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에 채용비리 논란까지…금감원 등 고위 인사 뒷배 의혹에 상급 노조까지 가세
한국기업데이터 노동조합과 금융노조는 송병선 대표의 채용비리로 대전지사장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하며 성명서를 냈다. 사진은 지난 4월 노조가 규탄집회 후 송 대표에게 항의방문을 했을 때 모습. 사진=한국기업데이터 제공
#노조는 정말 고인을 이용하려 했나
지난 6월 중순 KED 대전 지사장인 A 씨가 돌연사했다. 사인은 심근경색. 이를 두고 KED 노동조합은 부당한 인사로 인한 스트레스가 사망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KED 노조가 소속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까지 성명서를 내며 사측의 잘못을 짚고 나섰다.
이에 지난 7월 20일 KED는 금융노조가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성명서를 내 명예가 훼손됐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측은 “고인에 대한 명예를 지켜달라는 유족의 부탁을 지키고자 도를 넘는 KED 노조의 행태를 참아왔으나 상급단체인 금융노조까지 허위 사실로 성명서를 냈다”며 “더 이상 고인의 죽음이 노조에 이용당하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KED 노조는 고인이 기업통계 전문가로 입사해 15년간 줄곧 통계 관련 업무를 맡았음에도 지난 1월 영업직인 대전 지사장으로 발령났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고인인 A 씨가 2008년부터 영업 활동을 주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8년 영업 성과를 인정받아 콘텐츠 전략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전 지사장 발령도 같은 이유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사측에 따르면 대전 지사장는 KED 내에서는 ‘꽃보직’으로 불린다. 그곳에서 지사장을 지낸 직원이 유일하게 등기이사(전무)로 승진하기도 했고 지사장 업무는 임원으로 가기 위한 발판이라는 주장이다. 고인은 순환근무 대상자로 대전에 1년 근무 후 다시 본사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사측은 노조가 A 씨의 사망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 11일 개최된 금융노조 산하 민주평등연대 워크숍에서 오간 내용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평등연대는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은행연합회 등의 18개 금융노조 산하에 소형 노동조합들로 구성돼 있다. 이날 워크숍에서 직원 사망으로 명분을 잡았으니 고인을 이용하면 대표 끌어내기는 사실상 게임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이날은 고인의 장례식이 미처 끝나지 않은 시점이다. 당시 KED 노조는 대표의 장례식장 진입을 막았다. 또 당시 KED의 B 상무는 대표를 대신해 조문 온 직원을 폭행해 현재 검찰에 고소된 상황이다.
이와 관련, 금융노조 관계자는 “성명서에 대한 사실관계는 향후 법정에서 가려질.것”이라며 “금융노조 산하 37개 지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 파악할 수 없으니 현장에 있는 노조원들이 모은 데이터와 인터뷰를 근거로 성명서를 낸다. 워크숍에서 오간 대화도 우석원 KED 노조 위원장이 금융노조에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상급단체인 금융노조가 앞으로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를 고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인을 이용해 대표를 끌어내리겠다는 내용은 사실무근이고 제보자를 색출해내겠다”고 덧붙였다.
채용비리 건을 두고도 대립하고 있다. 사측에 따르면 2018년 말부터 2019년 2월까지 KED 채용이 진행됐다. 신입사원 17명을 뽑을 계획이었다. KED 채용절차는 1차 담당 부서장 면접과 2차 임원 면접으로 나뉜다. 부서장은 1차 면접에서 지원자를 면접 결과를 점수화해 인사팀에 제출한다. 인사팀은 이를 토대로 최종 합격자의 약 3배수를 2차 면접에 올린다.
그러나 당시 C 인사차장은 16명을 2차 면접대상자로 뽑아 송병선 대표에게 제출했다. 송 대표는 16명을 다 채용하라는 것이냐며 2차 면접자를 늘리라고 지시해 다시 34명을 2차 면접 대상자로 올렸고 이 중 12명이 최종 선발됐다. 11명은 인사차장이 처음에 올린 면접대상자 중에서 뽑혔고 1명은 대표가 늘리라고 지시한 인원 중에서 선발됐다.
