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섭외 1순위, 해외서 드라마 ‘기생충’ 준비중…코로나19 여파 되레 여운 길어져
‘기생충’은 국내 개봉 전인 5월 중순 칸국제영화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 ‘작품상 받은 작품은 재미가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기생충’은 국내에서 1000만 고지를 밟은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편견이 심하기로 유명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등 4관왕을 휩쓸었다. 그 사이 전 세계 누적 매출은 2억 4590만 달러(한화 2953억 원·3월 기준)를 기록했다.
전인미답의 고지를 내내 밟아 온 ‘기생충’. 과연 이 영화 이후 1년 사이 한국 영화계, 그리고 출연 배우들의 위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기생충’이 개봉된 지 1년이 지났다. 2019년 5월 30일 공개된 이 영화는 1031만 관객을 동원했다. ‘기생충’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 사진=박정훈 기자
#여전히 회자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에 깃발을 꽂을 무렵 시작된 코로나19의 여파는 이후 전 세계를 강타했다. 엄청난 확산세와 함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주요 영화 제작이 중단됐고, 이미 제작을 마친 영화들의 개봉도 미뤄졌다. 관객들이 근거리에서 접촉하게 되는 영화관도 줄줄이 문을 걸어 잠갔다.
올해 4월 국내 영화 관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37만 명 감소했다. 무려 92.7%가 줄었다. 2019년 4월 극장을 찾은 관객이 1000명이었다면 올해 4월은 고작 73명이었다는 의미다.
한국 영화를 향한 전세계 영화 시장의 관심을 이어가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기생충’의 여운은 더 길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최가 무산되며 영화팬들의 갈증은 커졌다. 이에 영국 매거진 NME는 ‘칸국제영화제 역대 베스트’를 자체 선정하며 ‘기생충’을 ‘최고의 영화 톱10’으로 꼽았다. 봉준호 감독이 존경심을 표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76),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기생충’은 3일 열리는 5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무려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극한직업’, ‘벌새’, ‘증인’, ‘천문:하늘에 묻는다’ 등과 작품상을 놓고 다투는 것 외에도 최다 후보작으로서 다관왕 수상이 유력하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연기돼 개최되는 이 영화제가 개봉 1주년을 맞은 ‘기생충’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자리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기생충’의 성공은 봉준호 감독의 다른 작품과 한국 영화 자체에 대한 해외 팬들의 니즈를 키웠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지금 당장 스트리밍해야 하는 칸의 28편’을 선정했다. 언택트 시대로 접어들며 극장에 가지 않고 안방에서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상영’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봐야 하는 영화팬들을 위한 추천 목록이다. 이 안에는 봉 감독의 또 다른 영화 ‘괴물’(2006)을 비롯해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나홍진 감독의 ‘황해’(2011) 등이 포함됐다.
5월 중순에는 봉 감독의 ‘설국열차’를 리메이크한 미국 케이블채널 TNT의 드라마판 ‘설국열차’가 공개됐다. 신작 영화가 없는 상황 속에서 이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우세하다. 2시간여 러닝타임의 봉 감독판 ‘설국열차’가 빠른 전개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지지를 받은 반면, 드라마판 ‘설국열차’는 “너무 느리게 달린다”는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드라마판 ‘설국열차’는 결과적으로 봉 감독을 향한 갈증을 더욱 키운 모양새가 됐다”며 “‘기생충’ 역시 이미 해외 시장에서 드라마로 준비 중이기 때문에 ‘기생충’ 신드롬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생충’의 성공을 일군 주역들을 향한 전세계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고 있다. 2월 9일 LA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당시 모습. 사진=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제공
#‘기생충’ 주역들, 지금 뭐하나
‘기생충’의 성공을 일군 주역들을 향한 전세계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고 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는 칸과 베니스국제영화제를 비롯해 20개 영화제 주관단체와 유튜브가 함께 개최하는 ‘위아원’(We are one) 온라인 영화제에 참여했다. 이 온라인 영화제는 5월 29일 시작해 열흘 동안 진행되고, 총 35개국의 장편 영화 31편, 단편 영화 72편이 상영된다. 두 사람은 또 다른 초청자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2019년 봉 감독과 ‘기생충’을 들고 전세계를 돌며 오스카 캠페인을 펼치느라 차기작을 고를 여유가 없었던 송강호는 ‘우아한 세계’와 ‘관상’을 함께했던 한재림 감독의 신작 ‘비상선언’을 다음 행보로 선택했다.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이 그와 함께 출연한다.
최근 영화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했던 최우식은 할리우드 진출 청신호가 켜졌다. 영화 ‘문라이트’의 제작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터라 그가 할리우드로 활동 무대를 넓힐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기생충’에서 부부로 열연을 펼친 이선균과 조여정은 이미 TV 드라마로 복귀전을 치렀다. 각각 JTBC ‘검사내전’과 KBS 2TV ‘99억의 여자’를 마쳤다. 이선균의 경우 이미 영화 ‘킹메이커:선거판의 여우’에 캐스팅돼 숨 돌릴 틈 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은은 현재 KBS 2TV 주말극 ‘한번 다녀왔습니다’에 출연 중이고, 박소담은 tvN 새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박보검과 호흡을 맞춘다.
KBS 드라마국 관계자는 “‘기생충’의 후광에다가 탄탄한 연기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생충’의 주역들은 당분간 각 방송사와 제작사들의 섭외 1순위”라며 “평생 그들을 수식할 만한 훈장을 단 셈”이라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