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멘터리 3일
광주에는 조금 특별한 버스가 있다. 1980년 5월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리며 싸우던 5.18민주화운동의 주요 거점을 매일 순례자처럼 묵묵히 달리는 518번 버스이다.
사람과 이야기를 싣고 광주 전역을 달리는 518번 버스. 2006년 신설된 이후로 한 번도 노선이 바뀌지 않은 이 버스에는 어떤 사연이 실려 있을까.
다큐멘터리 3일 제작진은 마흔 번째, 오월을 맞은 광주에서 시민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새롭게 채워가는 518번 버스의 3일을 들여다본다.
도로 양쪽에 하얗게 핀 이팝나무꽃들 사이로 518번 버스가 달린다. 광주의 중심가인 상무지구에서 출발해 옛 전남도청, 전남대학교, 광주역을 지나 망월공원묘지까지 518번 버스는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잇는다.
거치는 정류장은 무려 65곳. 왕복 운행 시간은 4시간에 달하며 수익도 적은 비효율적인 노선이지만 광주시가 유일하게 개편하지 않는 시내버스다.
어쩌면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이 버스는 누군가에겐 발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하나의 창구가 된다.
518번 버스 기사 정연철 씨에게도 이 길은 특별하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누나가 방문에 못을 박아 며칠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정연철 씨는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이 길은 미안함의 길이자 고마움의 길이다. 518번 버스를 타고 주요 사적지를 지나면서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는 광주시민들.
이처럼 조금 불편한 버스를 운행하는 이유는 버스의 수익보다 40년이 흐른 지금도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자 하는 광주 시민들의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518번 버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광주 시민들의 그날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대인시장은 시민군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상인들이 직접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줬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40년 전부터 채소 장사를 한 하문순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줬던 상인이다. 상인들끼리 한 푼, 두 푼 모아 자식 같은 시민군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전했다.
여전히 대인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하문순씨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시민들은 40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같은 곳을 지키고 있다.
광주광역시 도심을 지나 국립5.18민주묘지까지 쉼 없이 달리는 518번 버스. 최운용 씨는 매일 같이 518번 버스를 타고 망월동 묘역을 찾는다.
약 3년 전, 5.18 유공자였던 아내를 먼저 하늘로 보낸 뒤, 하루도 빠짐없이 518번 버스에 올라탔다.
일흔이 넘은 그에게 사적지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518번 버스는 버거울 만도 하지만 고초를 당해 평생을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면 이 길을 편하게 올 수 없다고 말한다.
5.18민주화운동의 주요 거점을 지나는 518번 버스의 창밖 풍경은 40년의 세월만큼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날의 아픔을 대하는 광주 시민들의 삶도 달라지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는 광주 시민들. 마흔 번째 오월, 518번 버스는 광주 시민들과 함께 65곳의 정류장을 변함없이 달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3일 제작진은 518번 버스를 통해 광주 시민들의 5월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