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인정하며 검찰 수사 적극 협조…결국 불구속 기소, 재판서 플리바게닝은 부인
검찰은 “피고인 김 씨는 본인 스스로 프로포폴에 중독돼 상습 투약했고, 다른 상습 투약자들에게도 프로포폴을 놓아 주면서 이를 은폐하려고 해 차명 진료기록부를 만들었다”며 “피고인은 재판을 받으면서도 진료기록부를 대량 폐기하는 상상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 또한 범행을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신 씨에 대해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죄질이 좋지 않다. 다만 자백하고 뉘우친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성형외과 의사 김 씨와 간호조무사 신 씨 재판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건강검진센터에서 간호사가 프로포폴 재고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재벌가 인사들에 이어 배우 하정우까지 거론돼
성형외과 의사 김 씨와 간호조무사 신 씨의 재판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해준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우선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삼남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이사가 있다. 채 전 대표는 이미 관련 혐의를 인정했으며 김 씨와 신 씨 재판에 증인으로도 출석했었다. 채 전 대표는 5월 27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역시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에게 배당됐다.
이 외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 배우 하정우 등도 김 씨의 병원에서 상습적으로 프로포폴 주사를 맞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이들 역시 이미 채 전 대표를 불구속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김호삼 부장검사)에서 수사를 진행 중이다.
다만 채 전 대표가 관련 혐의를 대부분 인정한 데 반해 이 부회장과 하정우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5월에 있었던 김 씨와 신 씨의 재판 과정에서 이름이 거론되면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박 부회장 측 역시 프로포폴 상습투약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최근 하정우(본명 김성훈)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씨와 신 씨의 재판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검찰은 하정우에게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와 함께 본명이 아닌 친동생과 매니저 등 2명의 이름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한 경위를 조사했다.
지난 2월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하정우 측은 입장문을 내고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 10차례 정도 레이저로 얼굴 흉터 치료를 받으면서 수면마취를 시행한 것이 전부’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번 검찰 조사에서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으며 타인 명의로 진료를 받은 것 역시 병원 측의 요구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알려졌다. 검찰은 빠르면 7월 이내에 하정우 등 의혹 관련자들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검찰과 채 전 대표의 플리바게닝 의혹
징역 6년에 추징금 4600여 만 원을 구형받은 성형외과 의사 김 씨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자신의 병원에서 피부미용 시술 등을 가장해 자신과 고객들에게 148차례에 걸쳐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 받은 고객으로 재계 인사와 연예인 등이 거론돼 화제가 되고 있는데 유독 채 전 대표만 혐의를 인정한 부분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하정우에게 해당 병원을 소개해준 이가 평소 친분이 있던 채 전 대표이기도 하다.
그만큼 채 전 대표가 검찰 조사과정에서 진술한 내용과 김 씨와 신 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내용이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6월 2일 열린 김 씨와 신 씨의 네 번째 공판기일에 채 전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가 불구속 기소된 직후다.
이날 채 전 대표는 “10회 투약 패키지에 450만 원가량을 내고 시술을 받았으며 정신이 몽롱해지고 한두 시간 정도 편하게 쉴 수 있어서 투약을 받아왔다”고 밝혔으며 “다른 재벌가 사람과 병원에서 마주친 것과 관련해서 김 씨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도 말했다.
채 전 대표는 검찰 수사 초기부터 수사에 매우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김 씨 병원에 차명차트가 있다는 부분과 김 씨가 허위 진술을 요구했다는 등의 내용을 진술했는가 하면 병원 예약 내역이 기재된 다이어리까지 제출했다.
이런 까닭에 채 전 대표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과연 어디까지 진술을 했는지가 재벌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씨 병원에서 마주쳤다는 또 다른 재벌가 인사에 대한 진술을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2일 공판에선 김 씨 측 변호인이 “(검찰 측으로부터) 해당 병원과 관련해 제보를 해주면 불구속을 해주겠다든가 형을 가볍게 선처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겠다고 듣거나 기대해서 자수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플리바게닝’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채 전 대표는 “그런 건 전혀 없다”며 “저도 사람이라 구속이 무서웠는데 그것 때문에 자수한 것은 아니고, 솔직히 오랫동안 해당 병원을 포함해 다른 병원들에서도 프로포폴을 맞아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걱정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검찰 역시 “왜 수사에 성실히 임했느냐”고 물었는데 채 전 대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채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말 관련 수사가 시작되자 바로 사표를 내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하정우에게 해당 병원을 소개해준 이가 평소 친분이 있던 채 전 대표이기도 하다. 하정우의 경우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실을 채널A가 단독보도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는데 검찰이 어떤 루트로 그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을 확보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박정훈 기자
#재벌가 수사 대상들, 채 전 대표 진술 아닌 다른 루트로 의혹 제기돼
실제로 채 전 대표는 증인으로 출석해 법정에서 “김 씨의 병원에서 다른 재벌가 사람과 마주쳤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채 전 대표가 그렇게 마주친 재벌가와 연예계 등 유명인에 대해 검찰 진술 과정에서 언급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수사 선상에 오른 재벌가 인사들은 채 전 대표의 진술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의혹이 제기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공익신고를 접수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내용은 ‘뉴스타파’에서도 단독 보도했는데 제보자는 김 씨 성형외과에서 근무했던 간호조무사의 남자친구였다.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은 김 씨 성형외과의 경리 담당 직원이 검찰 진술 과정에서 언급했는데 당시 진술조서가 김 씨와 신 씨 공판 과정에서 공개됐다. 해당 경리 담당 직원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박 부회장 등 3명이 병원을 방문해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했다는 사실을 다른 직원들에게 듣거나, 투약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하정우의 경우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실을 채널A가 단독 보도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는데 검찰이 어떤 루트로 그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을 확보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김 씨와 신 씨의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김 씨)은 재판을 받으면서도 진료기록부를 대량 폐기하는 상상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이들의 첫 공판에서 김 원장이 진료기록부를 대량 폐기한 정황을 공개했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김 원장은 진료기록부를 압수당했다가 돌려받았는데 이후 경찰관의 허가를 받아 이를 폐기했다. 검찰도 압수수색을 통해 진료기록부를 확보했지만 230명의 것이 전부였다. 2010년부터 강남 한복판에서 4층 규모의 병원을 운영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적은 양이라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다. 이날 검찰은 신 씨가 동생을 통해 휴대전화를 폐기했다는 점도 공개했다. 게다가 채 전 대표는 검찰에서 김 씨가 허위 진술을 요구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 씨는 관련 혐의를 축소하고 은폐하려 했으며 특히 재벌가와 연예계의 VIP 고객 보호에 철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김 씨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상습 불법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명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