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행정소송 예고 ‘선 납부 후 소송’ 전략, 승소 시 환급가산금도 받을 수 있어
롯데마트가 공정위에 과징금 408억 원을 완납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롯데에 대한 조사와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피해자인 중소기업이 구제를 받지 못하고 도산하고 있어 공정위 제도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지난 4월 8일 롯데마트는 408억 원의 과징금을 공정위에 납부 완료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위원장 등 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회의를 열고 롯데마트에 5가지 불공정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11억 8500만 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대규모유통업법(유통업법)으로 인한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 1월 말에서야 의결서 작성이 완료됐다. 롯데마트는 대략 2달 만에 과징금을 납부한 셈이다.
공정위는 △서면 약정 없는 판매촉진(판촉)행사 비용 전가 △합의한 납품단가 대비 저가 발주 △납품업체 종업원 부당 사용 △자사상품(PB상품) 개발 컨설팅 비용 전가 △세절(고기를 써는 행위) 비용 전가 등 5가지의 불공정행위를 근거로 롯데마트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2012년 7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삼겹살 데이’ 가격할인 행사 등 92건의 판촉 행사를 진행하면서 할인에 따른 비용을 사전 서면약정 없이 돼지고기 납품업체가 부담하도록 했다. 2012년 9월부터 2015년 4월 중에는 인천 계양·전주 남원·경기 판교점 등 12개 신규 매장 오픈 기념행사에서 사전에 서면으로 약정하지 않고 모든 할인 비용을 돼지고기 납품업체에 부담시켰다.
2012년 6월부터 2015년 11월에는 예상 이익·비용 등 구체적 내용이 빠진 파견요청 공문 하나만으로 돼지고기 납품업체 종업원 2782명을 파견받았다. 파견 종업원의 인건비까지 모두 납품업체가 부담했다. 이 밖에도 롯데마트는 2013년 4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돼지고기 납품업체에 정당한 이유 없이 PB상품 개발 자문 수수료를 자사를 컨설팅해 준 업체에 지급하게 했다.
당시 롯데쇼핑은 공정위 심의 결과에 강하게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롯데쇼핑은 당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대해 “유통업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심의 결과로,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해를 입고 있다”며 “명확한 법적 판단을 받기 위해 행정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은 번복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강경한 입장을 보이던 롯데마트가 과징금 부과 불복 시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이민 법무법인 창과방패 변호사는 “롯데마트처럼 큰 규모의 과징금은 집행금지,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효력을 정지해놓고 소송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롯데마트가 입장을 바꾼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먼저 과징금은 가처분신청이 인용되는 사례가 적은 만큼 완납한 뒤 갑질 관련 재판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롯데쇼핑 관계자도 “공정위에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면 받아들여진 적이 없어서 깔끔하게 과징금을 완납한 후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사진=임준선 기자
공정위에 과징금을 납부한 기업의 고위관계자는 “공정위의 판단을 존중하는 의미로 벌금을 바로 완납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해야 큰 잡음이 생기지 않는다”며 “공정위뿐만 아니라 검찰이 벌금을 부과해도 기탁금을 내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에서 승소한다면 환급가산금을 받을 수 있다. 공정위가 특정 기업의 행위를 조사해서 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리면 과징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기업이 이를 부당하다고 판단해 행정소송을 통해 공정위 결정을 뒤집게 된다면 공정위에 납부한 과징금은 이자를 더해 돌려받는다. 이를 환급가산금이라 한다.
실제로 환급가산금을 받은 기업의 사례가 적지 않다. 2019년 국회 정무위원회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실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공정위가 기업에 내준 환급가산금 이자만 총 977억 53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2015년 373억 4500만 원 △2016년 325억 4500만 원이다. 2016년 3월 법 개정으로 이자 산정 방식이 바뀌면서 이율이 떨어진 후에도 환급가산금 규모가 상당하다. △2017년 81억 3500만 원 △27억 3600만 원 △2019년 9월까지 169억 9200만 원이다. 2017년 국세환급가산금 이율은 연 1.6%, 2018년은 1.8%, 2019년은 2.1%이다.
퀼컴은 지난해 3월 총 153억 3400만 원의 이자를 받으면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환급가산금을 받은 기업이 됐다. 2위는 주유소 담합 사건 등으로 과징금을 납부하고 대법원에서 일부 승소해 144억 9600만 원의 이자를 받은 현대오일뱅크다. 이 밖에 △농심 139억 4700만 원 △SK이노베이션 116억 6000만 원 에쓰오일 60억 1900만 원 △SK 55억 6100만 원 △SK텔레콤 31억 7100만 원 △대우조선해양 25억 8600만 원 순으로 환급가산금이 많았다.
이민 변호사는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등이 무의미한 상황이라면 이를 포기하고 바로 완납한 후 재판에 집중해서 승소하고 환급가산금까지 받는 방법이 좋긴 하다”고 설명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지연된 정의’에 중소기업들 눈덩이 피해 롯데마트 불공정행위는 2015년 12월 공정위 조사가 착수한 후 4년이 지나서야 끝을 맺었다. 당초 공정위는 2017년 9월 전원회의를 열고 제재 수위를 확정하려 했지만, PB상품 컨설팅 비용 전가 등에 대해서 위원들 간 의견이 달라 재조사를 결정하면서 2년이 더 흘렀다. 공정위의 조사가 길어지면서 관련 중소기업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롯데마트의 갑질 때문에 109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힌 중소기업 신화가 대표적이다. 과징금 납부와 별개로 피해 기업이 보상을 받을 길은 없다. 피해자는 스스로 롯데마트에 민사소송을 걸어 구제를 받아야 한다. 윤형철 신화 대표는 “롯데와 원만한 합의를 보고 싶으나 대형 로펌을 선임해 민사소송을 진행할까 두렵다”며 “롯데가 합의가 아닌 민사소송을 선택한다면 그 시간과 손해를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우리는 공정위에서 제재 대상으로 판단했지만, 제재 대상으로 포함되지 않은 채 롯데와 싸우는 중소기업은 더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황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롯데마트 사례는 공정위 제도의 문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피해자가 직접 손해 보상을 받기 위해 소송을 걸어야 한다”며 “공정위에서 조정을 통해 우선적으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지만, 권고사항이고 임의절차라 강제성이 없어 한계가 있다. 피해 기업이 처음부터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제도 개선이 빨리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 제도의 문제로 논의만 된 지 수십 년”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러한 제도 문제의 배경으로 공정위의 전속고발이 꼽힌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피해 문제나 제재 행정 등 모든 권한이 공정위에 집중됐기 때문에 피해 구제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처분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급 명령 등의 지자체 행정명령을 통해서 피해 구제를 조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롯데쇼핑 관계자는 “피해자 구제는 공정위와 행정소송 결과가 나와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허일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