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돌봐준 주민에 관리 책임 전가 논란…관공서 홍보 후 버려지는 반려동물 적잖아
경기 포천경찰서에서 3년간 생활한 왕방이와 왕순이. 현재는 한 주민이 임시 보호하고 있다. 오른쪽은 파출소 앞마당에 마련된 견사. 사진=제보자 제공
포천파출소에 사는 ‘왕방이’와 ‘왕순이’는 2018년 5월 당시 파출소장과 파출소 1팀 팀장에게 입양됐다. 왕방이와 왕순이의 파출소의 마스코트였다. 당시 파출소장은 직접 네이버 밴드를 개설해 왕방이와 함께 순찰하는 사진을 올렸고 소식을 들은 어린이들을 포함한 동네 주민들이 직접 파출소를 찾아오기도 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를 데려와 함께 놀다 가곤 했다. 파출소 마당 한편에는 왕방이와 왕순이의 견사도 있었다.
갈등은 포천파출소가 6월 왕방이와 왕순이를 파양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파출소 측에서 평소 왕방이와 왕순이를 잘 돌봐주었던 주민 A 씨에게 “개를 키울 수 없으니 치워야 한다”고 통보한 것이다. 일부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해 더 이상 파출소에 두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3년 동안 생활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 셈이다.
포천파출소 관계자는 7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3년 전 당시 파출소장이 데려와 키우게 된 것은 맞다”면서도 “여건상 더 이상 키우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파출소 주변은 빌라 단지다. 바로 5m 앞에는 빌라와 원룸들이 있다. 아파트도 근처다. 처음에는 개들이 작고 그러니까 귀여워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점점 커가는 상황에서 최근 민원이 잇따라 발생해 더 이상 키우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크기가 작은 강아지였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성견이 된 이후에는 소음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두 반려견이 한 순간에 주인 없는 개가 됐다는 점에 있다. 파출소는 왕방이와 왕순이가 파출소 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앞서의 파출소 관계자는 “저희는 개의 소유권이 넘어갔다고 생각한다”며 “실질적 관리는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A 씨가 했고 파출소는 장소만 제공했다. 중성화 수술도 파출소 직원 몇 명과 주민들이 돈을 모아 했다. 동물등록은 A 씨가 했기 때문에 파출소는 현재 개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다. 다만 A 씨가 허락한다면 반려견을 처음 데려온 분에게 보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A 씨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A 씨는 “개를 데려온 당시 파출소장은 왕방이를 입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가버렸다. 중간에 다시 키우겠다고 데려갔다가 하루 만에 파양 의사를 밝혀 다시 파출소로 오게 된 것”이라며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에 이것저것 보살펴줬다 ‘동물등록도 하셔야 한다’고 누차 말씀 드렸으나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어 대신 등록을 하고 등록번호를 파출소에 알려드리기까지 했다. 이런 이유로 파출소 개가 아니고 책임도 없다고 하니 황당할 뿐이다. 경찰이 유기한 개를 다시 경찰이 유기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왕방이와 왕순이는 순경을 뜻하는 계급장을 달고 있다. 사진=제보자 제공
왕방이와 왕순이는 누구의 개일까? 법적인 책임이 A 씨에게 있다고 왕방이와 왕순이가 파출소 개가 아니라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왕방이와 왕순이를 ‘파출소 개’로 알고 부르고 있었다. 두 반려견은 순경을 뜻하는 계급장과 파출소의 전화번호가 붙은 목줄도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파출소에서 반려견 관리를 소홀히 해 목욕 등 많은 부분을 A 씨가 담당했다고 했다. 예방접종이나 중성화 수술 등 비용이 들어가는 건강관리도 마찬가지였다.
1년 전부터 두 반려견을 봐왔다는 한 주민은 파출소가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파출소 개가 아니라면 앞마당에 견사는 왜 지어둔 것인지 모르겠다. 견사에는 ‘왕방이와 왕순이의 간식은 파출소로 가져와 달라’는 현수막까지 붙어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왕방이와 왕순이를 홍보에 이용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2019년 6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왕방이와 왕순이를 키우는 포천파출소를 칭찬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자 포천경찰서와 파출소에서 주도적으로 왕방이와 왕순이의 영상을 찍어 올리자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시 파출소에서도 왕방이와 왕순이를 A 씨 소유의 개라고 생각했다면 촬영 과정에서 A 씨 허락을 받았어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주민은 “당시 청원게시판에 칭찬 글이 올라오고 ‘왕방이와 왕순이가 누구냐’며 포천경찰서장이 직접 왔다고 들었다. 그 뒤로 파출소에서 왕방이와 왕순이가 나오는 영상을 찍겠다며 직원 차량의 블랙박스로 이틀 동안 촬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파출소 관계자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나 실제 영상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부천시 페이스북에 올라온 ‘다행이를 찾고 있습니다’ 포스터. 사진=부천시 페이스북
이런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방서, 경찰서, 지하철역사무소 등의 관공서에서 개와 고양이를 홍보용으로 사용한 뒤 인기가 시들해지면 유기하거나 관리 소홀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경기도 부천시 역곡역의 명예역장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동화책, ‘역곡 다행광장’까지 만들어졌던 고양이 ‘다행이’는 담당자였던 김행균 전 역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입원하자 유기동물보호소로 보내진 뒤 2017년 실종됐다. 여전히 다행이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는 역곡역 주민은 “전 역장이 입원하자마자 유기동물센터로 보내는 것을 보고 코레일이 동물을 홍보수단으로만 봤다는 생각에 분노했다”고 말했다.
경기 가평경찰서 명예의경으로 위촉됐던 ‘잣돌이’는 경찰서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차에 치여 숨졌다. 각종 방송에 나와 주무관견으로 유명세를 탔던 전북 완주군 운주면사무소의 ‘곶감이’도 최근 농약을 먹고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관공서 내 반려동물이 방치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대해 김현지 팀장은 “기관에서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부서 이동이나 발령 등과 무관한 담당자가 명확히 존재해야 한다. 홍보대사견의 경우 맡은 임무가 끝나면 입양은 어디로, 어떻게 보낼 것인지 등의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어야 했다. 이런 고민 없이 단순히 ‘개가 있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갖겠지?’라는 차원에서 동물을 키우기 시작하면 그 말로는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