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 ‘욕심 프레임’ 씌우고 사찰칩거로 단일대오 형성…외연 확장 위한 안철수 영입 움직임도
우선 통합당은 힘으로 다투던 관행을 내려놓고 상대를 욕심꾸러기로 낙인찍는 프레임 짜기 전략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킨 뒤 사찰 칩거 정치라는 관심 끌기 전술을 선보였다. 여기에 초선과 다선의 한목소리 뭉치기 작전까지 가미했다. 표면적으로는 여당에 밀렸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응집력을 보여줬다. 내년 대선을 겨냥해 중도 표심을 향한 흡입력까지 만들어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6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주호영 원내대표(왼쪽)과 김종인 비대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힘? 머리로, 입으로!
여당의 일방적 원구성에 항의하며 원내대표직 사의를 표하고 경북 울진 불영사를 비롯해 전국 여러 사찰에 머물렀던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6월 25일 국회로 돌아왔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긴급 비상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재신임을 받았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민주당이 가져간 법사위원장직을 야당 몫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18개 상임위원장직을 다 포기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처음부터 협상은 없었고 민주당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어 통합당은 상임위원 명단을 제출할 의사가 없음을 재차 밝혔고, 민주당 측과 만날 계획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맘대로 하라”는 의미였다. 통합당이 초강수를 두면서 ‘상임위원장 독식’이라는 기회가 민주당에 던져졌지만, 동시에 ‘욕심꾸러기’ ‘독재’ 프레임도 함께 따라 붙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통합당 의원은 “여기가 과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인가, 대한민국의 국회인가 헷갈린다. 민주주의의 위대함과 자유의 소중함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고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됐는데 막상 국회에 들어와 보니 의회독재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통합당 한 초선 의원은 “처음에 민주당이 강하게 나올 때 우리도 한판 붙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힘으로 상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나았다. 우리는 한 자리도 탐내지 않고 여당 마음대로 국회를 운영하라고 했으니 국회 운영을 발목 잡는 세력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났고, 여당은 맘대로 하지만 실제 국민들에게 안심을 주는 집권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욕심만 채우는, 불안하기만 한 국회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통합당은 ‘입’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내세울 방침이다. 대북 유화정책 실패 등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전방위적 국정조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6월 25일 의총에서 “공룡 여당의 폭주를 막아달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국조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주호영 원내대표도 전날 윤미향 기부금 유용 의혹, 지난 3년간의 ‘분식 평화’와 굴욕적 대북외교에 대한 국조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철규 의원은 의총에서 ‘한·유·라 국조’를 제안했다. 한명숙 전 총리 수사와 관련된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여권 인사들을 상대로 한 라임의 로비 의혹을 줄여 만든 말이다. ‘한유라’ 단어는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를 연상시켜 국조의 무게가 국정농단 사건임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기현 의원은 의총이 열린 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북외교 논란을 촉발한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을 국조 증인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내놨고, 이채익 의원은 “탈원전 정책도 국조 대상에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 원내대표가 돌아온 이날 의총에서 관심을 끈 또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 전매 특허였던 기본소득에 대한 통합당 의원들의 토론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이날 참석한 의원들에 따르면 기본소득제에 대한 언급이 많았고 논의가 이어졌다. 우려 섞인 얘기도 있었지만 통합당 안을 여당보다 더 정교해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통합당 한 재선의원은 “과거엔 의총에서 과격한 발언, 즉 대여 투쟁에 대한 강성 목소리가 주류였다. 하지만 이날 의총에서는 여러 의원들이 자신의 전문분야를 꺼내들고 그와 관련된 의견을 내놨다. 무작정 비난 세례만 하지 않고 머리로, 입으로, 여당을 이겨보겠다는 목소리였다.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론 관심이 야당의 무기
주호영 원내대표는 오랜만에 ‘사찰 칩거 정치’ 카드를 보여줬다. 물론 주 원내대표가 원조는 아니고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2006년 7월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정세균 국무총리가 야당(민주당) 대표 시절인 2009년 1월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 7월 25일 사찰 칩거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처럼 열흘 가까이 한 사례는 없었다.
