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저리 휘둘리다간 ‘뒷북’
증시의 최고 단골 주제는 외국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다. 지난 4월까지 증시가 한창 오를 때 모건스탠리-캐피탈인덱스(MSCI) 선진지수 편입과 글로벌국채지수(WGBI)는 외국인 추가매수가, 5월 들어 증시가 폭락하면서부터는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 금융규제가 화젯거리다.
물론 지난주 증시 폭락에도 불구하고 증시 전문가들의 외국인에 대한 진단은 아직 긍정적이다. 그 배경은 우리나라 경제를 이루는 세 단위 가운데 두 단위인 기업과 정부가 비교적 튼튼하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기업은 중국보다 낫고 일본만 못하지 않다. 일부 품목에서의 가격대비 경쟁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새로운 소비강국이 될 중국에서 강자로 인정받고 있는 점도 주목하는 대목이다.
정부 부문에서는 선진국의 ‘돌림병’인 재정적자가 아직 한국에서는 ‘감기’ 수준이라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아울러 간접세 중심의 세수체계는 외국인에게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증권사 경제분석가는 “간접세와 부가가치세가 많은 한국의 세제는 세수확대가 용이한 게 장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정부의 또 다른 부분인 투자규제도 나쁘지 않다. 외국인들은 늘 규제가 많다고 투정을 부리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외국인에 대한 규제의 벽은 높은 편이 아니다. 홍콩과 싱가포르 정도를 제외하면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구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고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별명은 ‘ATM’(현금인출기)이었다. 그만큼 국제자본의 들어오고 나감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같은 긍정적인 투자환경에도 불구하고 최근 외국인은 왜 대규모 매도에 나서고 있을까? 해외자금은 우리 내부의 문제뿐 아니라 자국 사정에 의해서도 움직인다. 최근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 가운데 상당부분은 단기시세차익 및 환차익을 노린 투기자금이라는 분석이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해외에서 ‘제로’(0%)에 가까운 저리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선진국 경기가 나아지고, 유럽의 재정적자 문제가 숨통이 트이게 되면 막대한 규모로 풀린 시중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 금리인상은 저금리로 돈을 빌려 신흥시장에 투자해 온 외국인에게 차익실현의 신호다.
반대로 유럽재정 위기 등과 같이 금리인상이 더 어려운 경우에도 차익실현 욕구는 강해질 수 있다. 위기국면에서는 자산을 더 안전하게 관리하려는 수요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위험자산에 투자해서 그동안 많이 벌었는데, 더 놔두려니 불안하다. 차라리 일단 차익실현을 하고 보자’는 움직임이다.
돈을 넣고 빼고는 돈 가진 이 마음이지만,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이들이 드나들 때의 충격파는 엄청나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국인이 주식을 대거 매도하면서 코스피지수는 1000선이 무너지고, 환율은 1500원선이 뚫렸다. 우리 기업과 정부의 경쟁력, 즉 대한민국의 펀더멘털이 튼튼했기에 망정이지 펀더멘털이 조금만 약했다면 지난 외환위기 이상의 충격을 받을 뻔했다.
B 운용사 기관자금 담당자는 “우리 기업이 계속 이익만 잘 내준다면,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사실상 ‘㈜대한민국증시’의 최대주주로 군림하고 있는 외국인이 굳이 주식을 팔 이유가 없다. 장부상 가치가 계속 올라가고, 매년 배당으로 적잖은 수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 오너가 경기가 안 좋다고 회사를 쉽게 팔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국인이 돌아와 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더라도 만성적인 쏠림과 이에 따른 수급불균형은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밖에 없다. 외국인에 주도권을 내준 국내 투자자들은 늘 ‘뒷북’을 치며 외국인에 이용당할 확률이 높다. 가장 이해가 쉬운 예가 외국인이 즐기는 공매도다. 주식을 빌려서 내다팔고, 싼 값에 이를 되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주당 1만 원짜리 주식 1만 주를 빌려와 시장에 내다판다. 그러면 외국인이 주식을 내다판다는 소문이 투자심리를 악화시키면서 주가가 하락한다. 외국인으로서는 매도과정에서 주가가 다소 하락해 주당 1만 원은 못 받더라도 주당 8000~9000원씩은 족히 받을 수 있다.
영향력이 큰 외국인의 매도 소문에 주가는 예상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1만 원짜리 주가가 5000원으로 떨어졌다고 치자. 외국인은 바닥을 기다려 다시 주식을 사들인다. 이를 주당평균 6000~7000원에만 샀다고 하자. 1만 주 매도금액은 8000만~9000만 원, 매수금액은 6000만~7000만 원으로, 2000만~3000만 원의 차익이 생긴다. 현재 외국인의 영향력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외국인의 영향력 확대는 국내 투자자들과의 시장정보 불균형도 야기할 수 있다. 정부가 주요 정책을 입안할 때 시장의 반응과 견해를 듣는 경우가 많다. 이때도 외국인은 단골손님이다. 이 같은 자문 과정에서 외국인은 주요 정보를 먼저 얻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 이 같은 정보를 국내가 아닌 글로벌 차원에서 활용한다면, 우리 정부는 통제할 수단이 거의 없다.
외국인은 또 자본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우리 정부를 상대로 그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도입하게끔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글로벌스탠더드’는 사실 외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미 계열 자본의 입맛에 알맞게 우리 시장의 지도를 다시 그린 것이라는 평가다.
물론 개인의 투자전략에서 ‘외국인 따라하기’도 꽤 괜찮은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외국계 증권사 대표 출신의 한 인사는 “조달금리, 환율, 투자기간, 목표수익률 등 조건에서 외국인과 내국인은 다르다. 또 겉으로 드러나는 매매 외에도 외국인들은 다양한 전략을 펼친다. 포트폴리오 구성에서도 이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반면 국내 투자자는 그렇지 않다. 유망한 종목을 발굴해가는 길은 참고할 만하지만, 무작정 추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