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수 끝 당선 DJ ‘풍수바람 원조’…김종필·이인제·김무성도 이장
차기 대권주자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선친 묘를 이장해 관심을 끈다. 사진=박은숙 기자
김두관 의원 동생인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6월 1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가족 묘원을 조성하다’는 글을 올렸다. 김 대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묘소를 마련했다”면서 “어제부터 오늘까지 천둥 번개에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큰일났다고 생각했는데 조상님과 하느님이 보우하사 맑고 선선한 날씨가 되더라”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 가족이 모두 졸업한 모교 도마초등학교 뒷동산 삼봉산에 (선친 묘소를) 모셨다”면서 “멀리 우리 동네와 바다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나무하러 가던 부엉이바위가 눈에 들어온다”고 선친 묘소를 옮긴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제사 행사도 파격적으로 바뀔 것 같다”면서 “관혼상제 중에서도 결혼 형식이 제일 많이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제사가 제일 급격하게 바뀌고 있고 더욱 파격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우리 가족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고 했다.
김 의원 선친 묘역이 조성된 삼봉산은 경상남도 남해군에 위치한 해발 422m 봉우리다. 남쪽으론 남해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망운산(해발 784m)이 위치해 있고 동쪽과 서쪽엔 바다가 위치해 있다. 남해군 고현면 평야지대 너머로 녹두산, 금음산, 대국산, 귀두산 등이 솟아있는 것이 삼봉산 북쪽의 형세다. 김두관 의원 선친 묘소가 새로 조성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선 김 의원이 차기 대권 행보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두관 의원은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에서 37세 나이에 남해군수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김 의원은 노무현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되며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다. 김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 김 의원이 진보진영 잠룡으로 꼽히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김 의원은 2012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며 경남도지사직을 사퇴했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며 대권 도전을 차일로 미루게 됐다.
21대 총선에서 김 의원 존재감은 다시 한번 빛났다. 김 의원은 험지 혹은 승부처로 불렸던 경남 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집권여당 입장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위치한 ‘심장부’에 잠룡급 인사를 전략공천하면서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다. 김 의원은 경남 양산을 수성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김 의원은 4만 4128표(48.95%)를 얻어 4만 2695표(47.26%)를 얻은 나동연 미래통합당 후보를 1523표 차로 눌렀다. 험지에서의 승리로 금배지를 지켜낸 김 의원은 다시금 여권 잠룡으로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김 의원의 정치적 행보 역시 예의주시할 만하다. 김 의원은 대선 출마와 관련해 말을 아끼면서도 당내 대권-당권 주자들을 정조준한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김 의원은 6월 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대권 주자가 당대표에 당선될 경우 ‘7개월짜리 당대표’에 머물게 된다”면서 “코로나19 등 국난 극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는 ‘당권-대권 분리론’의 필요성을 역설한 발언이었다. 이는 당 내에서 당권과 대권 모두를 가시권에 두고 있는 이낙연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등을 겨냥한 말로 여겨졌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 의원은 ‘대권 도전’과 관련해선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김 의원은 “나는 중간에 당권 도전을 안 하니까 ‘그럼 다른 생각이 있느냐’, ‘대권병이 걸렸냐’ 이런 이야기가 있다”면서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민생 경제를 살리는 것이 우선순위”라면서 “그 점(대권 도전)은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 고려할 문제”라고 여지를 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여권의 유력 차기 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의원 역시 5월 26일 선친 묘소를 이장해 화제를 모았다. 이 의원은 ‘타의’로 선친 묘소를 이장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묘지로 사용할 수 없는 전남 영광군 법성면 밭 부지에 선친 묘소를 모셔 농지법·장사법을 위반했다. 영광군은 이와 관련해 과태료 100만 원을 부과하고 토지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이 의원은 “최근 불법이란 사실을 알았다”면서 “서둘러 이장할 것”이란 뜻을 밝히고 기존 선친 묘소 부지 인근에 새로운 묘소를 마련했다.
과거 대권을 손에 쥐려던 정치인들의 묘소 이장 사례가 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5년 4번째 대권 도전을 2년여 앞두고 선친 묘소를 이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는 부친 묘소와 경기도 포천시 천주교공원묘지 모친 묘소를 경기도 용인시 묘봉리산으로 합장했다. 지관들 사이에서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오는 명당”이라는 평을 듣던 곳이다. 1997년 김 전 대통령은 15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4수 끝에 대권을 움켜쥔 김 전 대통령 사례는 정치권 풍수 바람의 원조 격이 됐다.
15대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패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이어진 16대 대선에서 다시 낙선의 쓴 맛을 봤다. 16대 대선 이후 이 전 총재는 세 차례나 조상 묘를 이장했다. 이 전 총재 조상 묘소는 자리를 옮길 때마다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인제 전 새누리당 의원 역시 선친 묘소를 이장한 경험이 있었다. 정치권에선 이장이 대권 도전에 있어 일종의 관문이 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2016년엔 당시 보수진영 잠룡으로 꼽히던 김무성 전 의원이 부친 묘소를 서울 도봉구에서 경남 함양군으로 옮겨 ‘대망론’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