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과 ‘소울메이트’ 설현 인스타엔 비난 댓글 폭주…관리 부실 소속사가 문제의 주범
걸그룹 AOA의 전 멤버 권민아는 그룹내에서 10년 간 이뤄진 괴롭힘의 가해자로 리더 지민을 지목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유명 걸그룹 멤버의 충격적인 폭로 속, 괴롭힘 가해자가 리더인 지민(본명 신지민·29)으로 지목되면서 팬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큰 충격이 이어졌다. 앞서 음악전문채널 Mnet ‘언프리티 랩스타’ ‘퀸덤’ 등을 통해 여성들에게도 호감도가 높았던 멤버였던 만큼 분노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민의 경우 최근 페미니즘을 앞세워 셀링 포인트로 삼아왔기에 여성 팬들 사이에서는 “배신감마저 느낀다”는 부정적인 기류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퀸덤’에서 마마무의 곡 ‘너나 해’를 재해석한 AOA의 무대는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일반적인 걸그룹의 의상이 아닌 수트와 정장용 구두까지 갖춰 신고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라고 노래한 이들에게, 마침 페미니즘 열풍이 몰아치고 있던 여성 커뮤니티의 눈길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인기를 바탕으로 랩을 작사했던 지민을 위시해 AOA를 향한 여성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AOA의 신곡이 나오면 여성 커뮤니티에서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공격·음원사이트에서 노래를 재생해 음원 순위를 높이는 일)에 나서자”며 소비를 독려하는 집단 행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을 내세워 여성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그룹과 그 리더가, 실제로는 여성 피해자에게 정신적 폭력을 가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게까지 했다는 것에 대중들은 더 분노했다.
페미니즘을 내세워 여성 팬들의 지지를 받아온 만큼 이번 사태로 인한 비난 여론도 높다. 사진=Mnet 제공
이들은 이제까지 지민이 참여했던 방송이나 음원은 물론, AOA 전체에 대한 보이콧 행동까지 강행하겠다고 나섰다. 직접적 가해자인 지민이 AOA에서 탈퇴하고 연예 활동 전면 중단을 밝혔으나, 따돌림의 방관자로 지목된 남은 멤버들 역시 연예 활동을 해선 안 된다는 게 이들 비판의 요지다.
특히 지민과 ‘소울메이트’ 임을 밝혀온 설현이 대중들의 비판 폭격을 맞고 있다. 그룹 내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괴롭힘을 알면서도 그 가해자와 친분을 과시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줬다는 것이다. 현재 설현의 SNS에는 게시물이 올라온 시기를 막론하고 비난 댓글이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AOA의 소속사인 FNC엔터테인먼트의 대처에도 비판이 이어졌다. 권민아의 소속사 우리액터스가 기자들의 질의에 일일이 대응하고 배우의 안위를 위해 자택을 찾은 반면, FNC 측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들이 입을 연 것은 지민이 사과문을 올린 다음의 일이었다. 공식입장문에서 이들은 “지민은 이 시간 이후로 AOA를 탈퇴하고 일체의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기를 결정했다. 당사 역시 이 모든 상황에 책임을 통감하고 아티스트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FNC의 안이한 대처는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정준영 도촬 및 음란물 유포 사건에는 FNC 소속 가수들이 두 명이나 공범 또는 방조범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소속사 간판 그룹이었던 F.T.아일랜드의 리더 최종훈과 씨엔블루의 이종현의 경우다. 당시 FNC 측은 정확한 사태 파악을 하지 않고 두 멤버들의 주장에만 근거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다가 사실이 드러나자 곧바로 번복하는 등 소속 가수 관리에 치명적인 구멍이 있음을 자인했다. 이런 가운데 AOA의 무려 10년에 걸친 멤버 따돌림에 대해서도 방관했거나,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소속사의 이미지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땅에 떨어진 상태다.
권민아는 총 10차례에 걸친 인스타그램 폭로글을 통해 그룹 내에서 발생한 괴롭힘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 사진=권민아 인스타그램 캡처
AOA의 경우 현재는 지민이 탈퇴하는 것으로 논란의 불씨를 끄려 했지만, 대중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지속될 경우 그룹 해체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티아라의 경우는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어 해외 활동으로 어느 정도 출구를 찾는 것이 가능했으나 AOA의 경우는 해외 팬덤조차 등을 돌려 해외행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그룹이 문제가 아니라 소속사가 문제”라고 입을 모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룹의 관리 감독을 한 명에게만 맡긴 뒤 일절 터치하지 않는 것이 그룹 내 서열화를 공고히 하고 있어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걸그룹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연습생 시절부터 한 명에게 전권을 주고 나머지를 관리하도록 시킨다. 가장 능력이 뛰어난 애라기보단 윗사람 말을 가장 잘 듣는 애가 그 대상이다. 이제는 소속사 관계자가 대놓고 욕하거나 때리면 문제가 생기니까 또래한테 악역을 맡기는 것”이라고 짚었다. 최근 1~2년 사이 문제가 됐던 다수의 보이그룹 내 멤버 간 폭행 및 욕설 등 논란에 대해서도 “소속사가 말 잘 듣는 리더한테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는 식으로 일 처리를 맡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며, 소송 사건으로까지 번지면 소속사는 뒤로 빠진다”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이런 일이 한국의 아이돌 산업에서만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아이돌 산업이 한국보다 더 기묘하게 자리 잡은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도 유사한 사례들이 많고 해외의 경우도 멤버 간 지분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는 일이 잦다”며 “K팝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한국 아이돌 산업에만 있는 명암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산업의 구조 탓보다는 소속사의 관리 부실을 문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민 탈퇴 후 4인조 개편을 밝혔던 AOA는 오는 9월 예정됐던 ‘원더우먼 페스티벌 2020’ 출연을 전격 취소했다. 4인조 개편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결정된 사안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AOA의 해체 가능성이 다시 한 번 제기되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