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김여정-장금철, 대미 최선희-권정근…“어떤 일 일어날지 몰라” 김여정 대미 외교 지원 눈길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사진=한국공동사진취재단
북한의 대남 카운터파트로는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과 장금철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전면에 나선 형국이다. 김여정은 3월 3일 자신의 명의로 첫 담화를 냈다. 청와대가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유감을 표명하고 중단을 촉구한 것과 관련해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라며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고 했다. 그 전까지 ‘대남 온건파’로 분류됐던 김여정이 강경파로 돌아선 터닝 포인트였다.
첫 담화 발표 이후 석 달이 지난 뒤 김여정의 대남 압박은 더욱 강경한 기조를 띠었다. 6월 4일 김여정은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언급하며 한국 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김여정은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는 마당에 이런 행위가 개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 남조선(한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 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여정의 담화 정치는 속도와 강도를 동시에 높였다. 6월 13일 다시 한번 담화를 발표한 김여정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형체도 없이 무너뜨리겠다”고 위협했다. 위협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6월 16일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한국 정부 예산으로 건축된 건물은 단 몇 분 만에 무너져 내렸다. 김여정의 말이 곧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한국 정부에 전한 셈이다. 일련의 사건으로 김여정은 북한 내 정치적 2인자 입지를 강화했고, 대남 외교 ‘빅 마우스’로 자리매김했다.
전면에 나선 김여정의 지원 사격을 담당한 인물은 장금철이었다. 장금철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영철로부터 통일전선부장 자리를 이어받은 인물이다. 2001년엔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로 6·15 남북 공동선언에 참석했고 그 뒤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중앙위원으로 임명돼 남북 민간 교류 업무를 담당했다. 한 북한 소식통은 일요신문에 “장금철은 일본에서 조총련계 등 해외교포 공작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이라면서 “통일전선부의 터줏대감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귀띔했다.
장금철은 김여정의 대남 압박이 심화하던 6월 12일 담화를 통해 전격 등장했다. 장금철은 담화문에서 “이번 사태(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통해 애써 가져보려 했던 남조선 당국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 났다”면서 “큰일이나 칠 것처럼 자주 흰소리를 치지만 실천은 한걸음도 내짚지 못하는 상대와 정말로 마주서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어 장금철은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 당국에 있어서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거주 북한 소식통은 “장금철 담화는 김여정 담화 내용을 거드는 형식”이라면서 “군인으로 치면 사수와 부사수 격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김여정과 장금철의 주고받기식 담화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이어졌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김여정은 한국 당국에 “군사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여정이 예고한 ‘군사행동 카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회수했다. 김정은은 6월 23일 당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라는 유례없는 회의를 열어 군사행동 유보 방침을 결정했다. 그 뒤로 ‘대남 라인’의 강경 압박은 잠시 휴지기에 접어들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사진=연합뉴스
미국 담당 파트는 북한 외교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을 이룬다. 대미 라인에서 김정은 대리인격 역할을 하는 인물은 ‘미국통’으로 잘 알려진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다. 김여정이 북한 지도층 3세대라면, 최선희는 2세대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북한 내각 총리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을 지냈던 북한 1세대 정치인 최영림의 수양딸이다. 최선희는 오스트리아, 몰타, 중국 등 유학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외무성에서 통역 등 외국어 전문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최선희는 김정은의 통역을 담당하며 국제 외교가에 전격 등장했다. 최선희는 북미 정상회담 당시 수행단으로 활동했다.
북한 외무성 연구원부터 미국국 부국장과 국장까지 조직 내 요직을 거친 최선희는 지난해 4월 11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외무성 제1부상으로 승진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외교부 차관급이다. 더불어 북한 최고 행정기관인 국무위원회 위원 직함까지 얻었다. 통역가 출신 최선희가 올해 들어선 북한 대미 외교라인 실세로 입지를 굳힌 셈이다. 최선희는 지난 7월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선희는 7월 4일 ‘담화 정치’에 합류하며 대미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담화에서 최선희는 북미협상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최선희는 북미 정상회담 추진설과 관련해 “조미(북미) 관계 현 실태를 무시한 여론”이라면서 “조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최선희는 “우리와 판을 새롭게 짤 용단을 내릴 의지도 없는 미국이 어떤 잔꾀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겠는가 하는 것은 구태여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면서 “그 누구의 국내 정치 일정과 같은 외부적 변수에 따라 우리 국가의 정책이 조절·변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북미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일각의 분석을 저격한 소형 말폭탄을 터뜨린 셈이다. 최선희 말폭탄 파편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튀었다. 최선희는 “섣부르게 중재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문 대통령을 저격했다.
대미 ‘빅 마우스’에도 부사수는 존재한다. 바로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다. 권정근은 2016년 뉴욕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미국국장으로 승진했다. 미국국장 직을 맡은 뒤 권정근은 북미협상이 더뎌질 때마다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조선중앙통신’이나 ‘우리민족끼리’ 등 관영·선전 매체를 통해 미국 정부를 압박하는 담화문을 자신의 명의로 내왔다.
최선희 담화 발표 사흘 뒤인 7월 7일 권정근은 “다시 한번 명백히 하는데 우리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최선희가 발표한 담화 내용에 다시 한번 말뚝을 박은 셈이다. 뒤이어선 한국 정부를 향한 강한 어조의 비난을 시작했다. 권정근은 “말귀가 어두워서인지 제 좋은 소리를 하는 데만 습관돼서인지 지금도 남쪽 동네에서는 조미수뇌회담을 중재하기 위한 자기들의 노력엔 변함이 없다는 헷뜬 소리들이 계속 울려나오고 있다”면서 “제 코도 못 씻고 남의 코부터 씻어줄 걱정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라며 한국 정부를 쏘아붙였다. 이어 권정근은 “이처럼 자꾸만 불쑥불쑥 때를 모르고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 북남관계만 더더욱 망칠 뿐”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대미 외교 라인 빅 마우스들은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동시에 청와대를 저격했다. 이와 관련해 린하이동 중국 반도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북한이 사전에 대중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정보를 공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청와대의 이런 움직임이 북한 입장에선 상당히 거슬렸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김여정-장금철 ‘대남 라인’과 최선희-권정근 ‘대미 라인’은 철저한 분업 하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북한의 외교 노선과 관련한 포석을 놓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한 북한 소식통은 “북한의 대남·대미 외교라인 빅 마우스 라인업을 살펴보면 사수와 부사수가 확실하게 분업화돼 있다”면서 “사수의 역할은 김정은의 대리인 격”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김정은의 대리인 역할을 맡은 사수들은 최고지도자가 직접 말하기 어려운 강경한 메시지를 쏘아붙이고 있다”면서 “혹시라도 강경 대응이 자칫 선을 넘을 우려가 있을 경우엔, ‘군사행동 유보’를 결정했던 것처럼 김정은이 직접 나서 진화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착한경찰-나쁜경찰(굿캅-배드캅)’ 전략은 김정은의 해결사 능력을 부각하는 동시에 김여정-최선희 등 외교 라인 빅 마우스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은 김여정이 7월 10일 담화를 통해 대미 외교 지원 사격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날 김여정은 “우리(북한)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 행동과 병행하여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 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이어 김여정은 “타방의 많은 변화라고 할 때 제재 해제를 염두한 것이 아님은 분명이 찍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부분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어 김여정은 연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우리에게는 비실리적이며 무익하다”면서도 “하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다”며 여지를 남겼다. 김여정은 “두 수뇌(트럼프-김정은)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