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10일 최종건 SK 창업자 평전 출판기념회에서 함께한 최태원 (주)SK 회장(왼쪽)과 최신원 SKC 회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최근 최태원 (주)SK회장이 그룹 계열사인 SKC 주식을 전량 처분한 이유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번 주식 매각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동안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뭉쳐있던 SK그룹이 이번 기회에 사촌형제들간에 분리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SK그룹은 창사 이래 50년 만에 일대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의 지분 처분이 사촌간의 그룹 분리 신호탄인지 아니면 대주주인 해외펀드 소버린에 대항하기 위한 급전 마련용인지 그 속사정을 알아본다.
최 회장은 지난 18일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SK그룹 계열사인 SKC 주식 1백68만5천9백49주를 장내에서 전량 매각했다. 이로써 최 회장의 SKC 지분은 종전의 5.22%에서 0%로 떨어졌다.
SKC의 개인 최대주주였으나 하루아침에 주식을 모두 팔아치운 것이다. 그러나 최 회장이 SKC의 주식을 모두 팔게 된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최 회장이 이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SK그룹의 채권단은 그룹의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해 최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모두 담보로 설정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C 주식 역시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 있었다. 최 회장은 주식이 담보로 잡힌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의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SKC 주식을 시장에서 전부 매각했다.
이렇게 되자 업계에서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경영복귀선언도 하지 않은 최 회장이 어떤 이유에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주식을 처분했는지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SK그룹의 관계자는 “최 회장은 자금이 필요해 주식을 판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디에 쓸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을 아꼈다.
업계에서는 여기서 말하는 ‘돈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주)SK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소버린을 의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분석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SK그룹은 내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2대 주주인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의 사임 등을 요구하고 나서지나 않을는지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SK그룹의 계열분리 수순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SK그룹은 여태까지 최 회장의 손윗 사촌형인 최신원 SKC 회장, 친동생인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 사촌동생인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등간에 경영권 분쟁이 없이 최태원 (주)SK 회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왔다.
다른 재벌들의 형제간 다툼이 불거질 때에도 SK그룹만큼은 언제나 한 발 떨어져 있었다. 선대회장인 고 최종현 회장이 작고한 직후 사촌형제들이 그룹의 경영권을 최태원 회장에게 몰아준 덕이다.
형제들간에 별 탈 없이 그룹 경영을 꾸려왔던 SK그룹에 변화가 생기려는 것일까. 이렇게 보는 이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올 한 해 동안 SKC에서 일어난 지분 변동이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난 1월1일을 기준으로 SKC는 SK(주)가 전체의 47.66%를 보유한 데 이어, 개인 최대주주로는 최태원 회장이 12.14%,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이 3.4%를 보유하고 있었다. 또 SKC의 자사주가 3.44%, 한국고등교육재단이 0.67%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올 한 해 동안 비단 최태원 회장뿐 아니라, 또다른 개인 최대주주였던 최재원 부사장도 이 회사의 주식을 대대적으로 처분, 현재 지분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다.
처음 SKC 주식을 판 것은 최태원 회장이었다. 최 회장은 지난 1월13일 장내에서 총 1백50만 주를 매각했다.
이로써 그는 SKC의 지분이 종전 12.14%(3백92만3백59주)에서 7.5%(2백42만3백59주)로 뚝 떨어졌다. SK그룹이 분식회계와 관련해 시끄러웠을 당시 잠잠했던 최 회장은 한 고비를 넘기자마자 또다시 SKC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지난 8월27일 장내에서 42만7천1백10주를 팔아, 지분이 기존 7.5%에서 6.17%(1백99만3천2백49주)로 낮아졌다.
이틀 뒤에도 그의 주식매각은 계속됐다. 지난 8월29일 그는 장내에서 30만7천3백 주를 팔았고, 그의 지분은 6.17%에서 5.22%(1백68만5천9백49주)로 낮아졌다.
불과 7개월 남짓한 사이에 보유지분이 12%대에서 5%대로 반 토막이 난 것. 이어 지난 9월에는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도 SKC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최 부사장은 지난 9월29일 장내에서 총 1백만 주를 팔아, 지분율이 종전의 3.4%(1백9만8천9백55주)에서 0.31%(9만8천9백55주)로 뚝 떨어졌다.
최태원-재원 두 형제가 사촌형인 최신원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SKC에 대한 주식을 잇따라 처분하며 지분율을 떨어뜨린 것이다.
결국 최 회장은 지난 18일 그가 마지막으로 보유하고 있던 SKC지분을 전부 처분함으로써 지분율이 0%가 된 것이다. 지분율이 순차적으로 떨어지다보니 업계에서는 이번 SK그룹 사태로 말미암아 최태원-신원 형제의 재산분리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또 이달 초에는 SKC가 해외에서 대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면서 이 같은 추측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3일 SKC는 해외에서 총 4백81억3천6백만원어치의 전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SKC는 해외전환사채 발행 이유에 대해 ‘운영자금용’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SKC의 상황을 보면 딱히 4백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SKC가 금감원에 공시한 자료를 보면 최근 3년 사이 SKC의 유동자금의 규모가 줄곧 늘어난 데다가, 그룹 내 현금보유의 잣대라 할 수 있는 이익잉여금의 규모도 지난해의 적자규모보다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재벌들이 해외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이용해 그룹 내 지분을 늘려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발행한 전환사채를 인수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방법이 전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룹 오너들이 다른 대리인을 앞세워 전환사채를 사들인 뒤 주식으로 전환해 그룹 내 지분율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SK그룹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신원 SKC 회장의 경우 회사 지분이 전혀 없어 최태원-재원 형제들이 SKC의 주식을 판다고 해도 최 회장이 계열분리로 회사를 떼어 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