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업무용 구매해 사적 사용, 법인세 경감 혜택까지…벤츠 E클래스 판매량 글로벌 1등 기현상 낳아
한 수입차 판매 관계자의 말이다. 2019년 한국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판매량은 3만 9788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기아차 중형 세단인 K5는 3만 9668대에 그쳤다. K5는 그나마 선방한 것으로 르노삼성이나 한국GM의 중형 세단 판매 대수는 이 기록에 한참 못 미쳤다.
고급 수입차인 벤츠는 한국이 세계 5위권 시장이다.
특히 벤츠 E클래스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보다 더 많이 팔릴 때도 있었다. 미국은 연간 신차 시장이 1700만 대 이상으로 한국보다 10배나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세에 힘입어 한국은 세계 5위 벤츠 소비 시장으로 떠오르며 주요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보다 벤츠가 많이 팔린 나라는 중국, 미국, 독일, 영국뿐이다.
초고가 차량이 지나치게 많이 팔리는 국내 기형적 자동차 시장의 원인으로 국내 업무용 차량 관련 세제 혜택을 드는 시각이 있다. 초고가 차량을 법인 앞으로 등록한 뒤 사적으로 사용하고 관련 감가상각비, 유류비 등을 비용으로 처리해 법인세를 탈루하는 방식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세법을 개정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2015년 슈퍼카로 통하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이 법인 등록된 경우가 너무 늘자 세법이 개정된 바 있다. 개정된 법인세법 핵심은 업무용 차량의 연간 감가상각액 한도를 800만 원으로 정한 것이다. 다만 문제는 800만 원 초과 금액을 이월할 수 있고 10년이 경과한 사업연도에는 남은 금액을 전액 비용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가상각비 포함 차량 관련 비용이 연간 1000만 원이 넘는 경우에는 차량운행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이 차량운행일지 기록에서 전체 운행 거리를 대비해 업무용으로 운행한 거리 비율만큼만 회계 처리하도록 했다. 문제는 현행법에는 차량의 실제 운전자와 운행실태를 세무당국이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때문에 세무당국이 위반 사례 적발을 위해 제보나 제한적인 조사기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다 보니 세법 개정 이후에도 슈퍼카나 고급 세단의 법인 등록 비율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요신문이 국회를 통해 받은 초고가 스포츠카 법인 등록 현황을 보면 법이 개정된 2016년을 기점으로 일부 슈퍼카 등록은 오히려 늘어나는 모양새다. 2015년 람보르기니는 전체 등록대수 4대 중 3대인 75%가 법인 명의로 등록됐다. 2016년엔 전체 등록대수 20대 중 16대인 80%가 법인 명의이었다.
2억 원이 넘는 아우디 R8의 법인등록 비율은 90%에 달한다.
아우디 R8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5년 R8은 전체 42대 중 38대인 90.47%가 법인 명의로 등록됐으며 2016년에는 전체 20대 중 18대인 90%가 법인 명의였다. 세법 개정이 회사 돈으로 슈퍼카를 타는 데 큰 제동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런 관행은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포착돼 왔다. 6월 국세청은 법인 명의로 슈퍼카 7대를 구입해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사적으로 사용하게 한 사례를 적발했다. A 씨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운영하며 법인 명의로 람보르기니, 페라리, 벤틀리 등 고급 수입차를 구입했다. 16억 원 상당의 슈퍼카는 A 씨 배우자와 대학생 자녀 2명이 업무와 무관하게 타고 다녔다. 국세청은 A 씨의 세금 탈루 혐의를 포착하고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세무당국은 A 씨와 유사한 사례로 9명을 포착했는데 이들은 총 100억 원 상당, 41대 슈퍼카를 사적으로 이용해 오다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에 7월 9일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인이 업무용 차량 관련 비용을 회사 지출로 처리할 때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 요건을 강화하고, 세무당국이 업무용 차량의 운행실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형석 의원 측은 “개정안은 관련 비용명세서와 운행 실태를 관할 납세지 세무서장이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슈퍼카 법인 등록 자체를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질문에 이 의원 측은 “현재 그 방향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이번 개정안은 현행 세법의 구멍을 막겠다는 취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미국은 법인 차량에 대한 감가상각비 한도 규정과 리스 비용에 대한 특별부가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고가 자동차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차량운행일지를 작성하고 업무에 사용되는 비율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국세청(IRS)이 요구하면 언제든 제출해야 한다. 만약 IRS가 요구했을 때 운행일지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사적인 사용비율을 100%라고 간주하고 소득세로 과세한다.
프랑스는 법인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경비라도 그 금액이 레저와 관련된 비용이나 사치적 성격이 있는 경우에는 회계 처리해 주지 않는다. 프랑스는 독특하게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감가상각액 인정 한도액이 낮아지도록 설정해뒀다. 차량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 세제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프랑스 방식을 채택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조세 관련 입법을 추진한 적이 있는 국회 관계자는 “1억 원 초과인 고급 승용차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대부분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 방식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약 특정 브랜드로 혹은 몇억 원 이상으로 법인 등록을 제한할 경우 잘못하면 FTA 조항 가운데 하나인 ISD에 따라 소송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