그는 9일 동안 10여 곳에 이르는 사찰을 방문하면서 ‘유발승(머리를 깎지 않은 승려) 주호영’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통합당 입장에서는 지지 유무와 상관없이 “도대체 어디 갔지?”라며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셈이다.
6월 23일 강원 고성군 화암사에 칩거 중인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오른쪽)를 찾아간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절에서 함께 내려오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주 원내대표는 6월 25일 국회 복귀 직후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협상을 거부하는 것도 고도의 협상전략이다. 그래서 (칩거를) 했다. 자꾸 찾아오니 있을 곳을 찾아야 했고 그러다보니 사찰로 갔다. 가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현충사는 수적 열세를 딛고 승리한 충무공의 정신이 어린 곳이다. 되새기고 싶었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가 칩거에 들어간 것은 대여 압박 용도도 있지만, 당 내부를 향한 기강 잡기 목적도 있었다. 주 원내대표가 “18개 위원장을 민주당에 다 내주자”는 의견을 냈지만,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상임위원장 자리 7개라도 확보하는 게 맞다”는 당내 일부 중진의원들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 동시에 원내지도부 책임론도 불거졌다.
장제원 의원은 6월 13일 법사위를 포기하고 산업자원통상위원회를 가져오는 실익을 택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사위를 포기하고,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산자위로 바꾸는 선에서 원 구성에 합의했으면 좋겠다. 법사위를 우리가 가진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법안 통과까지) 시간 좀 더 끄는 것 외에 끝까지 막을 방법도 없다. 무엇이 당을 위한 길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전했다.
주 원내대표가 칩거를 통해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재신임 결의를 받아내며, 당 내부 분열 목소리를 완전히 잠재우고 단일대오의 모습을 이끌어낸 것이다.
통합당 한 초선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 많은 민주당 의총이 요즘 오히려 더 조용하고 초선이 많은 통합당 의총이나 통합당 토론회에서 더 의견 개진이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칩거 기간에도 초선들의 목소리가 많이 전달됐다. 인간적으로 따져서 3선 중진들이 평생 한번 할까 말까한 상임위원장 욕심이 왜 없겠나. 하지만 요즘 분위기 속에 다선들이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합당이 안에서부터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쎄게’ 나가려해도 자꾸 머뭇거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여세 몰아 중도 흡입력까지?
통합당 발등에 떨어진 불은 여당과 힘 대결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지만, 최종 목표는 우측에 쏠린 지지 지형을 중도까지 넓혀 2022년 대선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최근 통합당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우군으로 만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안 대표도 최근 통합당에 우호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안 대표는 기본소득과 전일제 교육에 이어,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대학 등록금 반환 문제까지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띄운 의제에 공감을 표시하며 보조를 맞췄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최근 동향과 관련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촉구하며 통합당과 코드를 맞추는 모습이다.
안 대표 측근들도 국민의당이 통합당과 선을 그어 왔던 입장에서 벗어나 마음을 꽤 연 상태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통합당이 고집스럽게 우측으로 쏠린 모습에서 벗어나 탈이념적 정책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는 만큼, 국민의당과 협조가 이뤄질 바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양당 통합 논의는 아직 이르지만 두 당의 심리적 거리는 꽤나 가까워졌다는 것이 국민의당 내부 전언이다.
통합당은 컨벤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뚜렷한 대선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안 대표가 통합당의 주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심어지는 것이 나쁠 게 없다는 의미다. 부산 출신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안 대표는 수도권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PK(부산·울산·경남) 출신이다. 표 확장성이 뛰어나다. 또 기업을 해봐서 통합당의 핵심 지지층인 현장 기업인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고 IT 전문가여서 젊은이 지지자도 많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대구 의료 봉사를 해 TK(대구·경북)에서도 많은 점수를 땄다. 4년 전 호남에서조차 돌풍을 일으켰다. 통합당 후보로 손색이 없다. 최종 주자로 낙점되지 않더라도 페이스메이커로서 통합당 최종 주자의 인기를 앞에서 끌어주기만 해도 효과는 만점이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