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물 거래 박물관장이 30년 모은 물건 숨긴 곳…노무현재단 “처음 안 사실…운좋게 경매로 나와 구매”
지난해 9월 4일 당시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 건립부지에서 열린 기공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한명숙 전 총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정세균 의원, 김영종 종로구청장,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이기명 노무현재단 고문,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왼쪽부터)가 시삽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무현재단은 2015년 12월부터 2016년 6월 사이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땅 7필지 1771.8㎡(약 536.9평)를 137억 9860만 원을 들여 사들였다.
최초 101억 원 정도만 투자되는 걸로 알려졌지만 노무현재단은 땅을 추가로 더 매입했다. 2015년 12월 3필지 1191.1㎡(약 357평)를 101억 1110만 원에 낙찰 받는 것을 시작으로 2016년 1월 근처 3필지 477.7㎡(약 143평)를 29억 7550만 원에, 2016년 6월엔 근처 1필지 103㎡(약 31평)를 7억 1200만 원에 사들였다.
노무현시민센터 부지는 종로구청이 2015년 한 사기업에게 압류한 뒤 경매로 내놓은 땅이었다. 이 땅이 경매로 나온 배경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갑자기 사라졌던 대규모의 한국 유명 예술품이 공소시효를 견디며 숨겨져 있었던 ‘장물 창고’였던 것이다.
1993년 7월 ○○○○미술박물관이란 이름을 달고 문을 연 이 박물관은 2011년 1월 명칭을 ○○미술박물관으로 바꿨다. 관장이었던 A 씨(79)는 30여 년간 수집한 문화재 400여 점 가운데 보물 제1204호 의겸등필수월관음도, 보물 제1210호 청량산괘불탱을 포함 불상 19점, 불화 20점, 공예 130점, 조각 31점 등 약 200점은 전시용으로 두고 나머지는 창고, 컨테이너 등에 나눠 보관했다.
문제는 A 씨의 영업 방식이었다. A 씨는 장물아비한테서 문화재를 취득한 뒤 특정 장소에 보관하는 등의 방식으로 공소시효를 견뎠다. 문화재 절도죄 공소시효는 10년이고 장물 취득죄는 공소시효는 7년이다. A 씨는 출처에 대해서 수사당국이 묻더라도 문화재에 적힌 출처와 시기만 적당히 훼손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점을 노렸다. 장물은 습한 창고에서 10년을 견뎌야 박물관으로 ‘승격’돼 관람객을 맞이할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A 씨가 덜미를 잡힌 건 2014년이었다. 경찰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문화재 경매사에 출품된 문화재 가운데 일부가 도난품으로 추정된다는 조계종 첩보를 입수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도난 문화재 목록과 출품된 문화재를 대조했다. 영산회상도 2점, 목조관음보살좌상, 신중도 등 4점을 포함 대부분이 도굴과 도난이 성행했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사라졌던 30억 원대 문화재였다고 나타났다.
노무현시민센터 조감도. 사진=노무현재단
원소유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A 씨 혐의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문화재를 내놓은 사람은 사채업자였다. 자신이 돈을 빌려줬던 인물이 돈을 갚지 않자 담보로 잡았던 문화재를 가져다 경매사에 출품했다고 드러났다.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사람은 다름 아닌 A 씨였다.
사실 A 씨는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그는 문화재 출처를 묻더라도 죽은 판매상의 이름을 대면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A 씨의 또 다른 창고를 뒤졌다. 거기에선 엄청난 양의 문화재가 발견됐다.
특히 출처와 시기가 정확하게 적힌 문화재가 A 씨 발목을 잡았다. 문화재 절도죄나 장물 취득죄는 피해갈 수 있었지만 몇몇 문화재에 남은 비교적 정확한 출처와 시기 자료 탓에 문화재 은닉죄를 피해갈 수 없었다. 수사당국은 A 씨가 문화재 취득 뒤 약간의 연구만 하더라도 도난 문화재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A 씨의 “몰랐다”는 변명을 믿지 않았다. 문화재 은닉죄는 발견되는 순간부터 공소시효가 적용돼 사실상 공소시효가 없는 것과 같다. 경찰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A 씨를 불구속 입건했고 그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A 씨가 장물을 포함 30년 모은 예술품 상당수를 숨겼던 곳이 다름 아닌 노무현시민센터가 들어서는 장소였다. 지하 1층 공식 수장고는 그나마 상황이 좋았지만 박물관 옆 주택 3채와 컨테이너 2곳의 간이 수장고에선 문화재가 거의 썩어가고 있었다. 곰팡이가 꽃처럼 피어있었다는 게 당시 경찰의 목격담이었다.
A 씨는 문화재를 훼손하기까지 했다. 그림 하단에 담긴 화기를 그냥 잘라 버리기도 했다. 화기란 그림 그린 시기와 소장처 등을 적어둔 기록이다. ‘작품의 지문’이라고 불린다. 전문 도색공을 불러 바래진 부분에 새로 색칠을 하기도 했다. 가산이 기운 A 씨는 자신의 박물관과 창고 등을 압류당했다.
공사 중인 노무현시민센터. 사진=최훈민 기자
한편 노무현재단이 서울 한복판에 노무현시민센터를 설립하겠다고 했을 때 일부 지지자 가운데서 불만이 나온 바 있다. ‘봉하마을이 있는데 왜 종로냐’는 지적이었다. 이에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종로는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했던 곳”이라며 이와 같은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노무현재단은 부지를 찾는 과정에서 서울 성북구 부지도 매우 유력하게 후보군으로 올렸다고 드러났다.
고재순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은 “장소 물색에 오랜 시간을 들였다. 되도록이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계시던 종로로 오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운이 좋게도 경매로 나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도난 문화재 창고였다는 건 처음 알게 됐다. 특정 세력의 공간이 아니라 서울 시내에 박정희 기념관이 있듯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 시설이 서울에 들어오는 거라고 보면 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시민 이사장이 이끄는 노무현재단은 이제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 모양새다. 노무현재단이 지휘해 온 봉하마을 기념 시설은 이제 권양숙 여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아름다운봉하가 전담해서 관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19년 3월 봉하마을엔 노무현대통령기념관 공사가 시작됐다. 기존 가건물로 된 ‘추모의 집’을 대신해 8092㎡(약 2452평) 터에 지상 2층으로 건립된다. 사업비는 국비 50억 원과 경남도비 15억 원, 김해시비 55억 8000만 원, 노무현재단 17억 1300만 원 등 총 138억 원이다. 김해시가 소유하고 아름다운봉하가 운영자로 유력하다.
봉하마을에서 묘역과 생가 등 기념 시설 관리를 총지휘했던 노무현재단은 이제 노무현시민센터 운영을 그 중심에 놓는다. 노무현시민센터가 완성되면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겨 노무현 전 대통령 이름을 건 ‘정치 학교’로 활용될 예정이다. 지상 3층 지하 3층의 연면적 5168㎡(약 1566평) 규모로 세워진다. 사업비는 행정안전부가 내리는 국고보조금 115억 원, 재단 후원금 165억 원, 시민 성금 100억 원 등 380억 원으로 추산됐다. 소유주는 노무현재단이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4일 노무현시민센터 기공식에서 유시민 이사장은 “봉하기념관이 기억과 추모의 공간이라면, 서울시민센터는 우리의 현재 삶을 열어나가고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데 힘이 되는 집이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