1루 더그아웃을 사용한 것도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다. 두 팀은 정규시즌 맞대결 때 홈과 원정 구분에 따라 1루와 3루 더그아웃을 바꿔 가며 사용하지만, 이날만큼은 선수단 동선이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팀 모두 라커룸에서 가까운 더그아웃을 그대로 사용하는 데 뜻을 모았다. LG는 3루 더그아웃 뒤, 두산은 1루 더그아웃 뒤에 각각 선수단 라커룸과 훈련 시설이 자리해 있어서다.
코로나19 예방 매뉴얼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구단과 선수단이 어떠한 변화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2020년 5월 KBO 리그의 풍경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