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화천·철원 등 군부대 축소로 경제적 타격…코로나19에 돼지열병으로 관광지 출입도 통제
최근 통일전망대와 금강산가는길 안내소, 을지전망대, 제4땅굴 등 군에서 DMZ(비무장지대) 일대 관광지들과 민통선의 출입이 이 같은 이유로 통제되고 있다. 남북관계가 예민하기 때문에 통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평소 같으면 출입이 가능했던 DMZ 관련 관광지와 민통선 접근은 최근 대부분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을지전망대 너머에 위치한 남한 GP(Guard Post, 비무장지대 최전방초소)에서 북한 GP까지의 거리는 겨우 700여m에 불과하다. 원칙상으로 폭 4km의 DMZ는 비무장지대라 군사시설이 들어올 수 없지만 DMZ 일대가 산악지대인 탓에 남·북방한계선에서의 감시가 어렵다는 이유로 남북 모두 자국 DMZ 고지에 감시초소인 GP를 수십여 개씩 만들어왔다. 때문에 양측 군 사이의 거리는 1km 내외로 가까워져 있는 상황이다.
최근 DMZ 일대 관광지들과 민통선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DMZ의 GP로 인해 양측 군 사이의 거리는 1km 내외로 가까워져 있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북한군보다 무서운 건 경기침체
최근 남북관계의 악화에도 막상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반응은 ‘별일 없다’는 투다. 양구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곳에서 30여 년간 농사를 짓고 있다는 50대 주민 박 아무개 씨는 “이런 일에 일희일비했으면 이 땅에서 농사짓고 살지도 못했다. 간첩이 오르내리고 접경지대에서 심심하면 총격이 오고가던 시절에도 주민들은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며 “설사 북한이 밀고 내려온대도 양구는 10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북에서 육로로 직접 내려오기도 어렵고 포격을 가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양구 주민들에게 이런 상황은 몇 십년간 일상적인 일이어서 특별할 것도 없고 주민들 대다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철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결혼까지 이곳에서 했다는 한 현직 대위도 만났다. 그는 “최근 각종 북한 관련 이슈가 있어 군사훈련을 좀 더 엄격하게 하고는 있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며 “군인들은 대부분 직접적인 위협이라기보다는 늘 그렇듯 정치적 쇼로 여긴다”고 최근의 상황을 일축했다. 그의 아버지인 재향군인 이 아무개 씨 역시 “진전 없는 남북관계에서 미국의 반응을 겨냥한 액션이라고 본다. 이 정도면 평화무드 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교 출신의 보수적 재향군인들의 의견은 또 달랐다. 소령으로 퇴역한 정 아무개 씨는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최근 GP를 폭파하고 접경지대 군 병력을 축소하면서 전체적으로 접경지대 국방력이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중령 출신의 전직 군인 한 아무개 씨는 “GP의 병력만 빼면 되지 지리적으로 중요한 GP를 폭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나. 비공식적 GP의 개수가 북한이 200여 개, 남한이 60~70개인데 비율이 아닌 절대적 개수로 같은 수의 GP를 없애버린 것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2018년 말 남북에서 각각 11개의 GP를 철거한 바 있다. 강원도에서는 철원 3곳, 화천 1곳, 양구 1곳, 고성 1곳 등 6곳이다.
접경지대에서 PC방과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정 아무개 씨는 “요즘처럼 긴장이 고조되면 군인의 영내 대기가 많아져 군인들의 외출·외박이 감소해 장사에 타격을 입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초부터 경기가 잔뜩 위축돼 있는데 더 나빠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경색 분위기가 강원도 내 접경지역의 경기까지 경색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보다 많은 수의 군부대 장병들이 주둔하는 접경지역은 군인들이 얼마나 소비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경기도 따라가기 때문에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안전문제보다도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더 민감한 모양새다.
양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 아무개 씨는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던 1990년대 말 평화무드가 조성됐을 때 땅값이 엄청 올랐다. 하지만 이 후 땅값이 계속 떨어졌고 아직도 그때 땅 값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하며 “접경지대 주민 입장에서는 평화무드가 계속돼 그저 지역경제가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접경지역 군 병력 이전과 해체 등으로 지역경제 타격
한편 정부는 2018년부터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군 병력을 축소시키고 있다. 특히 육군 62만여 명에서 50만여 명으로 12만여 명 감축한다. 철원 6사단의 경기도 이전과 재편, 화천 27사단의 해체도 이에 포함된다. 앞서 양구에서는 2사단이 해체된 바 있다. 때문에 2022년까지 철원 5400여 명, 화천 6800여 명, 양구 7000여 명, 인제 4000여 명, 고성 3100여 명 등 강원도 접경지역 내에서만 약 2만 6000여 명의 군 병력이 감축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철원에서 고성까지 5개 접경지역 인구는 16만 명이었던 5년 전에 비해 최근 1만 명 이상 감소했다.
정부는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군 병력을 축소시키고 있다. 철원부터 고성까지 강원도 5개 접경지역 내에서만 2만 6000여 명의 군 병력이 감축된다고 알려지면서 인근 지역 경제가 침체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국방부는 “이들 5개 시군에서 일반 병사가 빠지는 대신 양적 군에서 질적 군으로, 첨단화 된 군으로 변화하며 부사관 등 군 간부는 4000명 정도 늘 것이라 병력에 타격은 없을 것이며 해당 가족의 이동을 고려하면 지역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지만 안전과 별개로 주민들은 여전히 지역 경기가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실제로 27사단이 있던 화천군 사내면에는 200여 개에 달하던 식당과 카페, 노래방 등이 절반 이상 줄어 현재 100여 개 안팎만이 운영 중이다. 화천 27사단 해체로 인해 이미 1개 대대가 이전했고 2022년까지 군 장병 5000~6000명이 화천을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군 이전과 해체 등으로 접경지역에서 주로 군 장병들을 위한 위락시설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한숨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국방개혁이 접경지역 주민의 생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지역 주민과 지자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화천군 주민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장병 6800여 명이 빠져나가면 지역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며 지역 경제에 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27사단의 해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지역에도 군부대 재편 및 병력 감축에 따른 재정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개혁을 하더라도 지역 주민과 상생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6·25를 맞아 한국전쟁 유공자인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철원을 찾았다는 최 아무개 씨는 “매해 이맘때쯤 철원을 찾지만 남북관계가 예민하건 말건 여기도 다 그냥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북관계가 예민해지면 관광객이 확 줄기도 한다지만 자주 이곳을 찾다보니 그런 경계심은 잘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군 장병들이 빠진다고 해서인지 코로나19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서인지 시내에 문 닫은 가게들이 부쩍 눈에 띈다”고 전했다.
군사령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내 육해공군 주둔 병력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연간 2조 7000억 원에 이른다. 또 육군 3군단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양구 지역에 군이 기여하는 경제 효과는 군인 가족 생활비 290억 원, 보통교부세 101억 원 등 총 60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DMZ 관광이 제대로 활성화 되지 못한 상황에서 군 병력의 축소를 감행하는 것에 대해 ‘생존권 박탈’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