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에 의한 폭행·사망사고 근절 안돼…이수진 ‘경비원 보호’ 1호 법안 이목집중
아파트 경비초소에 붙어있는 경비원 휴게시간 안내문 사진=김창의 기자
[일요신문] 2014년 10월 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서 경비원 이만수 씨(53)가 분신을 시도했다. 아파트 주민인 A 씨는 이 씨에게 냄새가 난다는 등의 모욕적인 말을 했고 베란다에서 이 씨를 향해 음식물을 던지며 “주워 먹어라”라는 등의 인격 모독을 일삼았다.
당시 동료 경비원들과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민 A 씨를 저지하지 못했다. 분신으로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이만수 씨는 한 달 동안 중환자실에서 투병했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2018년 10월 29일 새벽 1시경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아파트에서 술에 취한 주민 최 아무개 씨(45)가 경비원 B 씨(72)를 주먹과 발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B 씨는 최 씨를 피해 달아나며 112에 신고해 “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경찰이 출동하는 동안에도 최 씨의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출동한 경찰이 새벽 3시경 경비초소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져 있는 B 씨를 발견했다. B 씨는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발성 뇌출혈’ 진단을 받고 한 달 후 사망한다. 경비원 B 씨의 가족은 “얼마 전 첫 손자가 태어나 그렇게 기뻐하셨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올해 4월 27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성원아파트에서 주민 심 아무개 씨(48)가 경비원 최희석 씨(59)를 경비실 내부 화장실에 가둬놓고 폭행해 코뼈가 내려앉는 상처를 입혔다. 주민들이 최 씨를 도우려 하자 오히려 주민 심 씨는 쌍방 폭행이었다며 진단서를 가져와 최 씨를 협박했다.
심 씨가 가져온 진단서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인해 발급받은 엉뚱한 진단서였지만 세상 물정에 어둡던 최 씨는 억울함과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도 심 씨는 경비초소에서 최 씨가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막거나, 밥을 먹으려 하면 찾아와 주먹으로 때리기를 반복했다. 결국, 최희석 씨는 ‘억울하다’는 유서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파트 경비원은 ‘생애 마지막 직업’으로도 불린다. 대한민국 가장들이 퇴직 후 마지막으로 찾는 직업 중 하나다. 직업이라기보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자리다.
보통 하루 24시간을 아파트에서 머물고 다음 날 하루를 쉬는 근로 형태지만 그 24시간 전부를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주, 야간에 휴식 시간을 편성해 급여를 낮춘다. 급여를 받지 못하는 휴식 시간은 주간 4~5시간, 야간 5~6시간 정도다. 이 정도를 제외하면 일 근무시간은 14시간에서 15시간 정도다. 감시 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주휴수당도 없다.
휴식 시간에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은 드물다. 경비초소에는 ‘휴게시간에 근무자들이 없더라도 주민들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붙어있지만 실제 경비원들은 휴식 시간 초소 한구석에서 쉬거나 잠시 눈을 붙이다가도 민원이나 전화가 오면 응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자신이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주민의 택배를 대신 받아주고 분리수거 업무도 맡는다. 주민들이 잘못 내놓은 재활용 쓰레기를 일일이 분류하고 이물질을 씻어내는 것도 경비원의 일이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아파트에서는 이중 주차 해놓은 차량을 온몸으로 밀어내는 등 주차 관리도 해야 한다.
오전 7시 아파트 입구에 경비원을 세워 출근하는 주민들 차량에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를 시키는 아파트도 있다.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는 이 같은 지시가 부당하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통상 월급은 100만 원 중후반에서 200만 원 초반이 주를 이룬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 패턴과 3개월, 6개월짜리 쪼개기 근로계약에도 본지가 만나본 경비원들 대다수가 “일할 수 있어 좋다.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경비원을 하대하고 폭언과 폭력, 사망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피해를 받아도 호소할 곳이 없고, 호소해도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큰 가해로 돌아오는 위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이 도움을 호소한 곳은 관리소장과 주민들밖에 없었고 이들은 위로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통상의 법과 제도가 닿지 않는 곳이 경비원의 자리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파트의 특수성을 감안하고 실효성 있는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에 의한 경비원의 폭행, 사망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내놨지만 사고는 근절되지 않았다.
반복된 경비원 폭행, 갑질, 사망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경기도가 먼저 나섰다. 7월 6일 경기도(도지사 이재명) 공동주택과는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심의위원회를 열어 ‘관리주체, 입주자대표회의, 입주자 등이 공동주택 내 지위 등을 이용해 경비원, 미화원, 관리사무소 직원 등 근로자에게 폭언, 폭행,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조항을 발 빠르게 삽입했다.
준칙의 경우 법률과 같은 강제성은 부족하지만 도는 “더욱 세심하게 경비원 보호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동작을) 의원과 강병원(은평을) 의원이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경비원 보호에 나섰다. 강병원 의원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교육에 경비원 인권침해 방지 교육을 포함하고 경비원의 처우와 인권 실태조사를 매년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수진 의원은 한발 더 나가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폭언, 욕설, 고성, 반복 민원 등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 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폭언을 비롯해 법과 관리규약을 위반한 지시를 한 경우에도 지자체에 신고하고 수사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조항을 손봐 입주민, 주민대표 등으로 인한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이수진 의원의 개정안에는 재선의 진성준(강서을), 소병훈(경기 광주갑) 의원을 비롯한 총 30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리며 경비원 보호 제도화에 뜻을 모았다.
개정안이 경비원에 대한 가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집권 여당의 의원들이 경비원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비원의 억울한 죽음에 안타까워하던 국민들의 시선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로 모이는 이유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