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후보들 스텝 꼬이고 통합당 ‘험지 공략’ 부담…“이기는 쪽이 대선·지선까지 싹쓸이 가능성”
7월 10일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 사진=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급작스레 숨을 거두면서, 여야의 계산은 복잡해졌다. 내색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다. 일단 박 시장이 속해 있던 더불어민주당은 대형 악재를 맞았다. 민주당 내부에선 “재·보궐 선거는 물론 대선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재”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돈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 배경에 ‘미투 의혹’이 맞물려 있는 까닭이다.
더구나 박 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민선에서 내리 3선에 성공한 서울시장이란 상징성을 갖춘 인물이었다. 차기 대권주자급으로 분류되던 묵직한 정치적 입지만큼이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전임자가 정상적으로 다음 선거까지 바통을 넘겨주느냐 여부는 차기 선거 결과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하는 요소다. 더불어민주당의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22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움직이던 여권 내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은 계획을 전면 재수립해야 할 처지다. 2022년 출마를 호시탐탐 준비하던 후보군들은 박 시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스텝이 꼬이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우상호 의원 등이 유력한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 가운데 추미애 장관은 박 시장의 생사가 불명했던 7월 9일 저녁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지지자로부터 받은 선물 사진을 올려 구설에 올랐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 가운데 한 명을 잃은 더불어민주당은 침울한 분위기다. 박 시장 사망 소식에 더불어민주당 당권 레이스도 잠시 멈추게 됐다. 8월 29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제 막 당권 레이스에 돌입하려던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은 공개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이 의원 측은 “7월 10일 예정된 언론사 인터뷰를 모두 잠정 취소했다”고 공지했다. 김 전 의원 측은 “박 시장 장례 일정이 종료될 때까지 후보의 모든 일정을 잠정 취소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월 1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시장이 황망하게 유명을 달리했다”면서 “충격적이고 애석하기 그지없다”는 말로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평생 동안 시민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삶과 명예를 기리며 고인의 가시는 길에 추모의 마음을 담는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하에서 당 쇄신에 여념이 없는 미래통합당 역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이했다. 향후 정국에서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됐다. 미래통합당 비대위는 2021년 재보선에서 부산시장 선거에 사활을 건 상황이었다. 대선 전 마지막 선거에서 ‘부산 탈환’을 통해 쇄신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청사진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급변사태로 서울시장 선거라는 빅매치가 추가됐다. 사실상 내년 재보선의 새로운 메인이벤트로 서울시장 선거가 부상하는 모양새다. 김종인 비대위 임기는 2021년 재·보궐 선거일인 4월 7일까지다. ‘험지’인 서울을 여당에게 또다시 무기력하게 내준다면, 미래통합당 비대위의 쇄신 프로세스는 빛을 잃을 공산이 크다. 서울·부산 시장 선거에서 두 마리 토끼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7월 10일 김 위원장은 미래통합당 정강·정책개정특위 세미나에 참석해 “내년 4월엔 대선에 버금가는 선거를 해야 한다”면서 당 쇄신과 이미지 변신을 강력히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는 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서 국민에게 확신을 줘야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대에 적응할 수 있고 국민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기치 아래서 새로운 정강·정책을 만드는 노력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박 시장 사망과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극적 선택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정치권은 2021년 4월 열릴 재보선이 역대급 이벤트로 거듭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관건은 당선무효형을 경계에 두고 소송 줄다리기를 펼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김경수 경남도 지사의 최종 판결 결과에 달려 있다. 이재명 지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2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최종심을 남겨두고 있다.
김 지사는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으로 기소돼 1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선거법위반 혐의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업무방해 혐의와 관련해선 징역 2년을 받아 법정 구속됐다.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선고였다. 4월 17일 김 지사는 항소심에서 보석이 허가돼 석방됐다. 김 지사의 항소심 선고는 2019년 12월 24일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고를 앞두고 변론이 재개됐고, 2월 사법부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바뀌면서 판결이 늦어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박은숙 기자
경기도 지사와 경남도 지사 선거가 펼쳐질지 여부는 내년 재·보궐 선거가 열리기 30일 전에 결정 난다. 데드라인은 2021년 3월 8일이다. 이 전까지 대법원이 이 지사와 김 지사 혐의와 관련해 원심을 받아들일 경우, 내년 펼쳐질 선거 규모는 단순한 재보선 의미를 뛰어넘을 수 있다. 대선을 1년 앞두고 수도권과 부산·울산·경남(PK) 지역을 관통하는 민심을 엿볼 무대가 마련되는 까닭이다. 두 지사를 둘러싼 대법원 판결 시기와 결과에 따라, 재·보궐 선거의 무게감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재·보궐 선거 판이 커지면서 기형적 선거 밀집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생겼다. 이른바 ‘전국 선거 3연전’이다. 2021년 4월 7일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뒤 2022년 3월 9일엔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대선이 끝난 지 세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인 6월 1일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14개월 사이에 대형 선거가 세 차례나 잇따라 펼쳐지는 셈이다. 여느 승부가 그렇듯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그만큼 거대 양당은 내년 열릴 재·보궐 선거를 향후 선거 정국 승부처로 여길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선거 기획 전문가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재·보궐 선거판이 커질 대로 커졌다”면서 “서울과 부산은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다. 내년 선거 결과가 정치권에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이 전문가는 “더불어민주당이고 미래통합당이고 재보선에 그 어느 때보다 사활을 걸고 임해야 하는 처지”라면서 “재보선에서 승리하는 당이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3연전을 싹쓸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선거에선 대선 결과에 따른 허니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대선엔 내년 재보선 민심이 비슷하게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형 선거가 특정 시기에 몰리게 되면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유권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진영 논리 줄투표를 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의 특성은 다르다. 비슷한 시기에 특성이 다른 선거들이 연이어 펼쳐지면 민심이 표심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2021년 재·보궐 선거 규모가 확장되고 있는 양상과 관련해 “잘하라고 뽑아놨더니, 자꾸 또 뽑아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유권자가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