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화 경계시스템 사람이 제대로 안보면 무용지물…소 잃고 외양간마저 고치지 않아”
7월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질책당하는 정경두 국방부장관과 군 고위관계자들. 사진=연합뉴스
2019년부터 군 경계태세 해이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2019년 6월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셀프 입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7월엔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가 경계 실패를 덮으려 병사에게 허위 자백을 종용했다는 의혹에 제기됐다(관련기사 탈북 때 “다녀오겠다” 이미 예고? 김민형 월북 사건 입체추적).
올해 1월엔 70대 노인이 진해 해군기지를 무단 침입해 1시간 30분 동안 부대 안을 자유롭게 활보했다. 3월엔 제주해군기지 제7기동전단 철책이 민간인 시위대 두 명에게 뚫렸다. 민간인 시위대가 가정용 펜치로 철조망을 절단하고 부대로 들어와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5월엔 태안 해변에 소형 보트가 버려진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소형 보트를 통해 중국인 6명이 밀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7월, 인천 강화도 연미정 인근 배수로를 통해 탈북민 김 씨가 월북했다. 해당 지역은 해병대가 경계를 서는 구역이다. 김 씨는 해병대 경계를 뚫고 유유히 북으로 헤엄쳐 떠났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나 북한 관영매체 보도로 김 씨의 재월북이 세상에 알려졌다. 다시 한번 군의 경계태세가 허물어진 셈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경계태세 해이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사과의 말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허술한 경계로 인한 사고는 연이어 발생했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으로 경계를 서는 군 장병의 모습. 열 개가 넘는 화면을 한 명이 감시해야 하는 맹점이 있다. 전직 군 관계자들은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두고 “화면을 보는 데 집중하지 않으면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전직 군 관계자들은 “연이은 경계태세 해이 논란 이면에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군 관계자는 “장비는 좋은 것을 들여놨지만, 그 장비를 경계병들이 보지 않기 때문에 경계망이 자꾸 뚫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직 군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장비를 들여놔도 그 장비를 사람이 제대로 관찰하지 않으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될 뿐”이라면서 “오히려 사람이 직접 경계를 서던 때보다 경계태세가 해이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 찰나에 레이더 감시병을 비롯한 간부들이 이상 징후를 모니터링하지 못했다”면서 “첨단 레이더엔 경계망이 뚫리는 현장이 모두 남아 있었다. 오히려 육안으로 경계를 서는 것이 현 시점에선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군은 군 CCTV와 TOD 화면에 김 씨의 월북 전후 행적이 남아있음을 시사했다. 7월 29일 김준락 합동참모본부(합참) 공보실장은 “군 감시장비에 포착된 영상을 정밀 분석 중”이라고 했다. 7월 18일부터 19일까지 군 CCTV와 TOD 녹화 영상엔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부유물이 식별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한기 합참의장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배수로 탈출 후) 부유물이 떠오른 상황에서 월북자가 구명조끼를 입고 머리만 내놓고 떠서 갔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했다.
탈북민 김 씨가 월북 포인트로 삼은 강화도 연미정 인근 배수로. 사진=연합뉴스
김 씨가 월북한 지역인 강화도 소재 해병 부대 지휘관을 역임한 전직 군 관계자는 “사람이 직접 경계를 서던 당시엔 지휘관 순찰이라든지 경계병들의 육안 감시가 잘 이뤄졌다”면서 “첨단 장비를 들여왔더라도 결국 그 장비를 들여다보는 건 사람”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레이더가 잡아낸 것을 사람이 잡지 못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현재 군 기강이 매우 흐트러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월북자가 빠져나간 배수로는 과거 육안 감시 체계로 경계가 이뤄질 때엔 철조망으로 폐쇄돼 있던 곳”이라면서 “열상감시장비(TOD) 등 첨단 장비가 들어오면서 ‘레이더에 다 잡히겠지’라는 자신감을 갖고 철조망을 해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첨단 장비로 군의 자신감이 높아졌을 때 이런 실책이 나올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장비를 활용하든 육안으로 감시를 하든 경계병 집중력이 높아야 양질의 경계가 가능하다. 이번 탈북민 월북 사태는 군 경계태세 집중도가 첨단장비 도입과 함께 낮아진 것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다.”
군은 2010년대 들어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서서히 도입해왔다. 전방 접경부대와 해안 부대 등 정밀한 경계가 필요한 부대에 우선적으로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도입됐다. 월북한 김 씨가 포인트로 잡은 강화 월곶면 인근 강변 역시 우리 군의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도입된 구역이다. 앞서 언급한 ‘경계태세 해이 논란’의 무대가 된 장소들 역시 최신식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자랑하는 부대들이었다.
한 안보단체 관계자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보급됐지만, 눈 뜨고 코가 베이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군이 최근 정신적 대비태세를 강조하고 있다. 정신으로만 대비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대비태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게 몇 번째”라면서 “군은 그 외양간마저 제대로 고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