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유산슬, 김신영=김다비 ‘이명동인’ 놀이 대중도 함께 즐겨…“또 다른 세계에서 위안”
이는 하나의 놀이 문화다. 콘텐츠 제작자와 당사자, 그리고 대중이 함께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중요한 건, 유산슬을 탄생시킨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트로트 프로젝트와 함께 끝날 줄 알았던 이 놀이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2020년 대중은 ‘부 캐릭터’(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 놀이에 흠뻑 빠졌다.
방송인 김신영은 요즘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고 있다. 본래의 모습으로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또 다른 자아는 ‘둘째 이모 김다비’다. 사진=미디어랩 시소 제공
#또 다른 자아로 살다
방송인 김신영은 요즘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고 있다. 본래의 모습으로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또 다른 자아는 ‘둘째 이모 김다비’다. 이 캐릭터는 그가 2017년 종합편성채널 JTBC 예능 ‘최고의 사랑’에 출연해 밥집 이모 성대모사를 하며 탄생했다. 당시 스스로를 “빠른 45년생 김다비. 많을 다. 비 비“라고 소개됐던 이 인물은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주라주라’를 부르는 신인 가수로 재등장했다.
김다비는 5월 11일 KBS 1TV ‘아침마당’에도 출연했다. 그는 “김신영이 아니냐”는 시청자의 질문에 “가족관계는 확실하다. (조카) 신영이가 작사를 해줘서 내 묵은 한을 노래로 풀어줬다”며 “나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태어난 사연 있는 둘째 이모”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해 웃음을 이끌어냈다. 김다비가 배우 이계인의 성대모사를 하자 다른 출연자들은 “그건 김신영 씨의 개인기 아니냐”고 지적했고, 이에 김다비는 “다 한 핏줄 아니냐”고 능청스럽게 답했다. 당연히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지난해 유산슬을 트로트 신인으로 소개했던 ‘아침마당’은 김다비까지 출연시키며 부캐릭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부캐릭터의 시작점은 래퍼 마미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2018년 방송된 케이블채널 Mnet(엠넷) ‘쇼미더머니777’에서 고무장갑을 연상케 하는 분홍 복면을 착용하고 등장했다. 그의 래핑은 래퍼 매드클라운과 흡사했고, “마미손은 매드클라운이다”라는 추측이 이어지자 매드클라운은 자신의 SNS에 “다분히 상업적이네요. 엮지 말아 주세요. 불쾌하거든요”라고 이를 부인해 대중에게 즐거움을 안겼다. 올해 상반기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종합편성채널 TV조선 ‘미스터트롯’에도 복면을 쓴 트로트 가수 삼식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출연진들은 “가수 JK김동욱”이라며 그의 정체를 밝히려 노력했으나, 결국 삼식이는 복면을 벗지 않은 채 무대를 떠났다.
박나래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안동 조씨, 조지나 캐릭터를 만들었다. 사진=MBC ‘나 혼자 산다’ 방송 화면 캡처
이 외에도 방송인 박나래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안동 조씨, 조지나 캐릭터를 만들었다. 부캐릭터 열풍에 맞물린 일회성 캐릭터로 끝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박나래는 조지나 자격으로 케이블채널 올리브TV ‘밥 블레스 유 시즌2’에 출연하는 등 부캐릭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유재석은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부캐릭터 설정에 동참해 큰 성공을 거뒀다는 것을 방송가가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며 “대중 역시 이에 호응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부캐릭터 놀이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캐릭터 놀이, 예능을 뛰어넘다
부캐릭터 놀이는 단순히 ‘특정 연예인이 또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에 다양한 성격과 설정을 부여하고, 이를 접하는 대중 역시 그 약속에 부합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펭수 열풍이 그 대표적인 예다. 펭수는 EBS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펭귄 캐릭터다. 하지만 대중은 펭수를 ‘아이돌이 되길 꿈꾸며 남극에서 온 펭귄’으로 규정한다. “사람이 펭귄의 탈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면 “펭수는 펭수일 뿐!”이라며 버럭 화를 내며 펭수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한다.
심지어 뉴스도 이런 놀이 문화에 호응한다.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한 후보자의 유세 현장에 펭수와 유사한 탈을 쓴 펭귄 캐릭터가 등장했다. 당시 JTBC ‘뉴스룸’ 비하인드 플러스에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 눈길을 끌었다. 취재기자는 앵커의 질문에 “본펭귄 입장을 들어보려고 연락했지만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며 “매니저와 통화했는데 펭수가 열 살이라 이 부분에 직접 답하기 어렵다고 한다”고 답했다. ‘본인(人)’ 대신 ‘본펭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압권이었다.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의 여주인공 여하진을 맡았던 배우 문가영은 여하진의 이름으로 SNS를 개설했다. 사진=여하진 이름의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배우들도 이에 발맞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종방된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의 여주인공 여하진을 맡았던 배우 문가영은 여하진의 이름으로 SNS를 개설했다. 그는 여하진의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이 SNS를 운영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했다. 극 중 SNS 스타인 여하진의 모습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인 설정이었다. 이 외에도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와 SBS 드라마 ‘하이에나’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아이유와 김혜수 역시 각각 극 중 캐릭터인 장만월과 정금자의 SNS를 직접 운영했다.
tvN 관계자는 “요즘 대중은 두 개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현재 발을 딛고 있는 세상과 스마트폰 속 세상”이라며 “현실에 지친 이들이 스마트폰 속에서는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에 기꺼이 동참하며 즐거움과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