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이슈 산적 후보군 점점 줄어…내부선 “힘 있는 기재부 출신 왔으면” 목소리도
그만큼 이동걸 회장이 산업은행을 잘 이끌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등 코로나19로 인해 산적한 현안을 감안할 때, 국책은행 역할을 비교적 무난하게 수행했다는 게 금융권의 평이다. 그럼에도 내부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특히 산업은행 앞에 놓인 과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장(회장)의 남은 임기는 오는 9월까지다. 통상 4~5개월 전부터 후임에 대한 하마평이 나오지만, 지금은 후임으로 거론되는 이들이 없다. 몇몇 후보군이 거론됐지만 고사했다는 후문인데, 자연스레 이동걸 회장의 ‘연임설’에 무게가 실린다. 사진=이종현 기자
#지난 3년 나쁘지 않은 평가
산업은행장(회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과거에는 인기가 많았다.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에서 희망자가 많았다. 규모나 역할 측면에서 상징성이 큰 것도 매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기가 급감했다. 코로나19와 각종 기업 구조조정 이슈가 맞물리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잘 진행되는 듯했던 아시아나항공 M&A(인수·합병)는 코로나19를 만나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여기에 두산그룹 부실 사태까지 터졌다. 한국GM과 쌍용차는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악재다.
때문에 5월 초만 해도 차기 산업은행장으로 몇몇 후보군이 거론됐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유력 후보’가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은행 회장 자리가 인기가 없어 이동걸 회장이 강제로 연임하게 생겼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주요 기업의 유동성 위기가 표면화하면서 이 회장에 대한 신뢰가 더 단단해진 부분도 있고, 역설적으로 힘든 자리가 되면서 인기가 떨어진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구조조정 전문가’인 이 회장의 업무 연속성과 안정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이 회장은 취임 후 오랜 기간 산업은행을 애먹여 온 금호타이어,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한국GM 등에 대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아시아나항공 등이 일부 차질을 빚는 모습이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기업에 끌려 다니는 채권단이 아니라 원칙을 내세워 대응하는 모습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장 거론되기 시작한 국책은행 이전
하지만 국책은행 맏형 격인 산업은행 앞에 드리워진 과제는 산적하다. 내부에서 최근 거론되는 이슈는 ‘지방 이전’이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의 본점을 지방으로 옮긴다는 여당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시즌2’ 정책에 대한 내부 불만이 적지 않다.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서 제외됐던 산업은행이 이번엔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당장 ‘원주혁신도시’ 등이 언급될 정도다.
7월 초 IBK기업은행은 대전으로, 한국수출입은행은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한다는 내용의 정보지가 돌기도 했는데 이를 본 관계자들은 “이제 시작되는 것 같다”고 반응하고 있다. 당연히 노동조합은 반대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미 국책은행 지방 이전 저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동걸 회장 역시 여러 차례 지방 이전 불가론을 천명했지만, 여당이 총선에서 내세운 정책인 만큼 막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내부 기대감은 낮다.
#소신 발언 속 드러난 ‘소통 능력’ 부재
그런 측면에서, 산업은행 내부 직원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정권과의 소통 능력’이다. “직원들 대다수가 연임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고 얘기하면서도,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분이다.
1953년생인 이동걸 회장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금융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한국금융연구원장, 한림대·동국대 초빙·객원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산업은행 회장 자리로 왔다. 장하성 주중대사,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과는 경기고 동창이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윤석헌 금감원장 등 진보 계열 학자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내부에서는 정권과 더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힘 있는 회장을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소통력’이 약하다는 게 내부 평이다. 산업은행 일각에서는 더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힘 있는 회장을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산업은행 관계자는 “아무래도 교수에 가까운 역할만 해오다 보니 직원들과의 관계가 좋지만 가끔 기획재정부 등을 상대로 더 원활한 소통을 했으면 할 때가 있다. 역대 회장들을 놓고 보면 기재부 출신들이 왔을 때 상대적으로 업무 처리가 편했다”고 귀띔했다.
실제 이 회장은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소신 발언을 통해 정부와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해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는 “정책금융이 많은 기관에 분산된 것은 비효율적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합병을 정부에 공식 건의할 생각”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미래를 이끌어갈 훨씬 강력한 정책금융기관을 만들어내겠다”는 게 이 회장의 아이디어였지만, 곧바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청와대가 나서 “전혀 논의한 바 없고 논의할 계획도 없다. 논란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지방 이전이 현실화될 때, 청와대와 여권에 얼마나 제 목소리를 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또 1953년생, 올해 67세의 비교적 고령인 점도 거론된다. 앞서의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번에 연임하면 3년을 더 해야 하는데 70세가 넘은 회장이 있었던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연임 땐 ‘IMF 금융위기 후 첫 사례’
연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더라도 변수는 적지 않다. 특히 산업은행은 연임 사례가 드물다. 1954년 설립 후 연임한 회장은 구용서 초대 총재, 1970년대의 김원기 전 총재(15~17대), 1990년대의 이형구 전 총재(25~26대) 등 단 세 명에 불과할 정도다. IMF 금융위기 이후에는 단 한 명도 연임한 사례가 없다.
이 회장 역시 자신의 거취에 대해 부담을 느낀 듯, 최근 온라인으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연임설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 달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특히 “할 일이 너무 많은 상황이고 주어진 일만 전념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임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일축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