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핵심 및 청와대 고위급 참모 윤미향 엄호 의혹…의원들 ‘VIP 의중일 수도’ 눈치보기
5월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초선의원 의정연찬회에 윤미향 당선자의 자리가 비어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5월 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윤미향 당선자가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은 70.4%에 달했다. ‘사퇴할 필요 없다’는 20.4%였다. 민주당 지지층만 따로 놓고 봐도 사퇴 응답이 51.2%, ‘사퇴할 필요 없다’는 답이 34.7%로 나타났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때 진영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던 것과는 달리, 이번 윤미향 당선자 건의 경우 대부분 국민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결과로 풀이됐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윤 당선자 사퇴 문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거나 부정적인 스탠스를 고수하고 있다. 당 지도부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윤 당선자를 엄호하고 나섰다. 이해찬 대표는 5월 27일 “신상 털기 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같은 날 원내대표 출신 우상호 의원도 기자들에게 “(이용수) 할머니가 화났다고 (윤미향 당선자를) 사퇴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설훈 최고위원은 윤 당선자 사퇴 응답이 높게 나온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5월 28일 “국민들께서 정확한 ‘팩트’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판단”이라고 했다.
이를 지켜보는 민주당 의원들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윤 당선자 의혹 중 일부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러한 공개 발언들이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팽배하다. 겉으로 보이고 있는 기류와는 온도차가 확연한 셈이다. 총선에서 낙선한 친문계 의원은 “아무리 같은 당 동료라고 해도 이쯤 되면 비판이 나올 법도 한데 이상한 일이다. 주류 비주류 할 것 없이 모두 입을 닫아버렸다. 초선들이 더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초선들은 “하고 싶지만 참는 것”이라면서 “윤 당선자가 사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윤 당선자가 스스로 물러나 당에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도 했다. 한 초선은 “본인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면서 “윤 당선자가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그 공은 이제 국회로 돌아오는데, 민주당으로선 더욱 힘든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국회의원은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을 당하지 않는다. 국회 동의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177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가 윤 당선자 ‘사수’ 스탠스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체포 동의안 통과 가능성은 낮다. 윤 당선자가 ‘버티는’ 것도 이 때문이란 말도 들린다. 하지만 이 경우 ‘방탄 국회’라는 거센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윤 당선자의 자진사퇴를 바라는 이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3월 26일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시절 이해찬 대표를 방문한 윤미향 당선자.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 일각에선 당 지도부가 부실 검증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해 윤 당선자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앞서 양정숙 당선자 등 몇몇 후보의 검증 논란이 불거졌던 게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앞서의 초선은 “설마 그런 문제 때문에 177명에 달하는 의원들이 입장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자칫 내부 싸움으로 해석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다”고 털어놨다.
우선 ‘조국 학습효과’가 거론된다. 여권 주류인 친문 진영과 다른 견해를 꺼냈다가 정치적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임명 전후로 여권의 몇몇 인사들이 쓴소리를 했다가 친문계의 정치인과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포화를 받은 바 있다.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금태섭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권에선 ‘찍히면 죽는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고, 조국 전 장관을 향한 비판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더군다나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친문계가 수적으로도 우위를 차지, 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는 불만이 흘러나온다. 현재 177명 의원 중 비문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더이상 친문, 비문 구분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친문은 압도적 다수다. 전체 의원 절반에 육박하는 초선(83명) 대부분 친문계다. 앞서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정성호 의원이 불과 9표에 그친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당시 친문계인 김태년 원내대표는 82표를, 전해철 의원은 72표를 얻었다.
하지만 윤미향 사태는 이것만으론 설명이 힘들어 보인다. 친문계에서조차 윤 당선자에 대한 비토 기류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친문계 한 재선 의원은 “이해찬 대표가 함구령을 내린다고 해서 그게 통하겠느냐. 언제부터 친문 쪽이 이 대표 말을 들었다고…”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윤미향 구하기’가 있었다. 친문 중에서도 핵심으로 통하는 일부 의원들이 주도했다. 이들과 함께 청와대의 한 고위급 참모도 민주당 여러 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들었고, 나도 그에게 직접 전화를 받았다. 그 참모와 윤미향 당선자 간에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일단 사실이 가려진 뒤에 판단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논리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연스레 ‘VIP 의중’으로 연결됐다. 친문 핵심들과 청와대 고위 참모까지 나섰으니 친문 의원들로선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거론된 친문 핵심 중 한 의원에게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물었다. 그는 “부풀려진 말이다. 워낙에 중요하고 파급력이 큰 사안이다 보니 입장 표명을 신중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도였다”면서 “청와대는 이번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 만약, 그 참모가 그렇게 했다면 개인적 차원이었을 것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반면, 앞서의 재선 의원은 “당이 친문 일색으로 재편되면서 일방적 운영에 대한 견제심리가 생기고 있다”면서 “윤미향 건처럼 제대로 민심을 읽지 못하고 막후에서 의원들을 컨트롤하려 한다면 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