이 과정에서 C 차장은 면접결과 파일을 ‘대표이사 조정’으로 수정해 마치 대표가 인사에 개입한 것처럼 보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노조는 C 차장이 최초로 올린 16명의 명단 외에 추가된 18명 중 유일하게 최종 선발된 1명이 송 대표의 지인의 자녀라며 채용 과정에 비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생적인 한계…KED를 흔드는 손
이 같은 노사 갈등은 KED의 태생적인 한계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KED는 기업신용평가사로 올해 상반기에만 500억 원을 웃도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알짜’로 꼽힌다.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이 출자해 공기업으로 시작됐다. 2012년 민간은행이 지분을 늘리며 민영화됐지만 신용보증기금이 15%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기술보증기금,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하나은행 등이 각각 8.9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나 지분을 보유한 곳에서 퇴직한 인사들이 KED에 대표나 임원으로 임명됐다. 새롭게 대표나 임원으로 임명된 이들과 기존 직원들이 반목할 여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 2011~2014년 이희수 전 대표는 행정고시 22회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등을 역임한 관료 출신이다. 2014~2017년 조병제 전 대표는 하나은행 부행장을 지낸 금융권 인사다. 2018년 2월 취임한 송병선 대표도 행정고시 30회로 기재부를 거친 관료 출신이다.
2018년 취임한 송병선 대표의 KED 체질 개선 방침이 가라앉아 있었던 불만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평가다. 송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1인 대표이사-3인 전무이사 체제에서 1인 대표이사-1인 전무-3인 상무 체제로 개편했다. 주로 외부 인사로 채워지던 전무의 자리를 줄이고 대표가 3인의 상무를 선임해 외부 입김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사 민원은 끊이지 않았다. 전무에서 상무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현 정부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지냈던 인사와 금감원 고위 인사가 송 대표에게 B 인사부장을 상무로 추천했다. 이들과 B 부장은 같은 대학 선후배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2018년 4월 B 부장은 상무에 올랐다.
외풍에 휩싸이기 좋은 구조는 조직원 간 반목과 내부 권력 투쟁을 촉발시키기 마련이다. 실제 B 씨가 상무로 승진한 이듬해 KED 노조위원장 선거를 두고 전과 다른 양상이 벌이지기 시작했다. 3연임에 성공한 뒤 임기 만료를 앞둔 당시 윤주필 위원장 측에 대항하는 세력이 노조 선거에 나타났다. 이와 관련, KED 한 직원은 “B 상무, 복심인 C 인사차장과 그의 후배들이 중심이 된 메시지 단톡방에서 세를 규합해 노조 선거 운동을 본격화했다”면서 “2011~2019년까지 노조를 이끈 윤주필 위원장에 대한 비판이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변수가 생겼다. C 인사차장이 신입사원을 성폭행해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표와 당시 노조 측은 피해자 보호를 명목으로 해임 사유를 직원들에게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다. 새롭게 노조 장악에 나선 쪽은 이를 빌미로 대표가 직원을 해임하려고 해도 기존 노조가 이를 막지 못하고 있다며 전체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여론을 형성했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의 노조 가입 문제 등이 함께 논란이 되면서 결국 C 인사차장의 대학 후배가 올해 1월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사측에 따르면 노조는 곧바로 경영진과 첫 면담에서 송병선 대표에게 인사부장과 감사부장을 보직 해임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신입사원 성폭행 사건의 당사자인 C 인사차장은 해임 최종 결정을 앞두고 지난해 3월부터 휴직에 들어갔는데 이후 그는 KED 내부 채용비리가 발생했다며 이를 금융당국에 제보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같은 해 7월 10일 C 인사차장의 해임이 확정됐다. 그런데 해임 결정 3시간 만에 B 상무를 추천한 고위 인사의 지시로 금감원이 KED 본사를 조사하러 나왔고 7월 24일까지 진행된 조사에서도 C 인사차장이 세 차례나 동행했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11일간 조사를 진행한 금감원은 KED 채용 관련 제도 보완을 권고했다. 다만 과거 금융권 채용 비리를 적발했을 때 수사를 의뢰했던 것과 달리 가장 낮은 단계의 ‘참고이첩’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안팎에선 무혐의 결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 고위 인사가 KED의) 지인과 결탁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며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검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KED 노조도 “모든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제보자의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이며 금감원에서 무혐의로 나왔다는 것도 사실은 남부지검 형사6부에서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