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이 대형보다 전셋값은 더 비싸다
▲ 주택시장 침체 속 비정상적인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경기도 동탄신도시에서 중대형 주상복합아파트를 분양받은 임 아무개 씨는 분양권 값이 떨어지자 최근 매수자에게 3250만 원을 현금으로 주는 조건으로 매물을 넘겼다. 분양권 시세가 자꾸 떨어지자 손절매한다는 생각으로 판 것이다. 물론 임 씨가 처음부터 이렇게 팔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분양권 시세가 분양가 밑 10%까지 떨어지는 ‘마이너스 프리미엄’ 현상이 나타나자 건설사에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물론 계약 조건에 없는 사항이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 씨는 결국 지금까지 낸 계약금(분양대금 10%)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매물을 내놓았다. 살 사람이 있으면 그냥 가져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4개월을 기다려도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고심을 하다 결국 다시 15% 마이너스 프리미엄 조건으로 분양권을 내놓았다. 계약금인 6500만 원은 분양권에 포함돼 매수자가 승계하고 나머지 5%에 해당하는 3250만 원을 매수자에게 현금으로 주는 조건이었다.
그때서야 향후 시장 상황이 바뀔 것으로 판단한 매수인이 접근해 왔다. 그리고 결국 현금을 주고 분양권을 파는 데 성공(?)했다. 임 씨는 “분양가 시세가 더 떨어져 중도금과 잔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손해가 더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며 “속앓이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후련하다”고 말했다.
김부성 부동산부테크연구소장은 “최근 용인 고양 등에서 고분양가로 분양했던 단지에서 매도자들이 자신이 낸 금액보다 더 낮은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처분하면서 그 차액만큼 매수자에게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주면서 매도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주택 경기 침체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5월 입주가 시작되는 용인 성복동 S 아파트 171㎡형 분양권을 가지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분양권 가격이 분양가 10억 원보다 1억 원 이상 떨어져 9억 원대로 미끄러진 까닭에서다. 그런데 옆 단지는 김 씨의 걱정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옆 단지 집값이 예상보다 너무 많이 내려가 그 영향으로 집값이 더 빠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바로 옆 단지는 2006년 5월 입주한 비교적 새 아파트. 김 씨 아파트와 브랜드도 같다. 그런데 이 아파트 로열층 171㎡형의 시세는 현재 6억 원대. 한때 8억~9억 원까지 했다가 최근 시장 침체의 영향으로 크게 떨어진 것이다. 김 씨는 결국 입지·크기·브랜드가 모두 같으면서도 3억 원 이상 저렴한 아파트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분양가 10억 원을 모두 내고 5월 입주해야 할 판이다. 김 씨는 “시장 상황이 좋을 땐 분양가가 높으면 인근 시세가 따라 올라갔지만 지금은 떨어지는 주택 가격이 새 아파트 주택 가격을 끌어내리는 상황”이라며 씁쓸해 했다.
보통 집 크기가 클수록 3.3㎡(1평)당 가격도 비싼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대형 주택 인기가 줄어들고 작은 주택에 수요가 더 많이 몰리면서 작은 주택의 전세가나 3.3㎡당 시세가 더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마포구 하중동 한강밤섬자이는 109㎡형과 145㎡형이 같은 4억 원에 나와 있다. 반포 래미안퍼스티지에선 역전현상도 생겼다. 173㎡형 전세가는 11억 원인데 238㎡형 전세는 10억 원이면 들어갈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통계로도 잡힌다. 최근 한국부동산정보협회 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3.3㎡당 중형(106~128㎡형, 전용면적은 85~102㎡) 전세가가 742만 원으로 대형(128㎡형 초과) 전세가인 699만 원보다 비싸다. 2009년 2월 초에는 3.3㎡당 전세가가 대형 627만 원, 중형 603만 원으로 대형이 더 비쌌으나 중소형 전세가가 뛰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이런 상황은 전세 공급에 비해 수요가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대형 아파트 계약자들이 기존 집을 팔지 못하자 입주하는 대신 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 신혼부부 등 실수요가 많이 찾는 중소형은 전세 물건이 많지 않지만 대형은 오히려 찾는 사람 없이 매물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분양권도 전용 85㎡형 이하 중소형아파트가 웃돈이 더 많이 붙고 있다. 종전에는 대형 아파트 분양권 웃돈이 중소형보다 훨씬 높았으나 지금은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내년 1월 입주하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센트레빌 전용 84㎡형 분양권에는 1억 300만 원의 웃돈이 붙어 있지만 114㎡형은 7200만 원 수준이다. 중소형은 웃돈이 붙었으나 대형은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보다 값이 떨어진 것)을 보이는 곳도 적지 않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1가 리첸시아용산 전용 84㎡형은 8000만 원 웃돈이 붙어 있다. 하지만 122㎡형은 분양가보다 9000만 원이나 싼 값에 매물로 나와 있다.
지금까지 집값은 서울이 지방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올랐다. 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5년간 전국 집값 상승률은 25.6%였다. 같은 기간 서울 집값은 44.1%나 상승했다. 하지만 올해 시장 침체가 심화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올 1월부터 3월까지 전국 집값 상승률은 0.7%로 서울(0.4%)보다 높았다. 부산과 대전은 2.2% 올랐고, 5개 광역시 평균 집값 상승률도 1.3%였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사장은 “최근 고가 주택이 몰려 있는 서울 주택 시장은 매매시장이 크게 침체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지방은 미분양이 몰려 있는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 집값이 많이 오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에서 재개발·재건축은 대박을 맞는 ‘로또’로 인식됐다. 재개발·재건축만 하면 집값이 폭등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개발·재건축을 마다하는 주민들이 나타나고 있다. 강남권의 대표적인 한 재건축단지에서는 재건축 사업 추진을 중단하자는 입주민대표회의와 재건축추진위 간의 분쟁으로 연일 시끄럽다.
이달 4월 구역 지정이 해제된 서울 용산구 용문동 38-148 일대 등 7곳이 재개발·재건축 계획을 철회했다. 올해만 6곳이다. 추가분담금 부담이 커진 데다 주변 아파트 시세 하락으로 재개발·재건축의 수익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이런 일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서대구 북가좌동에서 재건축을 사업을 포기한 한 아파트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재건축을 할 경우 추가분담금이 너무 많이 나와 입주민들의 손해가 너무 큰 것으로 판단됐다”며 “90% 이상의 주민의 동의를 얻어 재건축 계획을 없던 일로 했다”고 말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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