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참석 등 함께 위안부 피해 알리기 앞장…5월 7일 이용수 회견 ‘성금 유용 의혹’ 방아쇠 당겨
2018년 12월 19일 오후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6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포옹하는 윤미향 당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과 이용수 할머니. 사진=연합뉴스
일본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과 관련해 5월 25일 다시 입을 열었다. 5월 7일 1차 기자회견 이후 18일 만에 열린 것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두 차례에 걸쳐 장소가 변경되는 끝에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연 전신) 간사였던 윤미향 당선자와 처음 만났을 당시를 회상했다.
5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1992년 6월 25일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에게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정신대대책협의회에 피해자 신고를 한 그날, 이 할머니와 윤 당선자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1992년 6월 25일 피해자 신고를 마친 이 할머니는 나흘 뒤인 6월 29일 정대협 모임에 참석했다. 이 할머니는 “어느 교회에 갔었는데,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하고 돈을 줬다면서 100만 원씩 나눠줬다”면서 “그게 무슨 돈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것을 봐왔다”면서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배가 고픈데 맛있는 것을 사달라 하니 ‘돈이 없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 할머니는 1992년 윤 당선자와 인연을 맺은 뒤부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3년부터 이어진 이 할머니 증언은 일본 종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2007년 2월 15일 이 할머니는 미 하원 외교위에서 열린 ‘종군 위안부 결의안’ 관련 회의에 참석해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2012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공천 과정에서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들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당시 자신의 총선 출마를 윤 당선자가 만류했다고 주장했다. 이 할머니는 5월 2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윤 당선자)가 ‘안 된다. 할머니가 (총선에) 나가면 안 된다’ 그런 얘기를 했다”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윤 당선자는 5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이 할머니 총선 출마를 만류했다는 내용을) 녹취가 있어 보도가 됐다는 것을 기사로 접했다”면서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께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전화를 했고, 전화 목소리를 통해서 (제가) 만류했다고 기사가 나왔는데 (이 할머니가) 국회의원 하고자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중요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말씀드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 총선 출마가 무산된 뒤에도 둘의 인연은 계속됐다. 2018년 1월 4일 청와대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엔 이 할머니와 당시 정대협 공동대표이던 윤 당선자가 함께했다. 이날 이 할머니는 참석자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고 윤 당선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5월 25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마친 이용수 할머니.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2020년 5월 이 할머니와 윤 당선자 관계는 변곡점을 맞았다. 5월 7일 대구시 남구 대봉동 모처의 한 찻집에서 이 할머니는 1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와 정의연을 둘러싼 메가톤급 스캔들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 할머니는 이날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면서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다”고 폭로했다.
이 할머니는 “1992년 6월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꼭 수요일마다 데모(집회)를 갔다”면서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을 모아서 우리에게 줬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이어 “그런데 그걸 다 어디다 썼느냐. 식사하는 데 썼느냐”고 자문한 뒤 “아니다. 얼마 동안은 그렇게 썼지만, 주관단체에서 썼다. 이걸(성금을) 할머니들한테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1차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는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 씨가 해결해야 한다”면서 “윤 씨는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느냐”며 윤 당선자를 비판했다.
윤 당선자는 이 할머니 1차 기자회견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반박했다. 윤 당선자는 이 할머니가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고 한 것에 대해 “사실 이제 (위안부) 피해자가 수요집회에 나올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면서 “할머니 말씀은 ‘이제 나는 못 하겠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해결해달라’는 요구로 해석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윤 당선자는 이 할머니가 제기한 성금 유용 논란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윤 당선자는 “평소에 성금을 전달받으면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올리고 피해자 지원뿐 아니라 쉼터 제공, 박물관, 책자 발간 등에 다 쓰였다”면서 “일부 사람이 악의를 갖고 할머니의 약점, 서운함을 부추겨 해프닝을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5월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 사진=최준필 기자
그러나 윤 당선자를 둘러싼 의혹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기부금 횡령과 회계 부정 논란이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안성 위안부 쉼터와 윤 당선자 가족 명의 부동산 매매 의혹이 새롭게 드러났다. 윤 당선자는 5월 18일 이후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5월 19일 이 할머니와 윤 당선자는 서로를 마주했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이 할머니가 이날 대구 중구의 한 호텔에서 윤 당선자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당선자가 이 할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고,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를 안아주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이 할머니가 윤 당선자를 용서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2차 기자회견을 통해 “윤 당선자를 용서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가 한번 안아달라고 했다”면서 “원수진 것도 아니고 함께 30년을 지냈다. 내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고 안아주니 눈물이 왈칵 나서 울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고 하면 너무 황당하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여전히 윤 당선자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5월 25일 2차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를 둘러싼 ‘기부금 횡령’, ‘회계 부정’ 의혹과 관련해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는 상황에서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할머니는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만 조금 보이는데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이용해 먹었다. (윤 당선자가) 뻔뻔시리 묘지에 가서 가짜 눈물을 흘리더라. 정대협에서 위안부를 이용한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서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복동 할머니 역시 정대협에 이용당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2차 기자회견에 윤 당선자에게 “오라”고 했지만, 윤 당선자는 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윤 당선자는 5월 18일 이후 11일 만에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쳤다. 윤 당선자는 5월 29일 오후 2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후 2시부터 2시 24분까지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윤 당선자는 이용수 할머니를 3차례 언급했다. 다만, 이 할머니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 대부분 시간은 언론을 통해 불거진 개인적인 의혹을 해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기자회견 이후 취재진과 일문일답 과정에서 윤 당선자는 다시 이 할머니를 언급했다. 윤 당선자는 “이용수 할머니에겐 내가 배신자가 됐다”면서 “1992년부터 이 할머니와 제가 30년 같이 활동했다. 그럼에도 소통하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지금이라도 사죄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윤 당선자는 “할머니에게 사죄를 드리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그건 이미 할머니에게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이 할머니에게 진심을 전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일보에 따르면 윤미향 당선자의 기자회견을 본 이용수 할머니는 “변명”이라고 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