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전수조사 관련 금융위-금감원 신경전…무거워진 책임에 일부 판매사 거래 중단 검토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 7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손병두 금융위 부원장 주재로 합동회의를 열고 사모펀드 전수조사 방침을 확정했다.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고가 잇따라 불거지자 전부 들춰보겠다는 계획이다. 3년간 전담 검사 조직을 한시적으로 만들고, 판매사 주도로 운용사-수탁사-사무관리회사 등의 자료를 교차 확인하는 자체 검사를 실시한다.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을 비롯한 사모펀드 사고가 연달아 터지면서 금융권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이 전수조사 방침이 확정되기 직전까지 금융위와 금감원은 신경전을 펼쳤다. 시작은 지난 6월 23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다. 은성수 위원장은 이날 옵티머스 펀드 문제를 거론하며 사모펀드 전수조사를 천명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모펀드를 다 점검하면 어떨까 생각한다”며 “과거 당국 조사에서는 운용사가 제출한 서류만 갖고 조사했는데 이번에는 실물과 대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문제를 제대로 확인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었지만 금융권에선 다른 해석이 나왔다. 금감원이 사모펀드를 조사하면서 일부 운용사만을 상대로, 서면으로만 조사한 점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다. 즉, 옵티머스 사태에 금감원의 감독 부실 책임도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두 달에 걸쳐 52개사 사모펀드에 대한 서면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 펀드의 문제는 발견하지 못했다.
곧바로 금감원 노동조합이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는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이 상황에서 전수조사를 언급하는 것은 비난의 화살을 금감원으로 돌리고 금융위의 원죄를 덮으려는 얄팍한 술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감원 노조는 사모펀드 문제의 근본 원인이 금융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운용사들이 사모펀드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는 바람에 부작용이 커졌다는 입장이다. 실제 금융위는 2015년부터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해왔다.
사모펀드 전수조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금감원 내 5개 팀, 32명에 불과한 자산운용검사국이 사모펀드를 정밀검사하려면 수십 년은 걸린다는 것이 노조 주장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금융권 일각에서도 동의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총 233곳에 이르는 자산운용사와 1만 4000개에 달하는 사모펀드를 모두 들여다보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제도 개선이나 규제 여부 검토 없이 조사만 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그러나 은성수 위원장은 사모펀드 전수조사 강행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그는 지난 7월 1일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음주운전 조사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조심한다”며 “3년이든 5년이든 나눠서 진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사모펀드 전수조사 방침을 확정, 발표했다. 서울 영등포구 금융위원회. 사진=최준필 기자
#더욱 거세진 판매사 책임론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 투자자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라임으로 시작해 옵티머스, 팝펀딩 환매 중단이 연이어 터진 데다가 피해 금액이 적게는 수백억 원부터 많게는 1조 원을 훌쩍 넘기는 만큼 책임 소재를 두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판매사들은 일단 문제의 펀드를 설정한 운용사를 상대로 고발에 나서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투자자들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 판매사 이름을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다. 자산가들 사이에서 사모펀드가 입소문을 타자 판매사들이 경쟁적으로 상품을 유치했고,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믿을 만한’ 은행 또는 증권사를 보고 돈을 맡겼던 만큼 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해선 최근 에이치엘비가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시사하며 판매사들을 상대로 소송전에 돌입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6월 30일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이 직접 옵티머스 판매가 명백한 불법 부당행위라며 판매사들을 대상으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에이치엘비는 하이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을 통해 옵티머스 펀드에 총 400억 원을 투자했다.
에이치엘비는 상장법인이라 전문투자자로 분류된다.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는 설명의무 적합성의무 등 투자자 보호제도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사모펀드 불완전판매로 문제를 제기하고 법적 공방을 벌여온 것은 일반 투자자들이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옵티머스 펀드가 명백한 사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문투자자가 판매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결과에 따라 판매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과 폭이 점차 넓어질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판매사가 피해 금액을 선지급하는 방안을 독려하고 있다. 일단 투자자들의 피해를 구제하고, 향후 운용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라는 것이다. 선지급을 결정한 판매사들에게는 추후 징계 수위를 낮춰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판매사들이 선지급 후에 이미 각종 소송과 가압류 등을 당한 운용사 등을 상대로 돈을 회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4월 22일 여의도 금융감독원(금감원) 앞에서 라임 사태 대신증권 피자들이 모여 대신증권 검찰 고발 및 양홍석 사장 퇴출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판매사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상 운용사는 투자자와 판매사보다 월등한 정보력을 갖고 있다. 운용사가 펀드를 출시하면 판매사는 운용사에게 자료를 받아 투자자를 모집한다.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 펀드처럼 운용사가 마음먹고 자료를 조작하면 알아채기 어렵다. 운용사로부터 받은 자료대로 설명해도 추후에 사고가 터지면 불완전 판매를 의심받게 된다. 최근 판매사와 투자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도 이 지점부터다.
금감원은 최근 라임자산운용의 무역펀드를 판매한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금투, 미래에셋대우, 신영증권 등 5개사에 펀드 투자자에게 투자금 100%를 돌려주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옵티머스 펀드 사태뿐만 아니라 향후 다른 사모펀드 사고가 발생하면 이번 권고가 전례가 돼 판매사의 배상액이 크게 불어날 것이란 우려가 퍼지고 있다. 라임펀드 관련 배상액은 판매사별로 수십억~수백억 원이지만 또 다른 사모펀드 문제에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배상하게 되면 회사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일부 판매사들 사이에선 ‘사모펀드 포비아’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언제 어떤 사고가 터져 나올지 몰라 상품을 다루기가 겁난다는 반응이다. 검증된 운용사를 제외한 중소형 운용사들과는 거래를 아예 끊는 방안을 검토하는 곳도 있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구조의 사각지대가 발견된 만큼 제도 정비 없이는 사고는 물론 사후 핑퐁게임도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