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홍콩인권법 근거 특혜 철회 시 국내 수출기업 타격…‘극단적 선택’ 없다면 증시 영향 제한적
홍콩보안법 통과로 기점으로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시간주의 포드 자동차 로슨빌 부품공장을 시찰하며 얼굴 가리개를 들어보고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강행’ vs 트럼프 ‘제재’
중국은 지난 5월 28일 홍콩보안법 입법을 강행했다. 이 법은 ‘일국양제’ 형태의 자치권을 누리던 홍콩에 대한 중앙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법이란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이 같은 행보에 이미 경고를 했던 미국은 즉각적인 대응 준비에 돌입했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 근거는 홍콩인권법이다. 홍콩 인권에 위협을 가한 인물과 단체에 대해 미국 내 통행제한과 자산동결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은 그간 홍콩에 관세·투자·무역·비자발급 등에서 중국 본토와 다른 특혜를 제공했다. 홍콩인권법을 근거로 이 같은 특혜도 철회할 수 있다. 미국 의회는 더 나아가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을 규탄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자치구 등 소수민족 독립문제는 중국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다.
중국에게 홍콩이 갖는 위치는 특별하다. 홍콩은 중국으로 유입되는 주요 상품과 자본의 통로다. 홍콩은 우리가 수출을 3번째로 많이 하는 국가다. 표기는 홍콩이지만, 사실상 중국 시장의 우회로인 셈이다. 홍콩을 경유해 중국으로 수출된 원자재와 반제품은 현지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진 후 다시 홍콩을 통해 수출된다. 각종 세금 혜택은 물론 금융거래의 편의가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올 성장률 전망을 마이너스로 수정하면서 가장 크게 우려한 부문은 수출이다. 홍콩을 사이에 둔 미중 갈등은 우리 수출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
무역이 위축되면 이를 바탕으로 홍콩에 머물던 글로벌 자금의 이탈 가능성이 높아진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에는 타격이다. 그런데 중국 국영 기업을 중심으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본토 기업 주식 매수가 활발하다. 중국이 이미 시장 충격에 대비하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홍콩 증시가 급락하면 관련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가 손실 위험에 노출된다.
#극단적 조치 없다면 증시 영향 제한
중국은 홍콩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내정간섭으로 규정했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에 패해 홍콩을 영국에 할양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났다고 여긴다. 중국 입장에서 홍콩의 완전한 회복은 세계의 중심으로 복귀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최근 미국은 코로나19의 발발과 확산 책임까지 중국에 묻고 있다. 덩샤오핑 이후 중단됐던 장기집권 체제 재건을 노리는 시진핑에게는 정치 생명이 달린 사안이다
올 11월 재선 도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도 코로나19로 곤란해진 상황을 중국 때리기로 국면전환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의 실효를 높이기 위해 동맹국들의 참여를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이미 대이란 제재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경제적으로 중국과 밀접한 우리지만, 안보 분야에서는 미국과의 관계가 더 깊어 외면하기 어렵다. 자칫 사드 사태처럼 중국에게도 배척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의 맹방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4월 이후 가파른 증시 반등은 세 가지 이유로 압축된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돈을 풀었고 △일부 경제봉쇄 조치가 해제되기 시작한 데다 △코로나19 이후 주목받을 바이오, 헬스케어, 인공지능과 로봇 등 신(新) 경제에 대한 기대감도 겹쳤다. 투자자로서는 정부에서 푼 돈으로 기업들이 일단 생존하면, 경제봉쇄 완화로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신경제를 발판으로 재도약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런데 미중 경제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아시아와 유럽의 제조국가들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에 접근이 제한된다. 그만큼 글로벌 수요가 위축돼 경제 봉쇄 완화에 따른 회복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이는 추가 경기 부양책의 필요성을 높여 정부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된 상태로 장기화되면 투자심리가 위축돼 증시 상승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 행보를 보면 갈등을 고조시켰지만, 최종적으로 파국을 선택한 적은 없다. 중국과 경제전쟁이 격화되면 미국도 피해를 입게 된다. 11월 재선 성공을 위해서는 경제 회복이 중요하다. 속도조절로 최악은 피할 수 있다. 실제 홍콩보안법 통과 이후 글로벌 증시 반응은 비교적 차분하다. 중국의 법 통과 강행과 이에 따른 미국의 제재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재료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와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치명적 수준이 아닐 경우 증시에 미치는 충격은 일단 제한적일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