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당권파 vs 정세균+친문 직계 시나리오…86그룹과 중립파가 ‘캐스팅보트’
이른바 ‘정세균 대안론’이 여권 내부 권력구도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진원지는 친문(친문재인) 직계다. 여권의 성골 그룹 일부가 정세균 국무총리를 차기 후보로 밀 수도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다. 차기 대선 국면에서 당권파 친문계와 손잡은 이낙연 당선자와 친문 직계에 올라탄 정 총리가 맞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 당선자가 차기 당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양측의 긴장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4월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7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희의에서 코로나19 사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과 관련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친문 직계와 정 총리의 전략적 연대설은 4·15 총선 이후인 5월 초 여의도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이들의 구체적인 연대 그림은 베일에 싸여있지만 정세균계가 범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친문 직계와 이낙연 당선자가 손을 맞잡는 시나리오보다는 더 현실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와 맞물려 최근 들어 여권 인사들은 “정 총리가 포스트 문재인을 염두에 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 총리가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에서 내려온 직후에도 ‘국회의장 후 정치 은퇴’ 관행을 깨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었다. 이른바 정세균식 모델 구축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정 총리의 최종 목표가 대권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라는 비판에도 국회의장보다 국가의전 서열이 낮은 국무총리직을 끝내 수락했다. 민주당 8·29 전당대회와 맞물려 친문계 분화의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다. 이낙연 대세론과 정세균 대안론을 둘러싸고 친문 분화가 한층 격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친문 직계가 정 총리를 밀고 당권파 친문계가 이 당선자를 지원하는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경우 캐스팅보트는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과 비문(비문재인)계, 중립파 등이 쥘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당선자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 당선자는 애초 예상보다 앞선 5월 27일 당권 도전을 공식화하며 정 총리의 견제구를 뒤로하고 다시 한발 앞서나갔다. 전·현직 국무총리 간 맞대결의 묘미는 ‘여권 권력지형 새판 짜기’와 맞닿아있다. 분기점은 이낙연 대세론과 정세균 대안론이 시소게임으로 흐를지에 달렸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선거 당락을 가르는 3대(구도·인물·바람) 변수에서 상당 부분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구도와 인물에선 정 총리와 이 당선자가 꼭 빼닮았다. 마지막 선거 변수인 바람에서만 이낙연 대세론이 정세균 대안론을 앞선다. 다만 이낙연 대세론의 지속 여부에 따라 전·현직 국무총리의 시소게임이 본격화할 수도 있다.
전·현직 국무총리를 아우르는 구도는 ‘호남’이다. 선거 때마다 필패론에 시달리는 호남 대통령 프레임은 이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정 총리는 전북 진안군 출신으로, 정동영 민생당 의원과 함께 한때 ‘전북의 맹주’로 통했다. 정 총리는 총 6차례의 선거 중 4차례나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에서 당선됐다. 이 당선자는 전남 영광군 출신이다. 그도 5차례의 국회의원 중 담양·함평·영광·장성에서만 4차례 승리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전남도지사에 올랐다.
인물 구도 역시 엇비슷하다. 정 총리나 이 당선자 모두 합리적 리더십을 갖췄다. 동시에 강력한 리더십과 콘텐츠도 가졌다. 코로나 총리라는 별칭은 얻은 정 총리는 긴급재난지원금 100%를 둘러싼 당·정·청 갈등이 정점을 찍자, 반대론을 폈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직접 설득했다. 노·사·정 대화의 물밑 작업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정 총리 리더십이 긴급재난지원금 갈등을 봉합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15 총선을 하루 앞두고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회 심의 전이라도 미리 신청을 받아 놓으라”고 지시했다. 야권은 “관권 선거”라고 반발했지만, 여당은 ‘180석 확보’라는 역대급 성적을 거뒀다.
이낙연 당선자(왼쪽)와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박은숙 기자
17년간 쌍용그룹(상무이사로 퇴직)에서 재직했던 정 총리는 노무현 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 통합민주당 대표, 국회의장 등을 역임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정 총리를 놓고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본 ‘복장’”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당선자도 복장에 가깝다. 정 총리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진보진영의 주류였다. 반면, 이 당선자는 정계 입문 때부터 당권파와는 거리가 멀었다. 2012년 대선 때 손학규 캠프에 합류했던 그는 한참 동안 비노(비노무현)계로 분류됐다. 정계 입문 이후 비주류 길을 걸었던 이 당선자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올라서면서 단숨에 포스트 문재인 1순위를 꿰찼다.
선거 3대 변수 중 이들을 가른 것은 ‘바람’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5월 둘째 주(12∼14일 조사·15일 공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28%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코로나 정국에서 기본재난소득 이슈 등을 이끌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11%)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3%),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2%), 윤석열 검찰총장·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박원순 서울시장·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이상 1%) 등이 뒤를 이었다. 정 총리는 8위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코로나 총리 별칭에도 불구하고 약한 대중성이 정 총리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역설적으로 정 총리의 낮은 지지도는 친문 직계와의 전략적 연대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중성 약한 정 총리가 세력 기반 없이는 대선 본선은커녕 예선의 벽도 통과 못 할 가능성이 커서다. 친문계가 태동하기 전까지 정세균계는 친노계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계파를 거느린 조직이었다. 친노계와도 가장 가까운 계파로 통했다. 2012년 대선 당내 경선 당시 정세균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은 김진표 의원과 함께 친노계인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이 맡았다.
하지만 정세균계도 두 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전 고용노동부 장관인 김영주 의원을 비롯해 안규백 이원욱 신정훈 김교흥 의원 등만 살아남았다. 설훈 이개호 오영훈 의원이 포진한 NY(이낙연)계보다는 우위를 점하지만, 정세균계 파워는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범친문계 중 가장 큰 세력인 친문 직계가 ‘정세균 옹립’에 나선다면, 기존 판에 균열을 만들 수도 있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정세균계 좌장인 정 총리는 2007년 열린우리당과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 때 탈당을 거부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지지했었다”면서 “‘분열은 안 된다’는 정 총리의 포지션은 당 주류 입장에선 천군만마였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 총리는 우상호 의원 등 86그룹과도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 의원은 정 총리가 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2009년 8월 당 대변인으로 선임, 한동안 같이 호흡을 맞췄다. 김성주 당선자 등도 86그룹과 공통분모를 가진다. 당 내부에서 “범정세균계로 확장하면 족히 30명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 총리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당장 이낙연 대세론부터 난관이다. ‘이낙연 vs 정세균’ 간의 물밑 기 싸움은 4·15 총선 때부터 감지됐다. 특히 이 당선자가 대선의 급행열차인 서울 종로를 정 총리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을 시점부터, 양측은 전략적 경쟁 관계 모드로 돌입했다. 정 총리 한 관계자는 당시 “이 당선자가 총선의 최대 수혜자가 되는 것은 당으로선 좋지만, 우리에게는 글쎄…”라고 말했다. 정 총리 측 내부에 흐르는 ‘이낙연 견제론’ 심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 8·29 전당대회에 나서는 이 당선자가 차기 당권까지 거머쥘 경우 양측의 긴장 관계는 최고조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호가 출범하면, 정 총리 아킬레스건인 ‘낮은 지지도’가 장기간 고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낙연 대세론과 정세균 대안론의 1차 분수령은 민주당 차기 당권을 둘러싼 친문계의 분화 여부다. ‘이낙연 대세론이냐, 정세균 대안론이냐’도 친문 직계와 당권파 친문계 표심에 달린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