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쇠젓가락·글루건 등 학대 증거물 압수…가해 부모, 세 아이 데려가자 자해·투신 시도 수사 지연
여기까지만 보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절절한 부모다. 그런데 이들에겐 아이가 한 명 더 있다. 계부와 친모에게 모진 학대를 받다가 4층 베란다를 통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뒤 이웃 주민에게 구조된 ‘창녕 아동학대’ 사건 피해 아동이 바로 그 또 한 명의 아이다.
5월 29일 경상남도 창녕의 한 거리에서 신발도 신지 않은 9세 여자 아이가 발견됐다. 이 아이를 발견한 시민은 우선 어른용 슬리퍼를 신게 해주고 “배가 고프다”는 아이를 인근 편의점으로 데려갔다. 사진=KBS 뉴스 캡처
5월 29일 경상남도 창녕의 한 거리에서 신발도 신지 않은 9세 여자 아이가 한 시민에 의해 발견됐다. 아이의 눈에는 멍 자국이 있었다. 시민이 “배가 고프다”는 아이를 편의점에 데려가 먹을 것을 사주고 자세히 보니 몸에도 멍 자국이 있었으며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린 흔적도 있었다. 손가락 일부는 화상을 입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아이는 “아빠가 때렸다. 엄마는 지켜보고 있었다”고 답했고 바로 경찰 신고가 이뤄졌다.
경남 창녕경찰서는 아이의 계부 A 씨(35)와 친모 B 씨(27)를 불구속입건해 수사를 시작했다. 6월 1일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한 경찰은 아동보호시설에서 피해 아동에 대한 피해 사실 조사를 진행했고 2일에는 계부 A 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A 씨는 관련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A 씨와 B 씨는 모두 4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피해 아동 말고 다른 아이 세 명은 A 씨와 B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른 아이 3명은 피해 아동처럼 신체적 학대를 당하진 않았지만 피해 아동이 학대당하는 모습을 봤다. 경상남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를 간접 경험해 정서적 충격을 겪은 만큼 부모와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법원에 세 아이에 대한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결정했다. 그런데 보호명령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A 씨와 B 씨가 자해소동을 벌인 것이다. 이로 인해 예정됐던 친모 B 씨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6월 11일 창녕경찰서는 ‘창녕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아직 친모 등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못해 피해 아동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수사 내용이지만 이미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증거를 확보한 상황이다.
5월 29일 목숨 건 탈출을 시도하기 전까지 피해 아동은 이틀 정도 쇠사슬에 목이 묶여 있었다. 평소 복층 구조의 집 다락방에 감금돼 있었으며 길이 1~2m의 쇠사슬로 목이 묶여 있었다. 가해 부모는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밥을 주거나 아예 굶기기도 했으며, 목줄은 청소나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할 때만 잠깐씩 풀어줬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이는 그동안 이뤄진 학대의 일부일 뿐이다. 계부 A 씨가 피해 아동의 손가락을 프라이팬으로 지졌는가 하면 친모 B 씨는 쇠젓가락을 불에 달궈 아이의 발바닥을 지지기도 했다. 글루건이라는 총 모양의 공구가 있다. 열에 잘 녹는 플라스틱을 200℃ 이상의 온도로 가열해 녹여 플라스틱이나 목재, 금속, 천 등을 접착할 때 사용하는 공구인데 가해 부모는 글루건으로 피해 아동의 발등에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구타 도구는 쇠파이프였다. 물이 찬 욕조에 피해 아동의 머리를 담가 숨을 못 쉬게 하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물고문’이다.
피해 아동의 진술에 따르면 아동학대의 수준을 뛰어 넘어 각종 고문을 당했다. 피해 아동은 다락방에 감금돼 있고 A 씨와 B 씨,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세 명의 아이가 함께 살아왔다.
피해 아동의 몸에는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목에 상처가 나 있었고 화상 자국, 그리고 오래된 골절 흔적도 발견됐다. 게다가 영양상태가 나빠 빈혈증세가 있다는 의사 소견도 나왔다. 경찰은 이들의 집을 압수수색했는데 거기서 프라이팬과 글루건, 효자손, 쇠파이프 등을 아동 학대를 입증할 증거물도 확보했다.
계부 A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쇠사슬 목줄을 채운 까닭에 대해 “아이가 집을 나가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반항해서 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녕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 아동은 10m 넘는 높이의 4층 집 베란다(오른쪽)로 빠져 나와 45도 이상 경사가 진 지붕을 5m가량 건너가 옆집 다락방 베란다(왼쪽)에 도착해 그 집으로 들어가 탈출했다. 사진=연합뉴스
5월 29일 오전 10시쯤 피해 아동은 목숨 건 탈출을 시도한다. 다행히 목줄이 풀려 있었던 피해 아동은 다락방 창문을 통해 작은 베란다로 빠져 나왔다. 이후 4층 빌라로 10m 넘는 높이에 45도 이상 경사가 진 지붕을 5m가량 건너가 옆집 다락방 베란다에 도착해 그 집으로 들어갔다. 어른에게도 위험한 그 길을 통해 아이는 탈출을 했다.
당시 옆집은 비어 있었다. 옆집 주민은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컵라면 두 개하고 콜라를 먹고 간 흔적이 있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선 급히 배만 채우고 맨발로 도망쳐 길거리로 나온 아이는 8시간가량 거리를 오가다 한 시민에 발견돼 구조됐다.
가해 부모 A 씨와 B 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바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친모 B 씨는 조현병 환자로 알려졌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경험상 가해 부모들은 대부분 치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정서적, 물리적 학대를 하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인 아동이 직접 신고에 나서는 등의 대응을 바라기는 어려운 현실”이라며 “교육기관에서 가해 부모의 특정행위는 ‘훈육이 아닌 학대’임을 상세히 가르치고 교사 등 외부인에게 알릴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 등을 목격했을 때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 이를 ‘신고하여야 한다’로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